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
새벽의 약속
회의가 끝나갈 무렵, 동굴 밖에서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동지들, 마지막으로 盟誓를 합시다."
한재호가 일어서며 말했다. 일곱 사람이 원을 그리며 일어섰다.
"우리는 大韓의 獨立을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우리는 民族의 정신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일곱 사람의 손이 중앙에서 맞잡혔다. 촛불이 그들의 결연한 얼굴을 비췄다.
"자, 이제 흩어집시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시오. 다음 회합은 보름 뒤, 음력 보름날 이곳에서 갖겠습니다."
동지들이 하나둘 동굴을 빠져나갔다. 이산갑과 산돌이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오려 할 때, 한재호가 이산갑의 팔을 잡았다.
"이 선생,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소."
"말씀하시오."
"이것을..."
한재호가 작은 보따리를 건넸다.
"이 안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역사 교재와 한글 자료들이 들어있소. 목숨처럼 지켜주시오. 그리고 복사해서 다른 학당에도 전해주시오."
이산갑은 떨리는 손으로 보따리를 받았다.
"무겁소이다. 하지만 반드시 지키고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한재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만약 선생이 체포될 위기에 처하면, 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시오. 절대 왜놈들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굳게 악수했다.
이산갑과 산돌은 동이 트기 전에 산을 내려왔다. 물뫼산의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先生님, 저... 무섭습니다."
산을 내려오며 산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놈들한테 잡히면 고문당하고 죽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나요?"
이산갑이 걸음을 멈추고 산돌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에는 두려움과 결의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산돌아, 두렵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두렵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自己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동쪽 하늘을 가리켰다.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 해를 보아라. 어둠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해는 뜬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어둡지만, 반드시 광복의 날이 올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버티고, 싸우고, 가르쳐야 한다."
산돌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네, 先生님. 저도 끝까지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산을 내려갔다. 마을이 눈 아래 보였다. 아직 잠들어 있는 조선의 마을. 하지만 곧 깨어날 마을.
명륜학당으로 돌아온 이산갑은 서둘러 보따리를 서재 벽장 깊숙한 곳에 숨겼다. 그리고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했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했다. 순이도 왔다. 볼에는 아직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先生님, 안녕하세요."
순이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산갑이 다가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아, 어제는 미안했다. 선생이 너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구나."
"아니에요, 先生님.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소녀의 눈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때 다나카가 교문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로 헌병 두 명이 따라왔다.
'드디어 왔구나...'
이산갑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李 선생!"
다나카가 소리쳤다.
"당신을 사상 검열 차원에서 조사하겠소. 헌병대로 동행하시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선생님이 끌려가신다는 공포가 퍼졌다.
이산갑이 조용히 말했다.
"잠시 짐을 챙기겠소."
"안 됩니다! 지금 당장..."
"다나카 선생."
이산갑이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도망가지 않소. 다만 학생들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소?"
다나카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갑은 학생들 앞에 섰다. 수십 쌍의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여러분, 선생이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는 잠시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배움이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람을 보십시오. 그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영민한 학생들은 눈물을 흘렸다.
산돌이 벌떡 일어섰다.
"先生님을 데려가지 마세요!"
"조용히 하지 못해!"
헌병이 총개머리판으로 산돌을 밀쳤다. 소년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만!"
이산갑이 소리쳤다.
"내가 순순히 가겠소. 학생들에게 손대지 마시오!"
그는 산돌을 일으켜 세우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재의 그것을... 잘 부탁한다."
산돌이 눈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갑은 헌병들에게 이끌려 학당을 나섰다. 뒤에서 학생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평온했다.
'내가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