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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 (56)타인판단

타인판단

by seungbum lee

타인 판단

Q: 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할까요?

A: 그들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모든 사람은 나는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판단 대신 이해를 선택하세요.


“모르는 전쟁”

서울 변두리의 낡은 시장.
스물일곱의 한도현은 새벽마다 가게 문을 열며 투덜댔다.
가게 맞은편에는 늘 구두닦이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두 닦아드려요…”라며 힘없이 외쳤다.



도현은 그 노인을 볼 때마다 마음에 짜증이 일었다.
“늙어서까지 저렇게 남 앞에서 구두 닦고 사는 건 왜일까… 인생을 저렇게밖에 못 살았나.”
판단은 늘 쉬웠다. 이해는 필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사가 잘 안 돼 짜증이 한껏 오른 도현은 노인의 작은 파라솔이 자신의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파라솔 좀 치우라니까요! 장사 방해되잖아요!”
노인은 움찔하며 파라솔을 접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서 도현은 알 수 없는 짜증과 우월감을 느꼈다.
그날도 도현의 마음속 판단은 변함없었다.
‘저 노인, 참 한심하네.’

며칠 뒤, 장맛비가 쏟아지던 저녁.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도현은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우산을 쓰려다가, 맞은편에서 파라솔도 없이 비를 그대로 맞으며 구두를 닦는 노인을 보았다.


“아니… 비 오는데 왜 그냥 있어요?”
도현은 의아해 물었고, 노인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비가 오면… 어쩌다 한 번, 구두 닦으러 오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 놓치면 오늘은 굶어요.”

그 한마디가 도현의 가슴을 어딘가 찔렀다.
하지만 그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래도 그렇지… 비 맞으면서까지 일한다고?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비는 더 거세졌고, 노인은 비에 젖어 떨기 시작했다. 결국 도현은 그를 가게 안으로 끌어들였다.
“감기 걸리면 큰일 나요. 여기, 수건이라도 좀…”
도현은 어쩐지 자신의 행동이 과한 친절처럼 느껴져 쑥스러웠지만, 노인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도현은 궁금증이 생겼다.
‘저렇게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을 지웠다.
‘뭐,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되는 거야.’

그는 여전히 판단과 이해 사이를 오갔다.




일주일 뒤, 아침부터 구두닦이 자리가 비어 있었다.
노인의 모습이 없어지자 도현은 이상하게 허전했다.
‘비 왔던 그날 이후로 몸이 안 좋은가….’
별생각 없이 지나치려 했지만, 노인의 파라솔 아래 떨어진 작은 종이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비에 젖어 글씨가 번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힘겹게 적힌 글이 있었다.



“혹여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부탁입니다.
○○병원 406호에 누워 있는 제 아들에게 이 구두 상자 좀 전해주세요.”




도현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노인이 매일 비를 맞으며까지 일했던 이유가 눈앞에 드러났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406호.
그곳에는 마흔 즈음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산소 호흡기를 낀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하루 종일 굶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초라한 도시락 가방이 놓여 있었다.

간호사는 조용히 말했다.
“저 분, 중증 폐질환이에요. 보호자는 아버지 한 분뿐인데… 돌볼 사람이 없어서 늘 지쳐 오시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를 맞던 노인의 모습.
비난을 듣고도 파라솔을 접던 모습.
매일같이 다리에 힘을 주며 버티던 모습.

도현은 구두 상자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네요.”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노인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 전쟁은 도현이 무지하게 판단하던 그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틀 뒤, 시장 입구에 다시 노인이 나타났다.
여전히 힘든 표정이었지만, 그의 눈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도현은 재빨리 다가갔다.
“아저씨, 어제 병원 다녀왔어요. …아드님, 괜찮으셨어요?”
노인은 놀란 듯 도현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그 먼 데까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 마음대로 판단했어요.”

노인은 조용히 대답했다.
“사람이 다 그렇죠. 누구든 모르는 전쟁이 하나씩은 있는 법이니까요.”

그날 이후 도현은 달라졌다.
누군가 늦게 오면 “게으르다”고 단정하지 않았고, 무뚝뚝한 사람을 볼 때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도… 나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겠지.’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도현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판단 대신 이해를 택하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동료”가 되었다.

그는 문을 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나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야.”

그 말이 새벽 시장에 스며들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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