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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두 Mar 08. 2024

[도서리뷰] 문학동네 시인선

[ 2024.03.08 ] 유계영/유강희/정영효 시집

이미지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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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동네 시인선 119 유계영 시집  "이런 애기는 좀 어지러운가"(2019)


유계영은  2010년 " 현대문학" 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시집 『온갖 것들의 낮』『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산문집 『꼭대기의 수줍음』 등을 썼다. "이런 애기는 좀 어지러운가"는 그녀가 펴낸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책에서 시인은 "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시는 시인의 말을 쓰다가 완성해버린 것이다. 하고 싶은 말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단어가 바닥나 버렸다.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라고 말한다. 


유계영의 분홍빛 세 번째 시집, "이런 애기는 좀 어지러운가"는 총 4부와 조연정 문학 평론가의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우리는 시끄럽고 앞뒤가 안 맞지 / 2부 손까지 씻고 다시 잠드는 사람처럼 / 3부 이렇게 긴 오늘은 처음입니다 / 4부 별 뜻 없어요 습관이에요. 


조연정 문학평론가(못다한 이야기) 의 다음의 해설에 주목해 보자.

유계영 시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죽은 나'의 미래 일기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대목 또한 맥이 통할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성이 말처럼 당연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과거를 떠올렸을 때 거기 남은 내가 낯설고 그 시간이 내 것 같지 않다면, 오늘의 나는 오늘 태어난 나이자 죽은 나의 미래라는 감각이, 그 사이에서 ‘나’가 느끼는 곤란함과 혼란함, 상실감을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내가 읽고, 꼽은 시 역시 "미래 일기"다. 어제, 오늘, 내일이란 시간,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시집이 전체적으로 잘 읽혀지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제목처럼 이런 애기가 좀 어지러워서 그럴까?


미래 일기

                                                                   유계영


나는 오늘 스푼 위의 흰  방울처럼 지저귀었다

나는 오늘 빈곤할수록 불룩해지는 주머니의 내부다

희박한 공기를 나눠 마시자

오늘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꿈속에서도 숨이 차서 걷기만 했다

어젯밤 누가 흘린 장갑들은

바늘이 지나간 자리와 왼쪽과 오른쪽

교회의 첨탑에 무관심해지기로 했다


엉성한 솜씨의 어린이가 채색한 밤하늘처럼

언뜻 종말의 흰자위가 힐끗거렸다

나는 오늘 그것을 마주보았다


오늘의 나를 목격했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베개 위로 늘어뜨린 산발의 머리카락

내일 아침이면 지붕 끝에 묶여 있다. 



2. 문학동네 시인선 113 유강희 시집 :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2018)


문학동네 시인선 113권. 1987년 스무 살 나이에 등단해 1996년 첫 시집 <불태운 시집>, 2005년 두번째 시집 <오리막>을 펴낸 유강희 시인. 13년이 지나 66편을 담은 세 번째 시집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를 펴냈다.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시집 『오리 발에 불났다』 『지렁이 일기 예보』 『뒤로 가는 개미』 『손바닥 동시』 『무지개 파라솔』 『달팽이가 느린 이유』, 시집 『불태운 시집』 『오리막』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산문집 『옥님아 옥님아』를 내고, 『어린이 손바닥 동시』를 엮었다.


시인의 말 

삶이 자꾸 시를 속이려 들거나 혹은 시가 삶을 속이려 들 때마다 나는 우두커니 먼 데를 바라본다. 먼 데가 와서 나를 태우고 끝없이 날개 짓하여 부다 날 서럽지 않게 어디 론가 더 멀리 데려가 주기를 그 먼 데는 그렇다면 새이어야겠다. 먼 데가 먼 데와 하나로 딱 붙어 사랑의 지극한 말씀이어야 겠다. 하여 부질없고 헛되이 나는 별들의 반짝임이 실은 아프디 아픈 별의 속엣생피라고 그대 앞에 그제야 겨우 귀엣말할 수 있으리.


