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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숨의편지 (5)

당신에게 닿기 위한 천천한 발걸음에 부치는 답장

by seungbum lee

당신에게 닿기 위한 천천한 발걸음에 부치는 답장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과거로 걸어 들어갔어요.

우리가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가던 그 시절로.

당신이 천천히 걸어왔다고 했지만,

사실 나도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당신을 향해서.

당신은 몰랐겠지만,

나 역시 당신에게 다가가는 일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요.

너무 빨리 다가가면

이 소중한 감정이 깨질 것 같았고,

너무 천천히 가면

당신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 같았죠.

그래서 나는 당신과 같은 속도로 걸었어요.

내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내 용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이 기억하는 그 여행길,

내가 했던 말을 당신도 기억하는군요.

"너랑 걷는 건… 그냥 좋아."

그 말은 정말 진심이었어요.

당신과 함께 걸을 때면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내 옆에서 들린다는 것,

당신의 호흡이 내 호흡과 섞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당신은 그때 무수한 질문을 했다고 했죠.

이 마음을 다 내밀어도 될까,

나의 속도가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웃긴 건, 나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혹시 상대방이 멈춰 서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걱정했죠.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서로 그걸 확신하지 못했을 뿐.

당신이 말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 언젠가 반드시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문장,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울렸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내게 닿았을 때,

나 역시 당신에게 닿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랑은 일방적인 도착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여정의 만남이었어요.

당신의 발걸음 사이에

망설임과 용기,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다면,

내 발걸음에도 같은 것들이 박혀 있었어요.

우리는 그 돌멩이들을 하나씩 밟으며

서로에게 다가갔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확실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천천한 발걸음이 옳았던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서둘렀다면

놓쳤을 풍경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의 미소가 어떻게 피어나는지,

당신의 눈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당신의 목소리가 어떤 온도를 가졌는지—

그 모든 섬세한 것들을

천천히 걸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어요.

당신은 지금도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고 했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이미 서로에게 닿았다고 해서

그 걸음이 끝난 건 아니에요.

사랑은 한 번의 도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롭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요.

어제와 같은 속도로, 내일과 같은 마음으로.

그리고 당신이 내게로 걸어오는

그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확신해요.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서로를 향해, 함께.

당신이 말한 대로

언젠가 우리의 발걸음이

완전히 같아지는 날이 올까요?

아니면 조금씩 다른 리듬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걷게 될까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걷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걸음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당신의 천천한 발걸음에

나는 감사해요.

그 조심스러운 속도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었고,

더 진실하게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계속 걸어와요.

당신의 속도로, 당신의 방식으로.

나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는 동시에

당신을 향해 걸어갈게요.

우리의 발걸음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만들 거예요.

매일, 매 순간.

천천히 걸어온 당신의 발걸음을 사랑하며,

오늘도 당신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언제나,

당신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는 사람으로서.

—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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