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계획과 공원 그리고 도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워커블(walkable) 시티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말 그대로, 걷기 좋은 ,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뜻한다. 또한,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같이 비슷한 업종의 회사와 관련 시설들이 한곳에 즐비해 있어 네트워크를 하기에도 용이한 도시 계획을 뜻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차나 건물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발이 향하는 곳들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계획된 도시들은 환경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활발하며, 인간이 쉬고 먹고 즐기고 그리고 더 자유롭게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게 된다. 사실, 워커블 시티라 하면 모든 도시가 해당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도시계획이 철저한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해보고 그곳에서 하루 종일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결코 서울이 걷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도시를 걷는 게 왜 중요하냐라고 한다면, 우리는 비싼 돈을 들여 헬스장에서 피티를 받거나,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필라테스 강습을 받는다거나, 요가를 한다거나,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홈트레이닝을 한다. 하지만, 건강에 가장 좋은 운동은 바로 '걷기'이다. 걷기는 무료이다. 집에 있는 운동복과 운동화 그리고 선캡, 950원짜리 삼다수 하나를 들고 걷기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 걷기는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허리 통증 및 뱃살, 심지어 우울증을 치료하는데도 탁월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앉아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들과 창의력이 중요한 사람들 에게도 매우 중요한 운동이라고 한다. 목동에 살 당시, 집 근처의 안양천을 거의 매일 걸었던 적이 있다. 천을 따라 펼쳐진 울 창안 풀과 나무 그리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아름다운 꽃을 구경하며 그렇게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씩 걷고는 했다. 물론, 지금까지 학생이었던 기간이 길고 지금도 개인 사업 및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기에, 나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퇴직한 아저씨들 그리고 가정주부 어머니들이 주로 이런 공원 걷기를 실천한다. 안양천 같은 일종의 공원을 걷다 보면 싸이클링을 하는 젊은 동호회 분들과, 아주 멋있는 자태로 조깅을 하는 아저씨들 그리고 나 같은 유유자적한 몽상가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물론,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한 여름에 걷는 것이 너무나 힘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 일찍 혹은 여름의 저녁에 산책도 할 겸 밖에 나가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가을과 초 겨울의 갈대를 좋아한다. 한때 갈때의 자태에 매료되어, 갈대 사진만 찍기도 했다. 안양천의 갈대는 예술입니다!
그리고 걷기는 여행을 할 때 빛을 보는 행위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 파리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아무래도 파리의 지하철은 위험한 편이고, 냄새도 많이 나기에 웬만해서는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나의 안전과 여행의 편의를 위해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파리의 중심부에 숙소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으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며 편안하게 위치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시대에 그것도 건강한 20대가 걷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8월 초의 날씨였지만 정말 너무 더웠다. 너무너무 더워서 좀만 걸어도 숨이 막혔지만 그래도 열심히 걸었다. 도시의 경관을 보고 싶었고, 크고 작은 예쁜 집들을 구경하며 그렇게 목이 마를 때쯤 발견한 카페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쐐며 목을 축이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파리나 런던 같은 도시는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자기 멋에 따라 스타일을 뽐내는 옷 잘 입는 사람들이 가장 많기로 유명한 도시이기에, 걸어 다니며 사람 구경을 하고 또 그렇게 우연히 마주한 갤러리와 부티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런던에서도 웬만해서는 걸어 다니는 습관을 들였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기는 했지만, 일단 운동에 돈을 쓰는 것을 이해 못 하는 사람 중 한 명인지라 (물론, 전문적으로 운동을 배우고 자세를 교정하거나 근육을 길러야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주로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집 근처 리젠트 파크에서 뛰고 걷는 것을 반복했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어떤 글을 쓰든 반복하는 것이 있는데, 런던은 정말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고 살기 편한 곳이라는 것이다. 울창한 나무와 알록달록 꽃 그리고 봄이면 봄바람과 함께 달콤한 꽃향기 까지,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을 걷다 보면 옆동네로 이어지고, 풍경을 도시로 바꾸어 도보로 걷다 보면 다시 집까지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걸어서 여기저기 다니기도 편했다. 학교에서 걸어서 20분이면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길에 길게 쭉 뻗은 템즈강과 약간은 현대적인 건물들 그리고 빨간 버스, 무엇보다 곳곳에 있는 나무의 모습을 즐기며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까지 도달했다.
내가 시각적인 것을 오랫동안 공부한, 시각에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심미안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기에 밸런스가 맞지 않아도 조금은 오래되어 쾌쾌한 냄새가 나는 건물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을 품은 멋을 가진 건물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식물을 좋아한다. 물도 좋아한다. 서울에서도 많이 걸어 다니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최대한 가까운 곳 40분 이내의 장소들은 걸어서 해결한다. 그리고 공원도 찾아가거나, 지역과 지역을 넘어갈 때에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서울은 차가 우선이다. 인간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차가 우선이다. 그래서 길을 건널 때도 무섭고, 특히 요즘 몇몇 몰상식한 배달 오토바이들 때문에 초록불에 길을 건너는 것도 긴장된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사람이 먼저였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 목에서도 당당히 손을 들고 차주를 쳐다보며 나의 권리를 주장하듯 위풍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 특히, 학교 및 주거 단지 지역에는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보다 걷고 뛰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불만이 고조되어 간다. 인생의 반 이상을 서구권의 대도시에서 살아온 남편은 실제로 워커블 시티에 관한 에세이와 리서치 자료를 읽으며 서울의 도시계획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지적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건물과 역사적 건물들을 허물고 계속해서 개발하며 도시의 흔적을 지워가는 곳. 심지어 맘 편히 걷기도 힘든 곳, 항상 공사 소리로 시끄러운 그런 도시.
그래서 그립다. 자연과 도시를 동시에 즐기며 살 수 있는 유럽의 도시들이 그립다. 열심 걷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안개 가득 큰 호수를 머금고 있던 코펜하겐의 공원,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라 사람이 없었고 해도 지고 있어 공원 깊숙이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서울의 공원들을 여러 번 가봤지만, 여전히 무늬만 공원이라거나, 그냥 만들어야 하니깐 만들어놓은 느낌이 강했다. 물론, 화장실이 깨끗하고 쓰레기통이 많다는 점은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멋이 없다. 자연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다. 을지로가 지금처럼만이라도 유지되었으면 좋겠는 것처럼 서울에도 공원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도, 여의도 한강 공원과 하늘공원은 매력적이다. 가을이 올 때쯤 안양천과 하늘공원의 갈대는 환상적이다. 이번 가을엔 하늘공원을 조금 더 자주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