총 4부다.  1부 영원의 반짝이는 개울 하나 / 2부 잊힌 기억이 날개를 만든다 / 3부 당신과 나 사이 너무 섭섭해  4부 꽃을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유강희의 시집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는 '돌'로 시작해서 '돌로' 끝난다고. 시집의 처음과 끝에 '돌'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시가 배치되어 있으니, 이 시집은 '돌'로 지은 한 채의 석조 건축물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시집'이라는 형식이 언어로 지은 집이라면, 이 집의 방문객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마주치게 되는 것은 '돌'인 셈이라고.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돌'이 인간적인 영역의 바깥을 가리키는 '타자'의 형상이라면,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돌'은 "바닥에/저를/내려놓기 위해" '돌' 이라는 진술에 드러나듯이 낮은 곳을 지향하는 윤리의 형상일 것이라 설명한다.


그의 이 시집에는 대부분의 시에 꽃, 돌, 구름, 새 등과 같은 자연이 등장한다. 자연에 대한 시인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로서 풀어나간다. 

아래는 첫 번째 시인 '돌'과 마지막 시 '돌'을 옮겨 놓았다. 위의 해설을 토대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1. 돌


아직 던져지지 않은 돌


아직 부서지지 않은 돌


아직 정을 맞지 않은 돌


아직 푸른 이끼를 천사의 옷처럼 두르고 있는 돌


아직 말하여지지 않은 돌


아직 침묵을 수업중인 돌


아직 이슬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돌


그리고 잠시 손에 쥐었다 내려놓은 돌


아직 조금 빛을 품고 있는 돌 



2. 돌


돌의 팔은

얼마나 굵은가


바닥에 

저를 

내려놓기 위해 



3. 문학동네시인선 196   정영효 시집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정영효 시인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형상화했다는 평과 함께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문학동네, 2015)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그들이 속한 현실의 공간을 자신만의 구조로 재구성하며 “현재적 일상의 시공간에 스며든 시원적인 것의 흔적을 돋을새김의 필치로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무심하면서도 첨예하게 절제된 하드보일드 문체와 더불어 철학적 알레고리의 풍모가 스며”(문학평론가 이찬)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출처: 알라딘 책소개)


정영효의 두 번째 시집,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은 남색 바탕에 분홍 글씨로 표현되어 있다. 시인은 이제는 작별의 시간이다.(2023)라는 말을 남긴다. 

이 시집은 아래와 같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타난다

일층/기숙사/확장/불록/추방/있다/외국인/회유/행사/자료실/아직은 모른다/전시회/조합원/면책/속임수/단체들/언덕을 넘는 사람들

2부 이름이 저무는 쪽에

고양이가 울 뿐인데/어린이 공원/난관/분명한 밤/자율성/명분/내구력/도달할 미래/손바닥 소설/지키기 위해/여럿의 문제/ 증명하는 공/개발/연속물/투어/오지 않는 날/최소한으로

3부 조금 더 먼 곳에서 우리는 모이고 있었다

차단막/플랫폼/어떠한 방식으로든/아무도 없다/능원길/구역/건물주/거래/지분/손님/강당/모면/난로/영향력/잠행/ 종착지


시 제목을 나열한 이유는 각 부의 제목과 시의 제목이 서로 연관성이 있고 대부분이 명사형 제목으로 간결함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말하듯이 사람과 공간에 대한 잦은 발화가 첫 시집과의 차이점이며 이번 시집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시집 제목인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는 시 "아직도 모른다"에 나온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의 아래의 해설을 참고하여 시 "아직도 모른다"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아직은 모른다"에서 시인은 문턱을 경계로 두 개의 사건을 병치 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가령 염소가 울타리를 넘기 이전과 이후, 어떤 것을 의심하기 이전과 이후, 무서워지기 이전과 이후, 선택하기 이전과 이후...... 이 시는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병치시키고 있다.



아직은 모른다  (정영효)


울타리를 넘기 전까지 염소는 온순했다 의심하기 전까지 거짓은 단순했다 무서워지기 전까지 표정은 희박했으며 선택하기 전까지 분명히 기회가 있었다 말하지 못해서, 말보다 자신이 더 확실해서 드러나기 전까지 증거는 숨어 있었다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외국인으로 불리기 전까지 그는 어느 도시의 시민이었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유가 부족했을 것이다 끝나지 않았더라면 짐작을 멈췄을 것이다 반복할 수록 스스로 갇혀버린 생각에는 만족하기 전까지 계획이 없었다 포기하기 전까지 불안은 많았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여기서 살아왔고돌아보는 모습을 붙잡으며 여전히 설명을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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