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生氣)가 없는 도시

by LenaMilk


"우리가 만든 기계들은 불편할 만큼 생생한데, 정작 우리는 섬뜩할 만큼 생기가 없다"

- 해러웨이 선언문


2년 전 갤러리에서 근무를 하며, 전시 기획을 할 때 열심히 읽던 책이다. 결국 실현되지 못했던 전시의 주제는 팬데믹 시대의 IRL(in real life)에 관한 것이었다. 인터넷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집에서 컴퓨터로 대화하고 컴퓨터로 일을 하며, 새로운 기계로 대체되는 인간의 노동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전시였다. 그리고 이것을 준비하며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었다. 한국어 번역본을 이북으로 구매하여 읽다 보니 번역의 매끄러움과는 별개로, 굉장히 난해하게 다가오는 내용과 표현들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한 번씩 떠오르는 부분이 바로 위의 인용 문구이다.


20세기 후반부터의 기계들은 과거의 이분법적 공식을 깨버리고 자연과 인공, 인간의 정신과 육체/혹은 동물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자생적인 발달과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발달이라는 제한을 넘어 이 모든 것이 섞여 혼종적 성격을 드러낸다는 인용 문구 앞부분의 설명을 더하면 뒷부분에 등장하는 "우리가 만든 기계들은 불편할 만큼 생생한데, 정작 우리는 섬뜩할 만큼 생기가 없다"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이 구절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생기가 없는 도시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한국의 문화 때문이다. 나조차도 하루 종일 무언가 읽고 듣고 간접 경험을 하는데 소셜미디어 및 구글 그리고 한국의 검색 사이트들, 유튜브를 들락날락 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하루가 가고는 한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방법이 달라졌으니,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 그리고 지식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삶이 윤택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기술과 새로운 현상을 다루는 인간이 이것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 문제인데, 그중 하나가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인터넷 세상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멀리 있는 친구들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하루 종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에 앉아있는 회사원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온 정신이 스마트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카페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나도 젊은데 계속 젊은 젊은.. 해서 웃기지만...)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분 두 분이서 뉴욕 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들으려고 듣던 게 아니라, 너무 또렷이 들려 약간 엿들었다. 그 여자분 중 한 분이 뉴욕 지하철에서는 와이파이도, 전화 자체가 터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안다. 런던에서도 똑같다. 와이파이는커녕 쾌쾌한 냄새와 찢어질듯한 기차 굴러가는 소리, 그리고 불통인 휴대폰까지. 하지만, 그래도 런던의 지하철이 좋았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만큼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시간만큼 멍을 때릴 수 있었고, 그 시간만큼 잠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서울은 어디를 가든 와이파이가 터진다. 그게 편안하고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강제로라도 인터넷 사용에 제약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해본다. 나의 의지가, 나의 편안함에 길들여진 삶을 이기기엔, 너무나 약하기에. 물리적으로라도 제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인터넷뿐만 아니라, 청소 로봇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발전하는 기계와 기술들 앞에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는 듯 하나, 디스토피아적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인간의 본능은 인간보다 특별하고 뛰어난 새로운 개체 앞에서 위협을 받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인간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건 단순한 유튜브 비디오가 아닌 깊은 통찰을 가진 글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꼰대적일까? 이 글을 쓰는 나 조차도 유튜브와 넷플릭스 영상에 위로를 받을 때가 있지만, 그 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큰 공허함에 휩싸인다. 몇 시간 며칠, 몇 주에 걸친 이야기가 끝을 다하면 그만큼 마음에 공허함이 남는 것이다.


스펙터클의 이미지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부유해지고 화려 해지지만 속은 속 빈 강정만큼, 눈의 생기를 잊고 생각하기를 멈춘다. 공학자들과 과학자들, 투자자들, 그리고 기술자들이 수많은 시간과 애정, 노력, 자본을 쏟아부어 만든 기계들은 불편할 만큼 빠르고 능률적이다. 이런 새로운 것들에 둘러 싸인 우리는 이상하리 만큼 생기를 잃어간다. 인간의 노동은 기계로 대체되고, 그렇게 일자리를 잃은 자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거나 삶의 무료함에 고독해져 간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움직여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일은 생계의 수단이자 자아실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꾸준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하고 찾아야 한다. 지금은 남들의 비위를 맞추며 남의 배를 불려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꼭 그런 의지가 아니더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성실함이 인간을 이루는 요소가 아닐까?


나의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의 힘.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을 정해주는 알고리즘. 뚜벅이는 오늘도 뚜벅뚜벅 서울을 걷다 지쳐 지하철로 귀가한다. 그리고 그렇게 뭔가에 취한 듯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마음 한쪽이 쓸쓸하다.

keyword
이전 05화I miss a walkable 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