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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 (59)돈의 미스터리

돈 관리소흘

by seungbum lee

돈 관리 소홀
Q: 왜 돈을 어디에 쓰는지 모를까요?
A: 추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한 달간 모든 지출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인식만 해도 불필요한 지출이 30% 줄어듭니다.





사라지는 돈의 미스터리




​강서진, 스물아홉 살의 마케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번듯한 직장과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괜찮은 월급을 가졌지만, 그의 통장 잔고는 늘 월말의 모래시계처럼 위태로웠다. 매달 10일 월급이 들어와 통장을 든든하게 채우는 순간의 기쁨은 잠시, 20일만 넘어서면 잔액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서진은 깊은 한숨을 쉬며 텅 빈 앱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대체 내 돈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주말의 비싼 브런치, 퇴근 후 동료들과 마신 맥주, 새벽에 충동적으로 결제한 온라인 쇼핑몰의 옷가지들... 기억을 더듬어보려 하지만, 구체적인 금액과 목적지는 안개 속이었다. 마치 돈에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혹은 통장에 블랙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서진의 돈은 미스터리하게 증발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재테크는커녕 재정 관리도 못하는 무능한 현대인’이라 자책했다. 문제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 무지(無知)가 그를 항상 불안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머물게 했다.



소비 습관이라는 그림자
​서진의 소비 습관은 전형적인 현대인의 그것이었다. 그는 ‘욜로(YOLO)’라는 구호 아래 현재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소비를 추구했다. 고된 노동에 대한 보상 심리가 강했고, SNS에 올라오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소비로 격차를 메우려 했다.


특히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동화된 지출’이었다. 수많은 구독 서비스(OTT, 음악, 운동 앱),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멤버십 비용,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간편 결제 시스템. 이들은 지출의 고통을 최소화하여 서진이 돈을 쓰는 행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서진은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에 휩싸였다.


그는 인터넷에서 수많은 재정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을 떠올렸다. “왜 돈을 어디에 쓰는지 모를까요? 추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한 달간 모든 지출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해법에 오히려 허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그날부터 지출 추적이라는 고된 노동을 시작했다.


지출 기록이 가져온 인식의 전환
​서진은 스마트폰의 가계부 앱을 열고, 영수증이 없는 작은 지출까지도 억지로 기억을 끄집어내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마신 4,500원짜리 커피, 점심 식비 12,000원, 퇴근길 편의점 캔맥주 3,800원… 매일 밤, 기록된 지출 내역을 들여다보는 것은 일종의 고해성사 같았다.




​첫 주가 지나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서진이 지출한 내역 중 약 30%가 ‘순전히 불필요한 지출’로 분류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굳이 안 사도 되었을’ 충동적인 옷, 이미 집에도 쌓여있는 텀블러를 또 사게 만든 이벤트성 구매, 습관적으로 시켜 먹는 야식 등이 그 목록을 채웠다. 특히 그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자잘한 지출의 합’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소액 결제들이 모여 월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서진의 소비 패턴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돈을 쓸 때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4,500원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자연스럽게 '이 4,500원이 지금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의식적인 제동 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불과 2주 만에, 그는 편의점 충동구매를 멈추고, 커피는 회사 탕비실에서 해결했으며,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상품들을 과감히 삭제했다. 놀랍게도 불필요한 지출은 전문가들의 말대로 정말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통제감을 되찾은 현대인의 자세
​한 달간의 지출 기록을 마친 후, 서진은 처음으로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잔액은 예전보다 훨씬 많았고, 무엇보다 ‘남은 돈’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남긴 돈’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큰 통제감을 주었다.



​그는 단순히 돈을 절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무작정 돈을 낭비하는 대신, 그는 줄어든 지출액을 모아 오랫동안 꿈꿔왔던 외국어 학습 비용과 투자금으로 배분했다.
​서진은 깨달았다. 돈 관리는 단순히 숫자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현대인의 자세라는 것을. 돈의 흐름을 알게 되자, 불안했던 미래는 계획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왔고, 소비는 기쁨이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미스터리하게 사라지던 돈은 이제 그의 통제 아래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있었다. 서진은 이제 더 이상 ‘돈의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자세는 절약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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