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유혹

by LenaMilk

세계의 주요 도시들의 공통점을 한번 더 살펴보면, 문화와 예술, 패션의 요충지라는 점. 그리고 물가가 비싸고 집 값이 비싸며 위험하고, 차가 많다는 점. 그리고 또 한 가지, 욕망이 중심지라는 점이다.

서울도 똑같다. 서울의 집값은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 정책과 젊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사안이었다. 요즘 집값이 조금 떨어진다지만, 아직 멀었다. 거품이 확실히 껴버린 서울의 집값에 분노하면서도, 런던과 뉴욕 같은 도시의 집값과 비교하면 그래도 이렇게 까지 화낼 것인가 싶다. 하지만, 어쨌든 서울은 뉴욕이나 런던이 아니다. 전 세계의 부가 몰려드는 런던과 뉴욕을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서울보다 월세가 비싼 곳이 뉴욕, 런던 그리고 홍콩, 싱가포르이다. 한 번은, 홍콩 BBC에서 방송한 홍콩 청년들의 주거 환경의 실태를 보며 그래도 서울의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어째됐건 나는 서울에 살아가고 있고 서울의 집값은 좀 비현실 적이다. 이렇게 못생긴 아파트를 기본 8억에서 15까지 주면서 살 의향도 능력도 아직은 없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진심으로 이민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남편의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영국으로 가는 방법도 진심으로 고민 중이다. 런던의 집값이 서울보다 비싸다 하지만, 같은 가격으로 마당을 가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모기지(morgage)'제도로 집을 그래도 쉽게 살 수 있기에, 내 또래의 런던이 거주지인 친구들은 이미 모기지를 통해 영국에 집을 장만했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한국에 좋지 않은 정신병이 돌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을 못 가니 명품 소비가 늘고, 명품 소비가 느니 따라서 가품의 소비가 늘고, 그러다 보니 욜로족들의 철학이 각광을 받고, 그러다 보니 삶의 철학이 오염됐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것만큼 소비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절대로 명품 소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명품 브랜드가 확실한 퀄리티와 디자인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그것을 소비할 경제적 능력과 여유 그리고 이유가 있다면 소비는 철저히 개인 자유의 영역이다.


하지만, 문제는 10대부터 20대 초반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까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다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돈이면 해결된다는 물질 만능주의가 급물살을 탔다는 것이다. 물론,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 돈이 너무 없으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고, 벌레가 들끓는 집에서 병을 얻을 것이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계절별로 가족들 친구들, 연인과 여행도 못 간다. 아니, 애초부터 연애는 생각조차 할 수없다. 젊은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연애를 하며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사치이다. 커피 한잔에 5천 원을 내고, 티백을 우려 주는 차 한잔에도 6천 원을 지불하며 케이크까지 시키면 금방 카페에서 2만 원의 돈을 써야 한다. 그리고 밥까지 먹고 나면 하루에 5-6만 원은 기본이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와 집값만 상승선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그리고 방법을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나 또한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면 더 많이 벌고 더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시대는 아닌 듯하다. 물론,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과 물질, 정신적 투자를 해서 나의 실력을 탄탄히 만들어 놔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양보단 질의 시대이기에, 나의 능력과 효율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순수 미술을 전공해서 인지, 돈보단 정신적인 것과 예술성이 중요했다. 20대 후반까지도 돈보다는 나의 이상과 꿈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첫 회사에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고, 어엿한 성인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리고 밥을 사드리고, 나 자신에게 나 스스로 물질적 투자를 하며 돈의 소중함을 맛봤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1년 남짓 했을까, 월급을 잃는 게 무서웠지만 이렇게 월급에 익숙해지면 큰돈은 못 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개인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내가 월급보다 더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족감은 높다. 물론, 들쑥 날쑥한 매출에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아직까진 부모님과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일단은 내 사업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글 쓰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남편과 부모님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꿈도 못 꿨을 것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사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각박한 사회생활에 적합성 성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무래도 꼬박꼬박 받는 월급의 소중함을 느끼고, 사회생활의 이점도 맛봤던 지라 가끔 회사를 출근하고 퇴근하던 재미와 작고 소중했던 나의 월급이 그립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티가 난다. 그래서 내가 순수미술을 전공하고서도 대부분의 작가들의 성향을 싫어한다. 그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자신 위주로 생각을 하는 것에 익숙하기에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많다. 대학교 때부터 그런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나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고, 결혼 생활이 도움이 많이 되지만 여전히 가끔 두렵다, 어느 순간 내가 내 중심적인 사람으로 변해 주변에 폐를 끼치고 다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돈맛을 보고 나니 돈이 좋아졌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살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자 자유도 늘어난 것만 같았다. 고작 사회 초년생의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도 이렇게 사는데, 정말 전 세계 부호들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인지, 아니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나보다 10배를 버는 사람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모으면서도 또 그렇게 열심히 썼다. 원래도 대부분의 물건을 세일 기간에 장만하는 지라, 나름 지혜로운 소비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깨끗한 중고 물품도 많이 구입했다. 그런데,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부모님께 천 단위의 돈을 받고 나니, 야금야금 조금은 비싼 물건들을 구입하고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돈을 쓰고 나니 너무 쉽게 통장이 바닥을 드러냈다. 물론, 심각한 사치를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빠져버린 유럽 빈티지 주얼리와 액세서리를 심심치 않게 모으고, 일정 부분을 사업에 투자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열심히 놀다 보니 그렇게 돈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신혼집으로 짐을 옮기며 내가 얼마나 많은 가방과 옷 그리고 주얼리 , 책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가방은 중고 시장을 통해 처분했으며, 주얼리도 이틀에 걸쳐 쓸 것과 버릴 것 팔 것을 구분했다. 약간 충격적이었다. 사실, 출퇴근을 하지 않기에 매일 캐주얼한 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 거린다.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휴대폰 하나 들고나갈 때도 있다. 즉, 이 모든 물건들을 계절에 맞게 다 사용하지 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2년 동안 10킬로 정도의 지방을 얻은 것도 나의 소비 습관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옷이 많아봤자 입는 옷만 입고 약간 가격대가 나가는 옷은 당분간 입을 일도 없다.


