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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두 Mar 08. 2024

[도서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 2024.03.08 ] 김은지/희음 시인 시집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출처 : 네이버


1. 걷는사람 시인선13, 김은지, "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김은지 시인은 201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와 독립출판 소설 "영원한 스타+72세"를 냈으며, 팟캐스트 방송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힘들다'(세너힘)을 진행했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고 희음(시인)이 "경청"이란 제목으로 해설하고 있다.

곧 1부 ' 안녕이라는 소리의 감촉', 2부 '따뜻한 호수에 떠 있는 오리가', 3부 ' 종이에 누워 있던 잉크에 누군가의 눈길이 스칠 때', 4부 '다음으로 날씨 예보가 이어졌다.' 가 그것이다.


이러한  시들 가운데, 두 작품을 소개한다. 표제작인 "고구마"와 문학필사를 했던 "픔"이다.

"고구마"는 '고마워'가 '고구마'와 두 글자가 같은 점, "픔"은 '픔'으로 끝나는 글자들 '아픔, 슬픔, 배고픔, 서글픔'이 다 아픈 글자라는 점을 발견하여 시에 담아내고 있다. 


희음 시인의  고구마의 달콤함과 온기는 원래 '고마워'에게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고마워'가 자신의 갈비뼈를 떼어 '고구마'를 빚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는 말처럼... 사물의 이름이 지닌 유사함이 사물 자체로 옮아가 그 두 개의 사물을 닮은 것으로  감각하게 만든다.


김은지 시인의 이 시집은 우리에게 언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일상에서 작은 발견을 통해 이를 시로 구현해 낸 재능이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고구마


봄에는 심장약 복용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수의사는 말했다.


열  살 넘은 개가

내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들숨 날숨에 맞춰

움직이는 배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나를 확인하는 개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가 같네


말을 걸며

빈틈없이 이불을 꼭꼭 덮어 줄 수 있는

겨울 고마움



12월 마지막 주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12월 마지막 주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러나

A형 독감은 매우 아프다고 하고

큰 병원에 추적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고

고장 난 문을 고치는 일은 급하니까


아픔 슬픔 배고픔 서글픔

픔으로 끝나는 단어는 왜 다 아픈 것일까

이 계절 내내

픔으로 끝나는 안 아픈 단어를 찾는 중


그렇지만 

나이 한 살 더 먹고

1월에 만나는 것도 괜찮다


새해 복 우선 받으세요

구정에 마저 드릴게요

그때까지 서로 감기 조심합시다


보고픔


12월 마지막 주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겨우 찾은 단어를 

보낸다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



2. 걷는 사람 시인선 28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희음"시인


저자는?  시쓰고 공부하고 움직이는 사람. 2016년 "창문의 쓸모"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앤솔러지 시집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를 동료들과 함께 펴냈다. 2018년부터 여성주의 일상비평 웹진 "쪽"을 발행, 편집하며 비평 에세이를 써왔다.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는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말 (2020년 9월) - 글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서 계속해 봤습니다. 계속하다 보니까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뒤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 동거/ 한 자세로 오래 있지 않기 / 스프링 노트의 스프링 홀 / 창문의 쓸모 / (불) 가능한 추방 /

이후의 잔 / 보물찾기 / 종합병원 구내 이용원 / 유리 판자 / Mass / 삼킨 것들 / 도로 끝, 그리고/ 라이프

2부 : 아프지 않게 조금씩 버려지는 코뼈 / 우리는 키스한다 / 미아 / 서 있는 사람 / 앉아 있는 사람 /

배낭이 된 남자 / 도서관 사람 / 가위들 / 우리는 반쯤 잠이 든 채로 / 월미도 / 이국의 루이스 / 비가 내렸고

개가 없었다 / 사랑의 완성 / 연주를 하자 / 목젖을 시절 / 비대한 사람 / 국경일 오후 / 어루만지는 높이

3부 : 목뼈들 / 우리는 세계과자점에 가요 / 두 사람 / 맨발 / 스푼들 / 사양/ 미끄럼 / 목소리의 계속 /

얼룩 이야기 / 비린내 / 어느 날, 젤리피시 / 아니다

4부 : 의자 이야기 / 장래희망 달성 수기 / 인류 보편의 잡화상 / 뛰어내리는 달 / 브루클린 / 걸어도, 걸어도

젖지 않는 / 죽음이 말하는 한 방식 / 맨스 플레인 / 어느 선한 의도에 대하여 / 여름 벽 / 붉은 /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


희음의 첫 번째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의 제목은 마지막 시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에서 나왔다. 이 책을 한 번 쭉 읽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의 해설을 읽고 어림잡아 이 시들의 내용과 연관성을 추측했을 뿐이다. 그래서 1부, 2부, 3부, 4부에 대한 해설을 아래에 요약했다. 이 해설을 두고 시를 읽어보니 흐릿한 얼굴이 또렷한 목소리로 들렸다. 


시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희음 시인의 이 시집은  나희덕 시인이 말하듯이 "한 여성 주체가 어떻게 자기만의 인식과 목소리를 얻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을 주목해서 살펴볼 수 있다. 


1부에서는 얼굴 없는 얼굴들이란 말로 설명된다. 시적 화자와 가까이에 있는 존재들만 해도 여럿인데, 물어오는 것을 던져주어도 자꾸만 돌아오는 개가 있고, 애인이 있고, 가족도 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화자의 서술에서 그들의 얼굴은 없거나 구체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걷고 또 걸어 도착한 '여기'는 어디인가? 2부와 3부에 해당하는 여정에서 화자는 줄곧 '관찰자'의 태도를 취한다. 어떤 존재를 발견하고 관찰하여, 그것을 기록되는 발화(시)로 남겨두는 행위로 인해,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의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되고 그들의 시간은 사건이 된다. '우리'를 찾기 위한 시적 화자의 첫걸음은 이렇듯 자신의 시선으로 주위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4부의 시들은 온전히 지금-여기의 기억과 말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가 꿈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발화연습을 해 왔던 건 어쩌면 4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1부에서 흐릿했던 얼굴들, 도리어 생생했던 목소리, 그 실체 없는 것들 앞에 설 때면 입을 떼지 못하고 말을 뱉어낼 수 없었던 까닭에 대해 말한다. 화자가 어떤 얼굴들 앞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입을 다물어야 했던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의 언어를 앗아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

                                       

                                   희음

말들이 우글거리는 입속

말들이 자라났다 사라지는 입속

쉬이 죽었다가도

이내 다시 태어나는 말들의 붉은


입속은 그 스스로를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축축한 속살로 스스로를 두르고


태어나라 꺼져라 다시 일어나라

말하지 않고 모르는 얼굴로

얼굴 없는 그 명징한 얼굴로


뜨거워졌다가 식었다가

밤과 낮과 시침 사이와

오후의 모든 틈 들에 있다

저곳과 여기와 아무 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듯

폭 넓은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입속 깊이까지 줄 서 있는

말들을 향해 인사 건네는


도처의 치마 안 쪽에서 

지치지 않고

마중 나오는 눈빛들


한 줌의 낭비도 없이 

공중에서 만나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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