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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Sep 13. 2021

이직 한달 차, 또 이직을 결심하다 Ⅴ

저보고 그림을 그려서 팔라고요?

저보고 그림을 그려서 팔라고요? 


   첫번째 퇴사 시도가 어그러지고 전 디자이너와의 통화 이후로 난 계속 영혼이 나간 상태로 일을 했다. 멘탈이 거의 바사삭 무너져 있던 상태라 대표가 말을 걸어도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한참 머뭇거리고 일을 해도 좀처럼 손에 잘 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가 어디를 좀 다녀온다고 나갔다 온 뒤로 갑자기 쇼파에 좀 앉아보라더니 툭 내뱉는 말이

  "아 존나 짜증나네 시팔" 

  이었다.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알을 굴렸다. 암튼 이놈의 회사 대표들은 직원앞에서 쌍욕을 왜 이렇게 해대는지.. 

   "왜..그러세요?" 

   대표는 머리를 헝클이더니 본인이 기술보증기금에 다녀왔는데 그쪽에서 투자했던 돈으로 스트레스를 준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시발.. 나보고 언제 투자금 회수할거냐고 당장 10월까지 하루 매출을 두배 올리래" 

   "아.. 어떡해요?" 

   그 이야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건가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XX씨.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그림을 팔아보면 어떨까?" 

   "네?"

   앞서도 말했지만 이 회사는 화장품 회사였다. 반려동물용 화장품 회사. 

   "우리 캐릭터 있잖아. 그런 스타일로 고객이 키우는 동물 그려주는거지. 어때?"

   "아...제가요?"

   "응. 어때?"

   당황스러웠고 어이가 없었다. 

   "3만원에 팔자! 드는 돈도 없고 완전 좋을 거 같어" 

   왜 드는 돈이 없어? 그리는 내 시간은? 그냥 완전 순수 내 노동을 팔겠다고? 이럴거면 내가 왜 회사를 다녀? 그냥 내 그림 그려서 팔면되지? 그리고 왜 화장품 회사에서 그림을 팔아? 머릿속에서 계속 물음표가 튀어나왔다.

   나는 정말로 그림을 팔았다. 운영하던 쇼핑몰에서도, 프리랜서로 일할때도 그림을 그려서 팔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도 내가 그림을 그려서 팔아야한다고? 화장품 회사에서? 그림 비용을 순전히 대표가 100% 가져가면서? 기획에 디자인에 SNS관리, 마케팅, 하다못해 인플루언서 섭외까지 내가 하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내 그림까지 팔겠다? 와. 이새끼 이거 완전 양아치네

  "대표님 여기 화장품 회사 아닌가요?" 

  대표는 표정을 구기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품 팔아서 두배 매출 올릴 생각을 해야지. 갑자기 그림을 그리라는게 저는 이해가 잘 안가네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고르고 골라서 저 말만 했다. 대표는 인상을 확쓰더니 말했다.

  "와. 나는 매출을 올려야되서 열심히 생각해서 말하는건데. 이게 싫다하니 할말이 없네" 

   나도 할말이 없다. 여기가 굿즈를 판매하는 회사도 아니고 우리 캐릭터가 매니아가 많은 것도 아니고 무슨 일러스트레이터 에이전시도 아니고 그림을 그려서 팔자는 게 제정신인가? 본인을 마케터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생각해낸 마케팅 방식이 화장품 회사에서 그림을 그려서 파는거라고? 

  "싫은게 아니고 이게 맞는건지 여쭤보는거에요." 

  "당장 나는 매출을 올려야되니까 XX씨한테 제안한건데 굉장히 실망이네" 

  "죄송합니다." 

  "솔직히 XX씨가 하는 일이 뭐가 있어? 2개월 뒤에 인센티브 나오는데 그거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난 그래서 그림이라도 그려서 인센티브라도 벌어가라고 한거였는데 어이가없고 실망스럽다." 

  이건 또 뭔 개소리지? 그러니까 면접 때 내게 제안했던 인센티브를 막상 주려니 아까우니까 그림이라도 그려서 팔으라고? 어이가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림이 안팔리면 약속했던 인센티브도 없다는 건가? 하..참..그깟 인센티브 안받아도 상관없다. 받을 자격을 논하니 더더욱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이 느껴졌다. 

  "그럼 제가 그만둘게요."

  그렇게 두번째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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