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 (57)스트레스 방치

『숨이 쉬어지는 자리』

by seungbum lee

스트레스 방치
Q: 왜 스트레스를 그냥 쌓아둘까요?
A: 약해 보일까봐 또는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해법은 매일 스트레스 해소 시간을 정하는 것입니다. 운동, 명상, 산책, 일기 쓰기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숨이 쉬어지는 자리』


쌓여가는 것들


서울의 빡빡한 공기 속을 헤치고 다니는 김도윤, 서른여섯.

사람들은 그를 ‘강한 사람’이라 불렀다.

일을 잘했고, 맡은 건 끝내 해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강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두려워 버티는 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의 잦은 야근, 가족 부양, 끝없는 경쟁.

그의 가슴속엔 하루하루 먼지처럼 스트레스가 쌓였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일,

팀장의 투박한 말투,

메일함에 쌓여 있는 업무 목록들.


하지만 그 작은 먼지들이 모여 어느새 방 한가득을 채운 것처럼,

그의 마음속도 숨막힐 만큼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다들 겪는 일이야. 다들 버티잖아. 나라고 못할 게 뭐야.”

그러나 버틴다는 말은 사실,

**“지금은 무너질 수 없으니 일단 덮어두자”**는 의미였다.


흔들리는 순간

어느 날, 팀 프로젝트의 중대한 실수가 터졌다.

전체 회의실에서 책임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고,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건 제 담당이 아닙니다!”


평소 그는 절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침묵은 흐르고, 회의실의 시선은 싸늘하게 굳었다.


회의가 끝난 뒤 신입인 희정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대리님… 괜찮으세요? 요즘 많이 지치신 것 같아요.”


도윤은 그 말에 오히려 더 움찔했다.

‘약해 보이는 건 싫다’는 생각이 그의 가슴을 꽉 조이듯 조여왔다.

그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피곤해서 그래.”


희정은 말없이 도윤을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따뜻한 시선이 오히려 도윤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정수기 물을 컵에 따르다 손에서 떨어뜨렸다.

컵이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그 작은 소리 하나에 그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왜 이렇게 힘들지… 왜 이렇게 답답하지…?’

자기가 왜 울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멈추어 서다


며칠 뒤, 도윤은 회사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입맛이 없어 그냥 걷다가 발길이 멈춘 곳이었다.


그때, 공원에서 요가를 하던 한 중년 여성이 옆에 와서 물었다.


“혹시 괜찮으세요? 많이 지쳐 보이네요.”


도윤은 대답을 망설였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속을 타인에게 내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이상하게도 말문이 열렸다.


“그냥… 숨이 너무 차요. 삶이 저를 계속 밀어붙이는 기분이라서요.”


여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스트레스를 쌓아두면 마음 안에 먼지가 쌓이듯,

언젠가는 들이마시기도 어려운 순간이 와요.

매일 조금씩 털어내야 해요.”


도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누군가 마음속의 빗장을 건드린 것처럼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여성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단 10분이면 돼요.

걷기든, 깊은 호흡이든, 운동이든,

일기 한 줄이라도 써보세요.

그게 당신의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이 돼요.”


그 짧은 말이 도윤에게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쉼’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다


그날 이후, 도윤은 하루 10분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시간’으로 정했다.

출근 전 5분 명상,

점심 후 10분 산책,

퇴근 후 10분 스트레칭,

그리고 잠들기 전 일기 한 줄.


작고 보잘것없는 변화 같았지만,

그의 일상은 놀랍도록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의에서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고,

사소한 일에도 웃음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약해도 괜찮아.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진짜 강함은 버티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질 때 멈추고, 쉬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날, 신입 희정이 물었다.


“대리님, 요즘 표정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비결 있으세요?”


도윤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나한테 시간을 좀 주기 시작했어.”


희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제일 어려운 거더라구요.”


도윤은 조용히 답했다.


“그러니까 더 해야지.

삶이 우리를 몰아칠 때일수록,

잠깐 멈추는 게 필요하더라.”


바람이 공원을 스쳐 지나가고,

그 향기로운 가을빛 속에서

도윤은 오랜만에 진짜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는 쌓아두지 않겠다.

나의 하루에는 반드시 ‘숨이 쉬어지는 자리’를 만들겠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더 가볍고 더 유연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keyword
월, 화, 목,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