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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 (70)유리 심장의 남자

중독방치

by seungbum lee

중독 방치
Q: 왜 술, 담배, 설탕에 중독된 줄 알면서도 계속할까요?
A: 단기 위안이 주는 즉각적 보상 때문입니다. 해법은 중독을 대체할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술이 아니라 스트레스→운동으로.


중독의 덫: 유리 심장의 남자, 현우



균열이 시작되다
​현우는 서른아홉의 어엿한 가장이자, 제법 알려진 스타트업의 유능한 개발팀장이었다. 번쩍이는 노트북 화면 앞, 그의 손가락은 밤늦도록 코드를 능숙하게 두드렸지만, 그가 쥐고 있는 마우스 옆에는 늘 담배 한 갑과 설탕이 잔뜩 들어간 에너지 드링크 캔이 놓여 있었다. 현우의 중독은 거창한 타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작은 균열들을 메우려는 지극히 평범한 시도에서 출발했다.




​개발팀장의 직책은 끊임없는 압박과 책임의 연속이었다. 프로젝트 마감일, 팀원들의 사소한 갈등, 투자 유치에 대한 불안감... 이 모든 스트레스가 현우의 명치 끝을 짓눌렀다. 퇴근 후, 아내와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현관에서 그를 맞이했지만, 그는 그 웃음소리 속에 온전히 섞여 들어가지 못했다.
​"여보, 왔어? 오늘 회식 없다고 했지?" 아내 지윤이 물었다.
"어, 오늘은 일찍 왔어. 피곤해서. 먼저 자."
​현우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미소 지어주고는,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의 '비밀 의식'이 시작되었다. 그는 서재 책상 아래 숨겨둔 양주 한 병을 꺼냈다. 투명한 황금빛 액체가 잔에 쏟아지는 소리는 현우에게 유일한 안식의 소리였다. 스트레스→술. 이 공식은 그에게는 마법 주문과 같았다.
​첫 모금은 억압되었던 하루의 모든 긴장을 녹여냈다. 알코올이 혈관을 따라 퍼지면서, 그는 잠시나마 '완벽한' 기분에 도달했다. 즉각적인 보상. 그는 자신이 이 액체를 마시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도피였다. 현실의 쓴맛을 설탕처럼 달콤하게 덮어주는 단기적인 위안. 다음 날 아침의 숙취와 후회는 항상 그를 찾아왔지만, 그 순간의 안락함은 모든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우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 담배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의 벗이었고, 과도한 설탕 섭취는 업무를 위한 일종의 '도핑'이었다. 그는 이 삼각 중독이 자신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음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들을 놓아버리면, 그를 짓누르는 무거운 현실의 중력을 견뎌낼 힘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겉으로는 단단했지만, 속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웠다. 중독은 그 유리를 감싸고 있는 얇고, 유해한 보호막이었다.


반복되는 자기 파괴




​중독은 현우의 삶을 좀먹기 시작했다. 술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렸고, 잦은 실수는 팀원들의 불만을 샀다. 그는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는 부어오른 얼굴과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다. 아내 지윤과의 대화는 날카로운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윤은 그의 곁에 다가가려 했지만, 현우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다.
​"요즘 왜 이렇게 술을 마셔? 몸 상하는 거 안 보여? 애들은 아빠한테서 술 냄새 난다고 속상해해." 지윤이 조용히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해. 스트레스받으니까 건드리지 마!"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며칠 동안은 성공했다. 하지만 중요한 PT를 앞둔 날, 극도의 긴장감이 현우의 목을 조여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편의점으로 향했고,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땄다. "딱 한 캔만. 괜찮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하지만 한 캔은 두 캔이 되었고, 다음 날의 후회는 더욱 깊은 웅덩이가 되어 그를 집어삼켰다.
​이것이 중독의 본질이었다. 현우는 이 행위가 장기적으로 자신을 파괴할 것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뇌는 이미 단기적인 위안이라는 강력한 보상 체계에 길들여져 있었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뇌의 쾌락 중추를 즉각적으로 자극했고, 이 '기쁨'의 기억은 후회의 '고통'보다 언제나 더 강력했다. 현우는 자신이 나약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왜 자신은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알면서도, 파괴적인 행동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현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팀장님, 혹시... 요즘 힘드신 일 있으세요? 저희가 도울 일이 있다면..."
​현우는 그 말이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았지만,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약함이 이미 모두에게 노출되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중독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커리어, 그의 가정, 그의 인간관계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힘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다
​가장 깊은 바닥은 뜻밖의 곳에서 찾아왔다. 주말 아침, 현우는 해장술을 마시고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여섯 살짜리 딸 예린이가 다가와 그의 얼굴을 흔들었다.
​"아빠, 일어나. 아빠랑 같이 공원에 가기로 했잖아."
​현우는 힘겹게 눈을 떴다. 딸의 맑은 눈망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한심함 그 자체였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예린이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아빠 이상해! 아빠가 무서워!"
​그 순간, 현우의 유리 심장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아빠가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날, 현우는 자신의 서재에서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통에 그 병을 던져 넣었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그의 귓속에서 울렸다. 그것은 중독의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이기도 했다.




​현우는 지윤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자신의 나약함, 스트레스, 그리고 단기 위안에 굴복했던 비겁함까지. 지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당신이 나약한 게 아니야. 당신은 지쳤던 거야. 이제... 우리가 함께 싸우자."
​현우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심을 했다. 중독을 대체할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 것.





​그는 공식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스트레스→술이 아니라, 스트레스→운동으로.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술 대신 물을 마시고, 담배 대신 껌을 씹고, 단 음료 대신 미지근한 차를 마셨다. 몸은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반항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저녁, 술을 마시던 시간에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10분도 힘들었다. 하지만 땀을 흘릴 때마다 그의 뇌는 새로운 종류의 보상을 받았다. 그것은 성취감과 자기 존중감이라는 건강한 보상이었다.
​현우는 매일 밤, 힘겹게 달린 후, 땀에 젖은 채 집에 돌아왔다. 그의 심장은 고통스럽게 뛰었지만, 그의 정신은 맑았다. 그는 아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었고, 아이들을 안아줄 때 더 이상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새로운 궤도에 오르다

​1년 후, 현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술은 특별한 날에만 아주 소량만 마셨다. 그의 몸은 탄탄해졌고, 눈빛은 생기가 넘쳤다. 그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감일은 여전히 촉박했고, 회의는 여전히 길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극심한 압박에 처했을 때, 그는 코드를 두드리는 대신, 잠시 자리를 비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내려왔다. 땀을 흘리고 나면,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맑은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팀원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여러분, 힘들 때 도망치지 마세요. 그 에너지를 달리기로 써보세요. 몸은 정직합니다."

​현우의 삶은 이제 새로운 궤도에 올랐다. 그는 중독자들이 단기 위안이라는 덧없는 보상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것이 가장 쉽고,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깨달았다. 진정한 해법은 중독을 완전히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중독을 대체할 만큼 강력하고 건강하며, 장기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임을.

​현우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을 달렸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그의 폐는 깨끗하게 정화되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그는 자신이 어둠의 터널을 걸어 나왔음을 확인했다.

​그는 더 이상 유리 심장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의 심장은 매일의 땀과 노력으로 단련된, 강철 같은 심장이었다. 중독은 그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그 상처는 이제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는 이제 안다. 쓰러지지 않는 힘은 약물을 통해 얻는 환상적인 기쁨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고통을 극복했을 때 얻는 자기 확신에서 온다는 것을. 그의 삶은 이제 '중독 방치'가 아닌, **'건강한 습관의 축적'**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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