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들린에게 ‘만진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경험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손은 움직임이나 생기가 없었지만 이제는 신기할 만큼 넘치는 활력과 감수성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어루만지는 것만으로 대상을 깊이 있게 파악했다. 그녀의 손 능력은 정말 놀라웠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기조차 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Suluban Beach, Bali
20대에는 해변가의 삶을 동경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바다 위로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그런 낭만을 원했다. 특히, 겨울 바다를 좋아하기에 겨울바다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며 낭만을 키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으로 고통받는 21세기에 바닷가 근처에 집을 짓거나 구매하는 것은 약간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집들 중 해변가 근처에 있는 집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미래의 피해에 취약하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며 공상에 빠지고 바닷소리를 들으며 해변가에 앉아 책을 읽고 짧은 낮잠을 청하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연의 선물이자 휴가의 꽃이 아닐까 싶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발리에 왔다. 우리가 세 번째로 방문한 해변가는 수루반 해변(suluban beach)이다. 이 해변은 발리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매력을 가진 해변 가중에 하나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바위의 좁은 틈을 통해 만들어진 경사와 계단 그리고 통나무 경사로를 통해 접근하면 발견할 수 있는 석회암, 그리고 거센 물살을 즐기는 서퍼들의 모습과 깔깔거리며 파도를 타는 발리 아이들의 모습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웃고 있는 느낌이다.
이 해변은 신비로운 둥굴이 있는 울루와투 해변까지 이어진다. 술루반이라는 단어는 발리어 단어인 메술룹(mesulub)에서 따온 것으로 '절을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변에 들어가기 전에 매우 좁은 동굴을 통과하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발이 젖는다. 이 해변은 전 세계의 서퍼와 사진가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곳에서 아쿠아 슈즈를 신고 서있었다. 발리에 오시는 분들께 아쿠아 슈즈를 강력 추천한다 ! 쿠팡에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꼭 구비하시길.. 생각보다 바닥에 발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죽은 산호와 돌 조각이 있다. 그래도 파도가 생각보다 강했지만 수면의 높이는 매우 낮았기에 아이들도 부모님의 보호가 동반된다면 재밌게 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파도에 몸을 맡기다 보니 짠 바닷물을 계속해서 들이마셨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굴처럼 생긴 곳에 몸을 수그리고 들어가서 통과하니 반대편 해변가가 등장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해변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까지 덩달아 마음이 편해지는 광경이었다.
열심히 놀다 보니 역시나 라면이 생각났다. 어딜 가나 동양권 문화에서는 해변가 옆에서 작은 노상점을 운영하는 할머니들이 계신 듯 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칼칼한 한국의 컵라면이었다. 아쉬운 대로 인도네시아 컵라면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편안하게 식당에서 좀 쉬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 허름한 카페로 들어섰다. 계속해서 먹고 싶던 피시 앤 칩스와 맥주를 시키고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바다와 하늘의 전망을 감탄하며 바라봤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지만 아쉽게도 음식은 정말 형편없었다. 크기도 아주 적은 냉동 생선 튀김과 감자튀김을 먹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튀김 음식을 두고 신발을 튀겨도 튀김음식은 맛있다고 하지 않는가. 원래도 튀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그냥 맛있게 먹었다. 물론 호주나 영국에서 먹는 정말 ‘찐’ 피시 앤 칩스와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형편없었지만, 이런 헛웃음 나는 음식에 속는 것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에서 시중의 기격보다는 오버 프라이스(over-priced, rip off)의 음식 값을 지불하는 것도 한두 번쯤은 꼭 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나니 너무 더웠다. 다시 바다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까 식당에 가기 전에 발견한 해안가를 식당에서 바라보니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옆 해변으로 가니 여전히 물의 높이는 낮았지만 파도는 약했다. 몇 군데 큰 물 웅덩이처럼 돌이 감싸고 있어 그냥 혼자 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뜨거운 햇빛을 향해 얼굴을 눕히고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짜디짠 바닷물의 장점은 몸에 힘을 쭉 빼고 떠 다녀도 금세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다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둥둥 떠다니다 보면 갑자기 두려움 한 조각이 다시 내 마음을 침범한다. 혹시나 바다 깊숙이 떠내려 가면 어쩌나 싶어 정신을 차려보면 처음 시작한 지점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와있다. 그렇게 몇 번 바다에 떠다니다 보면 나만의 노하우쯤은 생긴다. 파도의 방향과 반대로 팔을 휘저으며 떠다니면 해변가에서 멀리 떠내려가지 않는다. 바다에 떠다니는 순간만큼은 자연과 물화 일체 된 기분이다. 나의 귀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상의 소음은 차단되고 나의 심장소리가 극대화된다. 내가 숨 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고 시선과 소음에서 나 자신을 차단한 채 그렇게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상상을 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바쁨의 연속이다. 무엇을 해도 바쁘다. 특히, 서울에서의 삶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하며 항상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19살에는 대학을 가야 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일분일초도 낭비하지 말고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 생활중에도 수많은 자격증과 어학연수 및 봉사활동을 다녀야 한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몇 년 다니다 보면 회의감이 찾아오고 그렇게 직장에 사표를 낸 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다른 취미생활 및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뛰어든다. 그러다 보면 금방 30대가 되고 이제는 연애도 마음대로 못한다. 치솟는 물가 대비 결혼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관계에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며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어찌 저지 운이 좋아 나름 ‘운명의 상대’ 혹은 썩 나쁘지 않은 상대와 결혼을 준비하는 것조차도 전쟁의 시작이자.
