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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두 Mar 18. 2024

[도서리뷰] 문학동네 시인선(2)

[2024.03.19 ] 안미옥/이현승 시집

이미지 출처 : 네이버


1. 문학동네시인선 187 안미옥 시집 "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빨간색 바탕에 분홍빛 글자로 되어 있는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재은 작가의 마음만만연구소에서 19기 문학필사를 통해 소개해주신 시집인데, 나와 같은 나이의 시인의 시집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한편 한편 여러 번 곱씹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미옥 시인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온", "힌트 없음"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는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시집의 제목을 제일 마지막에 실린 '사운드 북'의 마지막 구절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보고 있다는 말 안에는 보고 싶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며 삶의 자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담아내는 문장 이어서 그랬다고... . 


  총 3부로 46편의 시가 실려 있다. 1부 모두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부 내가 가진 것을 줄게 3부 점심에 만나요 환해져요.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안미옥의 이 시집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시적 탐색이라 말한다. 이것은  '하우스', '가정방문' '주택 수리' '누군가의 현관' '신축'같은 시들의 제목에서 드러난다.  그에게 집은 네 개의 벽과 천장과 바닥으로 구성된 육면체의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그 공간을 채우거나 비워내는 시간의 변화까지를 포함한다고... .


안미옥 시인은 '사운드북'이란 시를 제일 아끼는 시라고 말했다. 사랑과 이해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절박하고 복잡한 뼈아픈 단어라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사랑과 이해에 대해 쓰면서 많은 힘이 되었다고 했다.


사운드 북


노래는 후렴부터 시작합니다.


후렴에는 가사가 없어요

사랑 노래입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는 건지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자꾸 번복합니다


주소도 없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엽서도 있습니다


모든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나는 궁금합니다.


꽃병에 담긴 물은

언제부터 썩을까


믿음을 강조하던 사람이

귀퉁이에 써놓은 작은 메모를 볼 때마다 알게 됩니다.

그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꽃은 식탁 위에 뒀습니다

활짝 핀 꽃은 마르면서 작은 꽃으로 자랍니다


밀린 꽃의 온도로

깨진 조각을 공들여 붙인 그릇의 모양으로

오늘은 웃게 됩니다


어느 날엔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긴 울음은 이해가 되는데 긴 웃음은 

무서워서


이 꿈이 빨리 깨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왜 슬픔이 아니라 공포일까


이해는 젖은 신발을 신고

신발이 다시 마를 때까지 달리는 것이어서


웃음은 슬프고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끝까지 머금고 있는 것이어서


깨어난 나는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페이지를 열고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와요


사랑 노래입니다


그냥 배울 수는 없고요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도서


2. 문학동네 시인선 160 이현승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이현승은 1973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2002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이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160, 이현승의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은 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이현승 시인의 최애색이라는 녹색과 갈색으로 된 시집이다.  2021년 9월에 발행한 이 시집의 앞에는 시인의 약력이 아닌 시인의 말(시)이 쓰여 있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그럴수록 되물을 수 밖에 없다.", 2부"우리는 모두 실패한 적이 있지만" , 3부 "자두를 골라내면서", 4부 "안녕이 되고 싶어"라는 부제목에서 "실패", "외로움"등의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오연경 문학평론가가  해설에서 이현승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실패'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시인 자신의 '외로움'을 들여다본다고  알려주듯이 말이다. 


이 가운데 문학 필사 프로그램에서 필사 했던 한 편의 시를 이 리뷰에 소개한다.


플랜B


건물주가 되고 싶은 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꿈도 없는 게 더 문제라면서요?

이런 건 꿈도 안 되나요?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거나

실패가 없으면 배우는 것도 없다는 식의

충고라면 사양하고 싶어요.

충고가 고충이에요.

건물주의 인생은 뭐 쉬울 것 같냐고 하시지만

고층 빌딩이어도 좋으니 건물주가 되고 싶어요.

요즘 애들 진짜 문제라지만

진짜 문제를 갖고 싶어요.

내 문제, 나만의 문제, 진짜 진짜 내 문제

그도 아니면 요즘 애들이라도 되어보고 싶어요

그도 아니면 요즘 애들이라도 되어보고 싶어요

문젯거리라도 좋으니

우선 존재는 하고 싶어요.

빚 없는 거지 갚은 거 말고요.

빚이라도 좋으니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요.

존재하는 게 뭐냐고요?


간밤에 폭설이 내렸는데

빈 나뭇가지 위에 눈이 높게 쌓여 있었어요.

그토록 가느다란 가지 위에도 높게 눈이 쌓일 수 있다니.



"실패가 없으면 배우는 것도 없다 " 는  우리 시대의 통념을 담고 있고,

"우선 존재하고 싶어요."/ "빚 없는 거지 같은 거 말고요."/ "빚이라도 좋으니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요."

는 자신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차선책(플랜B)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오연경 문학평론가 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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