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촌년이다. 사실 서울을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로 한국 사람이 서울만 잘 안다고 한국사람인가 싶은 의문이 든다. 나는 지리와 숫자에 약하다. 남편은 지리와 숫자에 강하다. 등산이 취미인 그가 백두대간을 완주하기 전까지 백두 대간 등산 루트가 있는지도 몰랐다. 같이 국내 여행을 하다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의 도시와 마을들을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렇다고 서울에서도 방향 감각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자주 길을 잃는다.
서울 촌년이라는 표현과 서울깍쟁이라는 표현은 서로 대조되면서도 비슷한 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촌년은 말 그대로 서울에만 있어서 외부 상황 및 경험에는 문외한인 사람을 일컫고, 서울깍쟁이는 말 그대로 도시 깍쟁이를 뜻한다. 도시에서만 자라서 도시 특유의 차가움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20대 초반쯤 어머니가 '너도 서울깍쟁이야'라고 하셨던 게 가끔씩 생각난다. 결코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욕도 아니다. 참 애매한 표현이다. 어머니는 부산분이시다, 대학을 서울로 오시며 서울에서 사신 지도 30년이 넘었지만, 어머니가 보시기에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가끔 서울깍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 촌년이다. 작년에 잠시 일하던 직장이 경기도 분당에 위치해서 목동에서 분당까지 총 4시간이 넘는 출퇴근을 했던 적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주 짧은 시간 근무를 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분당을 가봤다.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을 가보느라 성인이 된 후로 처음으로 과천도 가봤다. 인천은 딱히 갈 일이 없지만 정말 어쩌다 한번 가게 된다. 아! 인천 국제공항은 많이 가봤다.
이렇게 한국에서 서울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울 촌년이 아닐까 싶다. 특히 강남에 사는 강남 촌년/놈들은 강남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과연 우리가 얼마나 서울을 즐기고 있는 것인가 싶다.
실제로 서울에서 평생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 여기 가봤어?라고 물어보면 안 가본 경우가 많은데, 그중 한 곳이 노원구이다. 사실 노원구가 서울시에 속한 구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됐다. 노원구도 서울이다. 어릴 적에 노원구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거기도 그냥 다른 동네와 똑같은 서울이다. 친척분이 사시는 곳이라 몇 번 가봤는데, 공기도 좋고 나무도 많고 산도 가깝다. 서울 중심부보다 집값이 낮을 뿐이지, 서울은 서울이다. 그리고 무시할 집값도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서울에서 차를 가지고 가기도,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그렇다고 걸어가기도 꽤 먼 곳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아니다.
런던에는 템즈강이(Thames river)이 있고, 프랑스 파리에는 센느(Seine river)가 있다. 한국에는 한강(Han river)이 있는데, 마포구에서도 갈 수 있고 영등포구에서도 갈 수 있고, 서초구에서도 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강공원이 서울에서 제일 아름답고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서울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할 수는 있으나, 여전히 서울 촌년 딱지를 벗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해 보인다. 경기도를 더 잘 알아야 할까? 사실 나중에 국내여행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써보고 싶을 정도로, 한국의 시골에 아주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작년 여름에 다녀온 순천만 습지와, 고흥 바닷가 그리고 안암 한옥 마을 그리고 몇 년 전에 갔지만 한 번씩 꼭 다시 돌아가고 싶은 전주 한옥마을, 남편과 연애시절 도전했던 제주 올레길 걷기를 통해 구경했던 제주의 이모저모, 경기도 가평 등등. 한국을 그렇게 잘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나 자신이 서울 촌년인 것만 같을까.
영국에서 머물던 시절에도 혼자 작은 배낭을 메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가면 도착하는 브라이튼의 바닷가에서 몇 시간씩 멍을 때리고는 했다. 그것도 한 겨울에. 브라이튼에서 버스 타고 40분 정도였던가? 이제는 가물가물 하지만, 대략 30-4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도 세 번 정도 방문했던 것 같다. 닥터마틴 워커를 신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파란 초원을 걷다 보면 양 떼가 등장하고 그렇게 하얀 절벽에 도착한다(영국의 남동쪽(South East England)에 위치한 세븐 시스터즈는 살면서 꼭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해가 저물기 전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멍을 때린다, 관광객이 적을 때는 그 넓은 들판에 혼자 서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웅장해지고는 했다.
