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인가?
그로부터 사흘 후, 영광 헌병대 심문실.
이산갑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몸 곳곳에 고문의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도회의 존재도, 한재호의 방문도, 동굴의 회합도 일절 발설하지 않았다.
"이산갑씨!"
심문관이 소리쳤다.
"당신이 불령선인들과 접촉했다는 증거가 있소! 자백하지 않으면 더 심한 고문을 받을 것이오!"
"나는... 다만 학생들을 가르쳤을 뿐이오."
"거짓말! 당신은 학당에서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고, 일본 제국에 대한 반감을 조장했소!"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죄입니까?"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대동아공영의 일원이 되는 것이오! 과거의 낡은 역사가 무슨 소용이오?"
이산갑이 피 묻은 입술로 미소 지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소이다."
"뭐라고!"
심문관이 다시 그를 구타하려 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한 고위 장교가 들어왔다.
"잠깐."
장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李 선생, 당신에게 제안이 있소."
이산갑이 고개를 들었다.
"학당을 계속 운영하고 싶지 않소?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고 싶지 않소?"
"......"
"간단하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 제국의 충실한 신민이 되겠다고 서약하시오. 그리고 학당에서 황국신민화 교육에 협조하시오. 그러면 당신을 석방하고 학당도 계속 운영하게 해 주겠소."
이산갑은 장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본도를 찬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만약 거부한다면?"
"교수형이오. 그리고 학당은 폐쇄되고, 당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조사할 것이오."
이산갑의 머릿속으로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순이, 산돌, 그리고 수십 명의 아이들. 한도회의 동지들. 물뫼산 동굴의 비밀.
'내가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가? 아니면...'
그는 홍범도 장군의 말을 떠올렸다. '살아남아서 계속 싸우라.'
긴 침묵 끝에 이산갑이 입을 열었다.
"시간을... 주시오. 하루만."
장교가 냉소했다.
"좋소. 내일 정오까지 답을 들려주시오."
그날 밤, 이산갑은 독방에 홀로 있었다. 작은 창문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나는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가?'
그는 평생을 나라 위한 직분에 충실했고 교육에 바쳤다. 학생들에게 仁義禮智를 가르치고, 民族의 혼을 일깨우려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위협받고 있었다.
'만약 내가 창씨개명을 하고 굴복한다면, 학생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변절자? 친일파?'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누가 아이들을 지켜주는가? 누가 그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얼을 전하는가?'
그는 고뇌했다. 순교자가 되어 깨끗하게 죽을 것인가, 아니면 치욕을 감수하고 살아남아 씨앗을 뿌릴 것인가.
밤이 깊어갔다.
새벽 무렵, 이산갑은 어떤 소리를 들었다. 작은 돌멩이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가 창문으로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산돌의 얼굴이 보였다.
"어르신!"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한도회 동지들과 함께 왔습니다. 선생님을 구출하겠습니다!"
이산갑의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산 돌아. 무력 탈출은...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산감님!"
"들어라, 산 돌아."
이산갑이 창살을 잡고 말했다.
"서재에 숨긴 것들을 잘 간수하거라. 그리고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너희들은 계속 싸워야 한다. 겉으로는 굴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절대 굴복하지 마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산돌이 눈물을 흘렸다.
"산감님...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아니다."
이산갑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절대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싸울 뿐이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샛별이 빛나고 있었다.
"저 별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翌日 정오, 심문실.
장교가 다시 나타났다.
"李 선생, 결정했소?"
이산갑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얼굴은 더욱 수척해졌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내 조건이 있소."
"조건?"
"첫째, 학당의 학생들은 절대 건드리지 마시오. 둘째, 나는 형식적으로는 귀관들의 지시를 따르겠소. 하지만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자율권을 주시오."
장교가 비웃었다.
"당신이 협상할 입장이오?"
"나를 죽이는 것은 쉽소.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회유하는 것이 귀관들에게 더 유리하지 않겠소? 조선인들에게 '보시오, 저 같은 유명한 사람도 대일본제국의 은혜를 깨달았소'라고 선전할 수 있지 않겠소?"
장교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대신 당신은 정기적으로 사상 검증을 받아야 하오. 그리고 다시 불령 한 행동을 하면 즉시 총살이오."
"알겠소."
이산갑이 일어섰다. 그의 다리는 떨렸지만, 그는 꿋꿋이 섰다.
"그럼 서약서를 쓰시오."
장교가 종이와 붓을 내밀었다.
이산갑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다.
'용서하라, 동지들이여. 나는 살아남아 계속 싸우겠다.'
그는 서약서에 이름을 썼다. 이산갑이 아닌, 일본식 이름 木下相을.
붓을 놓는 순간, 그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