서울의 삶은 항상 바쁘고 막막하다. 집이 언제부터 투자의 수단으로 탈바꿈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한국인들의 삶은 최대한 빨리 좋은 집을 장만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을 공부하고 투자 정보를 모으고 그렇게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돈에 대해서 생각한다. 애초부터 그런 삶을 꿈꿔 보지도 관심을 둬보지도 않아서 인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하고 그런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약간은 버거웠다.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과 삶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나보다 큰 부를 축적할지도 모르겠으나, 내 온 정신을 물질에 집중하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어릴적부터 인간이 맞이할 마지막 '죽음'은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어릴적부터 유한한 우리의 삶에 대해 끊임 없이 생각했다. 어찌보면 우울한 생각일 수 있으나, 우리는 조금 더 우리의 시간과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항상 걸음을 멈추고 내 주변과 세상을 돌아보는 여유를 장착하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자신이 증발해 버린다고 해도 그것 또한 나의 ‘운명’ 일 테니, 하루하루 부끄럼 없이 즐겁고 정직하게 존재하고 싶었다.
현대인들의 바쁘고 비참한 현실을 대변이라도 하듯, 온갖 힐링 시스템이 난무한다. 몸의 내부와 외부의 독소를 제거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뉴에이지 운동 방식과 동기 연설 부 연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인터넷 세상을 지배한다.가끔은 그냥 내 몸의 전원을 꺼버린 채 어둠을 응시하며 외부의 자극과 내 내부의 잡음을 차단한 채 그렇게 ‘멍’ 이란 것을 때리는 것이 그 어떤 위로의 말과 동기부여 연설보다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더라. 답해야 할 이메일과 메세지, 어느덧 중독되어버린 소셜미디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멋진 예술가들이 많지만 사실상 유럽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온몸을 내던져 몸의 감각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만큼의 감동을 받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항상 그것이 아쉬웠다. 내 몸의 감각을 되살려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일이 이 건조한 도시에서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돈된 예술작품은 매력이 없다. 재미가 없다. 약간은 날 것의 느낌의 표현력을 좋아한다. 수준 높은 기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감각을 건드리는 작업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러한 감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관람자도 깨끗한 도화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는 만큼 내가 느낄 수 있는 만큼 예술작품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취향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조금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6년전 런던에서 미대를 졸업 후 덴마크의 미술관을 가기 위해 혼자 덴마크로 향했었다. 바다 옆의 미술관으로 유명한 루이지아나(lousiana museum)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아쉽게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각장애를 가진 한 예술가의 액션 페인팅이었다. 시각이 마비되니 시각 외의 몸의 모든 감각이 일반 사람들보다 예민하게 작동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정말 ‘날이 선’ 감각이었다.
우리도 가끔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내몸이 보내는 신호와 내적 울림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삶을 관통하는 감각을 깨워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떠다니다 보니 나의 크고 작은 걱정조차 하찮게 느껴졌다.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우리의 삶 조차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내가 언제 어떤 병에 걸려 어떤 사고로 어떻게 삶을 마감할지 모른다.
반대로 내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큰돈을 벌게 될지도,
내일 당장 어떤 기회가 나에게 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거대 자연을 마주하다 보면 이 바다에 휩쓸려 나 자신이 바다 깊숙이 떠내려 갈지도,
산속에서 뱀을 만나 놀란 마음으로 뛰어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머리를 돌에 부딪힐지도,
갑자기 천재지변이 일어나 내가 자고 있던 리조트가 바다에 휩쓸려 떠내려갈지도,
우리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약간의 예민함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충 자신의 삶을 짐작할 순 있어서 구체적으로 무언가가 일어날 것을 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발리에서 화산이 터지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과 함께 쓸데없는 걱정이 시작됐다.이러한 걱정과 두려움까지도 차단하며 하루하루 의미를 되새기고 살아가는 것에도 에너지가 소비된다. 이런 에너지조차 다 바다에 흘려보내고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길 바랬다.
오직 나의 심장소리만을 들으며 내가 정말로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그 느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