런던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또 열심히 떠들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은 뭐하지? 싶으면 일단 씻고 집 근처의 리젠트 파크에 나가 다시 한번 영국 공원의 조경 수준에 감탄하며 한참을 걷는다. 그렇게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 후에, 공원에 위치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근처 식료품 점에서 장을 가득 봐서 집에서 점심을 해 먹고 낮잠을 잔다. 그러다가 또다시 지루해지면 일단 다시 밖으로 나간다. 날씨가 좀 좋으면 걸어서 옥스퍼드 스트릿으로 나간다. 여기서부터는 북적북적거린다. 사람 구경을 하며 여러 샵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본드 스트릿 근처의 상업 갤러리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귀가한다. 가끔 마음이 웅장해지고 싶으면 한껏 꾸미고 런던의 고급 백화점과 부티크를 구경한다. 꼭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색감, 스타일 , 트렌드 공부하기에는 런던의 백화점과 크고 작은 빈티지 상점들이 최고이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살짝 고민을 한다. 집에서 먹을지 밖에서 혼밥을 할지. 그렇게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레스터 스퀘어 쪽으로 발을 돌려 이제는 없어진 멕시코 펍으로 들어간다. 사실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엔 술이 더 많아 보이고 술 먹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도 낮부터. 그래서 나는 그곳을 펍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재즈 음악 공연을 하는 멕시코 레스토랑이다. 여하튼, 그렇게 짜디짠 엔칠라다를 주문한 후 맥주와 함께 천천히 음미하고 나면 금방 해가 진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는 런더너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소셜 미디어에 꼭 영국 국기 표시를 해두곤 했다. 마치 국적이 영국인인것 마냥.
그런데 왜 나의 고향인 서울에서는 서울러인 것이 어색하고 서울 촌년인 것만 같을까? 나를 서울러라 소개하지만 서울과 거리감을 느낀다. 아마도, 서울에서의 부정적인 경험이 많아서 인 걸까?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이 섞인 무리에서 서울 사람은 뭐랄까, 가장 지역색이 없기에, 아니면 대도시 수도 이기 때문에 가끔은 경계의 대상 혹은 질투의 대상이 된다. 사실 서울 사람들은 자신이 서울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인식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냥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 나는 서울러다'라고 속으로 되뇌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근데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을 은근히 부러워한다.
런던에 있다 보면 국내 곳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해외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이 대학원 공부를 영국에서 시작해서 한국에서 따라 나왔다거나, 남편이 주재원이라서 따라 나왔다거나, 공부하러 나왔다가 결혼해서 눌러앉았다거나, 아니면 워킹 홀리데이로 잠시 일을 하러 왔다거나, 잠시 어학공부를 하러 나온 대학생들, 그리고 나같이 공부를 위해 영국을 선택이 들 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나의 무지로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 망명 혹은 탈북을 해서 영국으로 온 북한 사람들도 꽤나 많다고 한다. 영국 유학시절 부산이나 광주, 대구, 울산, 등등 서울 외에 한국의 큰 지방 도시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서울에서 온 나보다 훨씬 부유한 환경에서 사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한 가지 신선했던 건 그런 그들도 '아 근데 너는 서울 사람이잖아'라는 말을 종종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렇지.....? 근데 그게 왜?' 아무래도 한국이 미국처럼 땅덩이가 크고, 각 도시별로 특징을 갖춘 부자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자리와 부가 서울에 크게 집중된 것은 사실이라 그런지, 여전히 서울은 한국의 중심이다.
가끔 어릴 적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 있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아무리 판교와 분당에 부자가 많고 편의 시설과 좋은 레스토랑이 많고, 서울보다 덜 북적거리지만 여전히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서울에 있고 싶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의 경제력에 안정이 따르면 한국의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은 나의 입장에서는 매우 신선한 시각이었다. 미국에서 온 남편의 말이 더 인상적이다, 신혼집을 정할 때 강남도 언급했었다. 그냥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곳이라 1-2년 정도 전세나 월세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두고두고 회자될 명언을 남겼다 '나는 강북 남자야'. 일자리가 강북이라 강북에서 첫 서울을 접한 그. 그 미국인이 자신은 강북 남자라고 하는 모습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강서 여자다, 근데 어쨌든 굳이 남과 북으로 나누자면 강남 여자다. 그리고 서울 여자다. 근데 결코 서울깍쟁이는 아니다. 서울보다 시골에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도 서울이 고향이니. 조금 더 자부심 가진 서울러가 되고 싶다. 서울을 더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자부심이 커지면 서울 촌년에서 진정한 서울러로 거듭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