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춤이 바람이 되던 날에 부치는 답장
눈 맞춤이 바람이 되던 날에 부치는 답장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오늘 부는 바람이 당신의 눈을 닮았다고 했죠?
그렇다면 지금 내 창가를 스치는 이 바람도
당신의 마음을 닮은 게 아닐까요.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내 안의 무언가를 흔들어놓는 바람.
당신이 기억하는 그 눈 맞춤의 순간,
나도 똑같이 기억해요.
당신은 그때 내 호흡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챘나요?
나는 당신의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숨을 쉬는 방법을 잠깐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숨을 쉬었을 때,
그 숨은 이전과 전혀 다른 리듬으로 흘러갔어요.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는 그날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요.
하지만 눈으로 나눈 대화는
어떤 언어보다 정확하고 깊었던 것 같아요.
당신의 눈이 내게 묻고 있었죠.
"당신도 이걸 느끼나요?"
그리고 내 눈이 대답했어요.
"네, 느껴요. 분명히."
눈 맞춤이라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에요.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인데,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잖아요.
말로는 감출 수 있는 것들도
눈은 숨기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그날,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알아버렸던 거예요.
당신이 내 눈 속에서 계절을 보았다면,
나는 당신의 눈 속에서 시간을 보았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깊이를 당신의 눈빛에서 느꼈어요.
당신과 함께 걸어온 시간,
지금 이 순간 함께 서 있는 시간,
그리고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시간들이
모두 당신의 눈 안에 담겨 있었어요.
바닷길을 걷던 그날을 당신도 기억하는군요.
내가 했던 말,
"바다는 바람에 흔들리는데, 나는 왜 네 눈 때문에 흔들리나 몰라."
그 말은 농담 같았지만
사실 나는 진심이었어요.
당신의 눈빛 하나에
내 마음이 얼마나 쉽게 출렁이는지,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그날 노을이 당신의 눈에 고여 있을 때,
나는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의 눈 속에서 살고 싶다'고.
그 고요하고 따뜻한 빛 속에
내 모든 계절을 담고 싶다고.
지금도 당신과 눈을 마주칠 때면
같은 마음이 들어요.
당신의 시선이 내게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시 멈추고
우리 둘만의 고요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말없이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죠.
"사랑은 눈을 마주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당신은 썼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눈빛에는 거짓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된 건
입술로 사랑을 말하기 훨씬 전에
눈으로 이미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마지막 고백,
"나는 당신의 눈 때문에 살아 있는 바람이 되었어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미소 지었어요.
왜냐하면 나 역시
당신의 눈빛을 따라 움직이는 바람 같은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당신이 바라보는 곳으로 가고 싶고,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눈 속에 비친 세상을 함께 보고 싶어요.
오늘도 바람이 불면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당신과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눈만 마주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대화를 나누게 될 테니까요.
당신의 눈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돼요.
당신의 시선 속에서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믿게 돼요.
그러니 부디,
계속해서 나를 바라봐주세요.
당신의 눈빛이 내게 닿는 한,
나는 살아 있는 바람으로
당신 곁을 맴돌 거예요.
그리고 약속할게요.
나도 당신을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겠다고.
당신이 내 눈 속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소중함을, 아름다움을
매일 확인할 수 있도록.
눈 맞춤이 바람이 되던 그날을 기억하며,
오늘도 당신만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당신의 눈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