홍수처럼 몰려드는 정보와 물건들 그리고 거기에 녹아들듯 홀려버린 현대인들은 신용카드에 용기를 얻어 그렇게 사고 버리고 사고 먹고 아프고를 반복한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치부한다. 나 또한, 우울할 때에 백화점을 어슬렁 거리면서 만 원짜리 열쇠고리라도 사야 적성이 풀렸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을 모으는 것도 좋아한다. 책값도 모이면 만만치 않기에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중고서점을 이용해왔지만, 사실 몇몇 정말 인상 깊은 책을 빼놓고는 두 번 다시는 열어보지 않는 책도 꽤나 많다. 휴대폰에 깔려 있는 쇼핑 앱들을 구경하다 보며 또다시 장바구니가 꽉 차기 시작한다. 그렇게 쓰고 벌고 쓰고 벌고를 반복하다 보니 야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직작 상사의 모욕적인 발언과 성희롱도 참아야 하는 게 당연해진다.


돈이 없으면 행복하기 쉽지 않지만, 돈으로 행복의 요소요소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돈이 있든 없든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한다. 정상적인 사람의 만남이라면 굶어 죽을 정도의 가난함이 아닌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상의 범주가 계속해서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몇천만 원 명품 플렉스 영상이 넘쳐나고,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영상들이 넘쳐난다. 남이야 투자를 하든 말든, 직장 대신 대학원에 진학해 꿈을 좇든, 단칸방에 살며 여행을 다니고 그것으로 글과 콘텐츠를 제작해 꿈을 이루든 말든, 한국사람들은 남의 인생을 비하하기를 좋아하고 그것으로 인해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면 그 반대편 사람들의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이다. 한국에 그렇게 유학생이 많지만, 실제로 그곳의 로컬들과 같은 지붕 아래에서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하며,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 진정한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 호주 등 그들의 문화를 배운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렇게 오랜 시간 유학을 했음에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보다 더 보수적이고 꼰대 기질, 선비 기질 다분한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눈살이 찌풀어 진다. 정말 근본 없는 사람들이 많다. 댓글들도 가관이다. 남의 삶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자존감이 낮은 민족이다. 아직도 한 번씩 생각나는 댓글이 있다. 자신의 지인이 박사과정 중에 있는데 항상 상념에 사로잡혀 다양한 글을 소셜미디어에 포스트 하는데, 그걸 보면 참 할 일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친구가 실제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겠냐는 댓글을 'ㅋㅋㅋ'를 써가며 나열한 댓글이다. 그 댓글을 보고 기가 막혔다. 자신의 지인을 비웃는 댓글이라는 것과, 이 사회는 쓸모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말에 순종하고 다루기 쉬운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진실에는 침묵하고, 거짓에는 열광하는 사회이다. 또한, 요즘엔 정말 한국에서 학위 따기가 더 쉬워졌다고는 하지만(학교와 과에 따라서) 여전히, 그 긴 시간 자신의 분야를 연구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집념이다. 고작, 자신의 귀중한 시간에 쓰레기 같은 댓글을 남기는 본인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말이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며 전혀 자존감이 낮을 필요가 없는데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충격적이기도 안쓰럽기도 하지만, 성인들의 삶에 동정할 필요 없단 생각이 스쳤다. 그들의 겉모습은 그럴듯해도 내면은 아이 같은 것인데, 20살이 넘은 성인의 삶을 동정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돈이 많거나 물질적으로 넘치는 삶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는 부를 가진 부자들의 타락과 자살, 우울증, 마약 의존, 알코올 의존과 같은 수많은 예시를 보지 않았는가. 그냥 오늘 하루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뿐이다.


과도한 빚을 내면서까지 집 장만을 하고 외자차를 몰며, 빚을 내서 결혼을 하고 샤넬 클래식 백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광경을 보며 남편은 매우 의아해했다. 한마디로 정신 나갔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대출받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느냐 였다. 카드값도 대출도 다 빚인데 말이다. 외국 사람들의 말이 다 정답은 아니지만, 한 가지 배워야 할 점은 그들은 생긴 대로 산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과도한 사람과 허세에 찌든 사람들이 있지만, 과유불급을 경계하고 가진 만큼 노력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유럽 사람들은 그랬다. 우리 집보다 잘 사는 영국 사람들 집에서도 살아봤다, 그래도 그들은 명품을 소비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과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해 즐기고 일한다. 남의 삶에 관심이 없다는 게 차가워 보일지라도 , 적당한 무관심은 독보단 이득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에 있는 부자들 그리고 나보다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마주한다. 그들은 나보다 시간이 많고 돈도 많다. 그렇기에 삶이 더 풍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속사정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남이랑 비교할 시간에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처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가끔 마음이 힘들 때며 보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도시에서의 정신적 빈곤함을 경계해야 한다.


이 욕망의 도시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오염되지 않는 가치관으로 힘든 이웃을 돕고 나 자신을 돌봐가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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