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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숨의편지(3)

눈 맞춤이 바람이 되던 날

by seungbum lee

눈 맞춤이 바람이 되던 날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는 지금, 문틈 사이로 바람이 아주 느리게 스며들어요.
오늘의 바람은 이상하게도 당신의 눈을 닮았습니다.
그 부드러움, 그 미세한 떨림,
그리고 내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놓는 결까지도.
​당신과 처음 눈을 맞추던 순간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두 사람 사이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바람 속에 먼지처럼, 꽃가루처럼,
작고 맑은 떨림들이 흘러다니고 있었죠.
당신의 시선이 나를 향해 조용히 스쳤을 때—
그 순간 나는 알았습니다.
사람의 눈이 누군가의 호흡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들숨이 조금 더 깊어지고,
날숨이 조금 더 길어지는,
그런 세밀한 변화들이 당신의 눈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특별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고
어떤 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요.
그저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나 또한 당신을 바라보았을 뿐.
그런데 그 짧은 교차가
내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당신의 눈 속에는 계절이 있었어요.
한 계절만이 아니라,
겨울의 깊이와 봄의 따스함, 여름의 반짝임과 가을의 고요함이
모두 한꺼번에 담겨 있는 듯했죠.
나는 그 계절들을 한순간에 건너며
내 숨이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떠올라요.
우리가 바닷길을 걷던 여행의 첫날,
노을빛이 당신의 눈에 고여 흔들리던 장면을.
그때 당신이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바다는 바람에 흔들리는데,
나는 왜 네 눈 때문에 흔들리나 몰라.”
그 말은 농담처럼 시작했지만,
그 속에는 진심이 섞여 있었죠.
그 진심이 바람을 타고 내게 왔고,
나는 그 바람 위에서 아주 작은 탄성을 품었습니다.
​사랑은 어쩌면
눈을 마주치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몰라요.
시선에 담긴 온도가
숨결을 데우고, 마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언젠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나는 것처럼요.
​오늘 나는 창밖의 바람을 보며
당신의 눈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그날 그 눈 맞춤이
얼마나 큰 시작이었는지.
내 마음이 어느 깊이에서
당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바람은 여전히 불어오고,
나는 여전히 당신을 생각하며 숨을 쉽니다.
그리고 그 숨은 오늘도 조용히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의 눈 때문에 살아 있는 바람이 되었어요.”
​당신의 시선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또 한 장의 편지를 보냅니다.
​언제나,
당신의 눈을 향해 숨을 쉬는 사람으로서.
—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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