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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두 Mar 09. 2024

[도서리뷰] 청소년을 위한 책

[2024.03.09] 청소년을 위한 택리지/징비록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1. 청소년을 위한 "택리지", 이중환 지음, 한국과학문화재단 편


이중환은 조선 숙종 16년(1690)에 태어났다. 성호 이익의 학풍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실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1713년 과거에 급제한 뒤 병조좌랑에 올랐다. 하지만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네 차례의 형을 받고, 두 차례의 유배를 당했다. 이후 일정한 거처없이 세상의 온갖 풍상을 겪으며 팔도를 떠돌아 다니게 되었는데, 이 때의 경험이 택리지를 쓰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택리지는 다른 지리서와는 달리 팔도 각 지역을 발로 답사하며, 전해오는 설화와 민담에서부터 자신의 역사적 견해까지 폭넓게 다루어, 읽는 이에게 새로운 지식과 재미을 더해주는 우리 국토와 문화에 대한 감동적인 보고서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다룬 팔도총론과 도별지지, 그리고 주제별로 다룬 복거총론 등 그 구성체계와 집필 방법이 새롭고 신선하여 본격 인문지리서의 효시가 되었다.


"택리지"의 구성은 1753년 정언유가 쓴 서문을 필두로 사.농.공.상을 다룬 "사민총론", 전국 8도를 다룬 "팔도총론",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등 네 분야에 걸쳐 살기에 적합한 곳을 다룬 "복거총론85", 그리고 종합 편인 총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서이기는 하나 그 내용이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교통, 인심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 만으로도 풍부하고 흥미 있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리와 인간 생활의 상호 관계를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서술하였다. 


1. 사민총론

백성은 네 가지로 분류되었는데, 선비로서 어질고 덕이 있으면 임금이 벼슬을 주었고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업 또는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것이 사,농,공,상이다. 그 가운데 선비(사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2. 팔도총론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를 팔도라 한다. 팔도에 대해 서술하기 전, 조선의 지리적 위치, 역사, 사대부의 내력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평안도에는 역사적 명승지인 평양, 대동강과 성천, 철옹성인 안주 땅, 산삼의 산지인 강계, 역사의 현장인 위화도등을 소개하고 있다.

함경도는 살기 힘든 이북과 태조 이성계와 그의 친구, 박순에 대해 그리고 함경도와 강원도의 경계인 안변을 언급한다.

전략적 요충지인 황해도는 백두산에서 구월산까지, 해주와 율곡 이이 등에 대해 쓰고 있다.

산과 마을의 고을 강원도는 한강의 발원지인 오대산을 비롯해서 춘천과 원주를, 태봉의 도읍지를 철원에 대해 설명한다.

인재의 광으로서 경상도는 퇴계 이황의 고향인 예안등 명현들의 고향을 이야기하고 대구 주변 마을과 왜와 대마도까지 서술한다.

백제의 땅이자 후백제 견훤이 차지했던 전라도는 고려 왕건의 한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이 곳 전라도는 고봉 기대승, 일재 이항, 하서 김인후 등 많은 인재가 태어난 곳이다. 특히 임진강과 이순신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서울 세가의 근거지인 충청도는 공주와 계룡산이 있고, 백제의 옛 서울인 부여가 있다. 이 지역의 인물로 학사 남수문과 우암 송시열이 유명하다. 또한 청주와 정도전, 이인좌의 난 등에 대해 썼다.

마지막 경기도는 병자호란과 남한 산성 이야기를, 바닷길의 요충지 강화도, 조선의 수도인 한양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3. 복거총론

사람이 살 터를 정할 때 네 가지를 참고해야 한다.


첫째는 지리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생리가 좋아야 하고, 셋째는 인심이 좋아야 하고, 넷째 산수가 좋아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좋은 땅이라 할 수 없다고 이중환은 말한다.

"지리"란, 먼저 물의 흐름을 보아야 하고 다음으로는 들의 모습을 살펴야 하며 산의 모양과 흙의 빛을 살피고 조산과 조수(앞으로 흘러드는 강물)을 보아야 한다. 

"생리"는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말한다. 의식(입고 먹는 것)의 원천이 되는 일에 힘쓰고 그 뒤에 예의의 발단이 되는 것을 다스린다 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본성을 숨기지 않고 나타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비옥한 땅의 조건, 교역이 활발한 강과 하천을 다룬다.

팔도 서민들의 "인심"을 아래와 같이 대략 이야기 하고 있다

 평안도가 인심이 순박하고 후해서 제일이요, 그 다음은 풍속이 진실한 경상도이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접경하여 백성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백성으로 몹시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좋지 않은 일에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 들판의 마을들은 백성의 재물이 보잘 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익될 만한 것만 좇는다. 

"산수"에서는 금강산의 절경과 설악산및 오대산과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등의 명산들과 강 주변의 살만한 마을 등에 대해 서술한다.


택리지는 "살만한 땅을 가려 택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지역의 지리적, 사회적, 경제적 요건을 두루 거론하였고 풍수론 중에서도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점들은 받아들여 간간히 감여가(풍수사)의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중기의 지리와 사람 살이를 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 읽는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징비록"


류성룡(1542-1607)은 1542년, 즉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떄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세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25세 되던 1566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임진왜란 발발시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다가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하였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하였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해서는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서울 수복 후, 제조를 맡아,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하였다. 그러나 그는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으로 관직을 삭탈당하였고 그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저술에 몰두하였다. 그 후 복관이 되어 조정에서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일체 응하지 않았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서애집", "영모록", "징비록" 등이 있다.


자신이 몸담았던 조정과 스스로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며, 임진왜란 전후의 냉정한 현실 인식을 통해 후손들에게 값진 교훈을 남겨 준 이가 바로 유성룡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포화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고위 관리였으며, 특히 전쟁 수행 책임자 가운데 최고위직에 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라는 점, 그 내용 또한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뛰어난 저술가인 저자의 능력이 충분히 나타난 글은,독자들로 하여금 전쟁의 현장을 누비는 듯한 착각에 빠뜨릴 정도이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쓴 동기는 '징비'란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문장,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징비록"은 상.하 2권과 '녹후잡기', 그리고 "근포집" 2권, "진사록" 9권, "군문등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하 2권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이 담겨 있으며, '녹후잡기'는 저자가 임진왜란이 지속된 7년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근포집"은 저자가 올린 차 및 계시를 모은 것이고, "진사록"은 1592년 이듬해에 이르는 동안의 장계를 수록한 것이다. "군문등록"은 저자가 도체찰사로 재임하던 때 쓴 문이류를 모아 놓은 것이다. "징비록"이 처음 출간된 것은 1633년으로, 그의 아들 유진이 "서애집"을 간행하면서 그 안에 수록하였다. 이후 1647년, 그의 외손자인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16권으로 구성된 "징비록"을 간행하였다. 


본 번역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녹후잡기'로 이루어진 판본을 번역 원본으로 삼았다.

서해문집에서 나온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징비록"은 번역본과 함께 그림과 사진, 지도, 인물이나 관직 등의 해설을 함께 실어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임진왜란이 왜, 어떻게 일어났고, 전쟁 이후의 삼국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유성룡이 누구이고 "징비록"은 어떤 책인지를 번역본 앞에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이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인 조선과 왜, 명의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과 권율, 이순신 등의 장군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활약했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있어 생생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녹후잡기"에 '성'이나 '무기' 등에 대한 그림이 덧붙여 있어 전쟁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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