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의 결의
동굴의 결의
다시 동굴로 돌아온 시점. 왜병들의 수색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을 끄시오!"
한재호의 명령에 촛불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일곱 사람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개 짖는 소리와 일본어로 외치는 소리가 동굴 입구 근처까지 다가왔다.
"このあたりを捜せ!(이 근처를 수색해라!)"
"はい!(네!)"
군화 소리가 바위를 디디며 올라왔다. 이산갑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옆에 앉은 산돌의 손이 차갑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소년의 손을 잡아주었다.
긴 시간이 흘렀다. 아니, 실제로는 십여 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いない。次に行こう。(없다. 다음으로 가자.)"
군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한참 후에야 한재호가 조심스럽게 불을 다시 켰다.
"휴우... 위기는 넘겼습니다."
한재호가 다시 서찰을 펼쳤다.
"장군님의 밀명은 이렇습니다. 첫째, 內鮮一體와 皇民化 정책에 대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조직하라. 둘째, 조선어와 조선 역사를 비밀리에 교육하는 지하 학당을 운영하라. 셋째,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되, 무고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하라."
한 동지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한 동지,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하단 말이오? 지금 헌병대와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고 있소. 조금만 의심받아도 고문당하고 투옥되는 판인데..."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한재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군은 일본군과 정면 대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내부에서는 다른 방식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民族精神을 지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독립운동입니다."
이산갑이 입을 열었다.
"제가 운영하는 학당은 이미 왜놈들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自己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奴隸로 자라날 것입니다."
"하지만 先生님, 너무 위험합니다."
산돌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헌병대에서는 벌써 선생님을 不逞鮮人 명단에 올렸다고 합니다. 언제 체포될지 몰라요."
이산갑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산돌아, 두려워하지 마라. 正義로운 일을 하는데 목숨을 아끼면 어찌 나라를 되찾을 수 있겠느냐?"
또 다른 동지가 물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한재호가 지도를 펼쳤다. 영광 지역의 약도였다.
"이산갑 선생의 학당을 중심으로, 표면적으로는 일본의 교육지침을 따르는 척하되, 비밀리에 조선어와 역사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야간에는 이 동굴에서 청년들을 모아 독립사상을 교육합니다."
"신사참배는 어찌 합니까? 거부하면 당장 문제가 되는데..."
"형식적으로는 따르되, 마음속으로는 거부하는 것입니다. 살아남아야 싸울 수 있습니다."
한 늙은 동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변절 아니오? 왜놈의 신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아니오!"
이산갑이 단호하게 말했다.
"몸은 굽힐지언정 정신까지 굽혀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순이 같은 아이가 신앙 때문에 맞는 것을 보았소. 저는... 그 아이에게 형식적으로라도 고개를 숙이라고 할 수가 없었소."
침묵이 흘렀다.
한재호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입니다. 순교자가 되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살아서 씨앗을 뿌릴 것인가. 장군님의 뜻은 후자입니다. 살아남아서 계속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산갑이 결심한 듯 말했다.
"학당에서는 표면적으로 일본의 교육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업 중간중간 우리말과 우리 얼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이곳에서 비밀 수업을 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재호가 또 다른 문서를 꺼냈다.
"이것은 전국의 지하 조직망입니다. 평양, 서울, 부산, 광주... 각지에 우리와 같은 조직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결되어야 합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자료를 전달하며,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그는 이산갑을 바라보았다.
"이 선생, 당신의 학당이 호남 지역의 중심거점이 되어주시오. 교육자라는 신분은 가장 좋은 위장입니다."
이산갑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아이들을 지키고, 민족정신을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