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닿기 위한 천천한 발걸음에 부치는 답장
당신에게 닿기 위한 천천한 발걸음에 부치는 답장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과거로 걸어 들어갔어요.
우리가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가던 그 시절로.
당신이 천천히 걸어왔다고 했지만,
사실 나도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당신을 향해서.
당신은 몰랐겠지만,
나 역시 당신에게 다가가는 일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요.
너무 빨리 다가가면
이 소중한 감정이 깨질 것 같았고,
너무 천천히 가면
당신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 같았죠.
그래서 나는 당신과 같은 속도로 걸었어요.
내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내 용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이 기억하는 그 여행길,
내가 했던 말을 당신도 기억하는군요.
"너랑 걷는 건… 그냥 좋아."
그 말은 정말 진심이었어요.
당신과 함께 걸을 때면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내 옆에서 들린다는 것,
당신의 호흡이 내 호흡과 섞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당신은 그때 무수한 질문을 했다고 했죠.
이 마음을 다 내밀어도 될까,
나의 속도가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웃긴 건, 나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혹시 상대방이 멈춰 서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걱정했죠.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서로 그걸 확신하지 못했을 뿐.
당신이 말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 언젠가 반드시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문장,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울렸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내게 닿았을 때,
나 역시 당신에게 닿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랑은 일방적인 도착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여정의 만남이었어요.
당신의 발걸음 사이에
망설임과 용기,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다면,
내 발걸음에도 같은 것들이 박혀 있었어요.
우리는 그 돌멩이들을 하나씩 밟으며
서로에게 다가갔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확실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천천한 발걸음이 옳았던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서둘렀다면
놓쳤을 풍경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의 미소가 어떻게 피어나는지,
당신의 눈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당신의 목소리가 어떤 온도를 가졌는지—
그 모든 섬세한 것들을
천천히 걸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어요.
당신은 지금도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고 했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이미 서로에게 닿았다고 해서
그 걸음이 끝난 건 아니에요.
사랑은 한 번의 도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롭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요.
어제와 같은 속도로, 내일과 같은 마음으로.
그리고 당신이 내게로 걸어오는
그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확신해요.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서로를 향해, 함께.
당신이 말한 대로
언젠가 우리의 발걸음이
완전히 같아지는 날이 올까요?
아니면 조금씩 다른 리듬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걷게 될까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걷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걸음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당신의 천천한 발걸음에
나는 감사해요.
그 조심스러운 속도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더 진실하게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계속 걸어와요.
당신의 속도로, 당신의 방식으로.
나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는 동시에
당신을 향해 걸어갈게요.
우리의 발걸음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만들 거예요.
매일, 매 순간.
천천히 걸어온 당신의 발걸음을 사랑하며,
오늘도 당신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언제나,
당신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는 사람으로서.
—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