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신들의 섬’이라는 표현이 발리를 수식하는 표현들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이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신들을 모시는 힌두교(hinduism)와 그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는 수많은 템플들 그리고 발리 사람들의 종교의식과 행사들은 발리를 아주 매력적이고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발리의 종교인 힌두교에 대해서는 한 챕터를 통해 해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리고 어딜 가나 있는 신성화된 동물들과 신화 속 장면들이 정교하게 묘사된 템플과 오래된 집과 건축물들을 보다 보면 세월의 흔적을 견고하게 보존하는 발리인들의 모습에 감동받는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의 섬이자 자바(Java)의 동쪽 그리고 롬복(Lombok)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발리에서 투어리즘이 전체적인 비즈니스의 60%를 차지할 만큼 발리인들에게 관광객과 관광사업은 큰 생계유지 수단이다. 덕분에 발리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 이자, 세계 1위의 허니문 여행지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관광사업을 통한 인도네시아의 국가 홍보 및 관광 사업이 농업 관련 상품 및 가스와 오일을 수출하기 위한 원천이 되길 바라며 국가 예산에서 꽤 많은 비중에 달하는 돈을 관광 산업에 투자해오고 있다고 한다.
종교가 문화와 역사와 밀접하게 엮인 발리의 종교 문화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국가인 것과 반대로 발리의 대표적인 종교는 힌두교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중국의 불교가 뒤섞여 발리만의 고유한 힌두교 문화를 만들어 냈다. 또한, 발리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미술 스타일과, 현대와 전통이 합쳐진 무용 그리고 조각, 가죽, 세공 기술 그리고 음악으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같은 아시아권에 속하지만 여전히 너무나 다른 환경과 전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도 같은 아시안이라는 어떠한 내적 친밀감은 있으나, 같은 아시아 인이 봐도 너무나 다채롭고 이국적인 발리의 풍경을 직접 바라보니, 왜 발리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유러피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었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하루 이틀 동안은 여전히 여행의 꿈에 부풀어 있다. 특히 여행을 떠나올 때 한국에는 무더운 더위와 함께 시작된 장마 덕분에 장마철 특유의 후덥지근함과 끈적한 느낌과 회색 하늘을 떠나, 해가 쨍쨍한 곳으로 오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비 오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은 해를 보고 살아야 하는구나- 를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발리는 서핑으로도 명성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서퍼들이 멋있게 그을린 몸을 자랑하며 서핑을 하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그들의 자유와 생명력이 부러워졌다.
항상 열심히 운동하고 자연을 가까이하며, 최대한 필요한 것만을 갖추고 사는 미니멀리즘적 삶을 동경해왔다. 열심히 운동을 해야지만 장착할 수 있는 잔 근육들과 자연의 색을 몸에 갖추고 좋아하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건 큰 축복이었다.
Bingin beach, Bali
햇빛은 강렬했지만 회색 구름이 점차 몰려오고 있었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싶었지만 파도가 약간 강했고 무엇보다 발을 베일 것 같은 조각돌과 죽은 산호 때문에 그냥 해안가 근처에 앉아 바닷소리를 만끽하고 싶었으나, 역시나 관광객이 많은 곳엔 철 지난 서양 팝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연의 소리만으로도 충분해야 할 곳에서 예전에 듣던 팝송들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아주 짱짱한 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니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과 상반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몇 분 앉아 있지도 못하고 해변가 펍으로 들어갔다.
세계화(globalisation)에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관광이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발리에서 발리 여행 경비와 시간을 지불할 수 있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북미 등 세계 곳곳의 여행객들이 찾는 이곳에서 미국-영국식 팝 음악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발리스러운’ 것들을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객에게는 별로 달가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문화적 경제적 21세기형 식민화 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렇게 자연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한 발리와 같은 문화권에서 물 부족을 겪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리조트와 호텔에서 소비되는 수영장 물의 양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물을 소비하는 것은 발리 현지인들이 아닌 ‘관광객’들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프랑스의 야비함 때문에 평생 고통을 겪는 아이티(Haiti) 사람들, 기후 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상류층이 아닌 빈곤층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외국 팝을 들으며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음식을 시키고 앉아있자, 나이 지긋하신 발리 할머니께서 다가오셨다. 처음엔 내가 하고 있던 목걸이를 칭찬하시며 말을 걸어오셨다. 그렇게 짧게 대화를 하던 중 자신이 만든 실 팔찌를 보여주셨다. 평소에도 주얼리와 액세서리를 좋아하기에 항상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나는 발리에 온 기념으로 한두 개 구매하고자 했다.
가격도 한국의 절반 가격으로 두 개나 구매할 수 있었다. 남편의 탁월한 가격 흥정 실력으로 아주 살짝 더 저렴해진 팔찌 두 개를 팔에 묶고 나니 이제 슬슬 여행 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너무 고마워하셨다. 요즘 관광객이 많이 없어서 장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이 시점에서부터 대다수의 발리인들의 하루하루는 생존 그 자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에서도 지하철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소소한 것들을 판매하시는 어르신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현금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많은 현대인들 중 하나인 나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뭔가 사드리고 싶으면서도 머뭇머뭇하게 된다.
막상 사다가 쓸 곳이 없다거나, 현금이 없다거나 이런저런 변명으로 말이다.
해변가에 앉아있다거나 심지어 해변가의 레스토랑에 앉아있어도 어린아이들과 아주머니 그리고 할머니들 상인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떠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호객행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까지 이런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생각과 함께 애잔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 아들도 어린아이들이지만,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이 햇볕에서 말도 통하지 않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물론 이들의 삶을 보며 연민을 느낀다거나 이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불행 혹은 나보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삶을 보며 그들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만큼 교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힘들어 보이는 처지의 누군가 라도 그 사람의 삶이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과 감사함으로 가득하다면 물질적 욕망과 성공을 갈망하는 도시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대다수의 도시인들보다 의미 있는 삶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것,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것 그리고 몸이 아프고 큰 병에 걸려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 이것의 가난의 얼굴이라는 것을 적어도 인지는 하고 있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발리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 활동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다고 한다. 2002년에 발리 쿠타(Kuta)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202명의 관광객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도 잠시 동안 발리를 찾는 관광객 수가 줄어들고 주민들의 경제적 활동에 타격을 받았지만 이번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로 문을 닫은 식당과 상점 및 호텔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번 경험을 통해 농작 및 발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관광객에게 의존해 있는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 하자는 목소리가 발리 내부 안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실제로 발리의 쌀 그리고 차, 커피, 다양한 향신료들은 수준 높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커피만 하더라도 발리만의 고유하면서도 깔끔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듯하다. 이것을 알고 나니 화려한 관광업과 리조트 이면의 현지인들의 고통이 약간은 현실로 다가왔다. 부디 발리 사람들이 불안정적인 투어리즘 외에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관광업 만큼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