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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130)

씨앗은 자란다

by seungbum lee

씨앗은 자란다
1936년 겨울, 학당.
이산갑은 다시 교단에 섰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돌아온 것을 기뻐했지만, 동시에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창씨개명을 했다던데...'
'일본에 굴복했다던데...'
이산갑은 그런 시선들을 느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나카가 뒤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일본어 문법을 배우겠습니다."
이산갑이 칠판에 일본어를 썼다. 학생들이 따라 읽었다.
하지만 수업 중간, 그는 조선어로 된 예문을 하나 들었다.
"'나라를 잃은 백성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본어로는 이것을 어떻게 번역할까요?"
학생들이 움찔했다. 다나카도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이산갑은 태연하게 계속했다.
"이것은 번역 연습입니다. 조선어의 깊은 뜻을 일본어로 전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다나카가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이산갑은 교묘하게 수업 속에 민족정신을 녹여냈다. 일본어를 가르치면서도, 조선의 속담과 이야기를 예문으로 사용했다. 역사를 가르칠 때는 일본의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은연중에 조선의 찬란한 문화를 언급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子正, 물뫼산 용바위 동굴.

"오늘은 世宗大王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이산갑이 촛불 아래 앉은 열다섯 명의 청년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낮에는 평범한 농부나 상인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밤이 되면 이곳에서 조선의 혼을 배웠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소리의 원리를 철저히 분석하여 만든 독창적인 문자체계입니다."

청년들이 눈을 빛내며 들었다.

산돌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이제 선생님의 뜻을 이해했다.

'선생님은 굴복하지 않으셨다. 다만... 더 영리하게 싸우시는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이산갑은 청년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암흑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둠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순환합니다. 흥하면 망하고, 망하면 다시 흥합니다."

"하지만 先生님,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지내야 합니까?"

한 청년이 물었다.

"일본은 너무 강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산갑이 미소 지었다.

"물방울 하나는 약하지만, 만 개의 물방울이 모이면 바위를 뚫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지만, 함께 모이면 일본 제국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저 별들을 보십시오. 하나하나는 작지만, 함께 모여 은하수를 이룹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작고 약하지만, 언젠가 우리의 빛이 모여 조선의 하늘을 밝힐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1937년 봄.

영광 장터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본 헌병들이 공고문을 붙이고 있었다.

"모든 조선인은 創氏改名을 완료해야 한다!"

"神社參拜는 신민의 의무다!"

"내선일체! 대동아공영!"

사람들은 억눌린 분노를 감추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때 한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 우리는 왜 일본 이름을 가져야 해요?"

"쉿! 조용히 해라."

아버지가 아이의 입을 막았다.

바로 그때, 이산갑이 장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 대화를 들었다.

'아이들은 알아야 한다. 自己가 누구인지.'

그날 밤, 명륜학당 서재.

이산갑은 촛불을 켜고 붓을 들었다. 그는 한글로 된 교재를 베끼기 시작했다. 한재호가 전해준 그 귀중한 자료를.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재빨리 자료를 숨겼다.

"누구요?"

"저, 산돌입니다."

이산갑이 문을 열자, 산돌이 급한 얼굴로 들어왔다.

"先生님, 큰일 났습니다. 일본 헌병대가 영광 일대의 지하 조직을 수색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한도회도 위험합니다."

이산갑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재호 동지는?"

"이미 만주로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동지들이 체포되었습니다."

"고문을 견딜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굴의 비밀이 누설될 수도 있습니다."

이산갑이 결단을 내렸다.

"당분간 동굴 모임을 중단한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분산시켜 숨겨라. 한 곳에 모아두면 위험하다."

"네, 先生님."

"그리고 산 돌아..."

"예?"

"만약 내가 다시 잡혀간다면, 너는 절대 나를 구하러 오지 마라. 대신 이 씨앗들을 계속 뿌려라. 알겠느냐?"

산돌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산감님..."

"울지 마라. 씨앗은 때로는 땅속 깊이 묻혀야 싹을 틔운다. 우리도 그렇다."

1937년 여름, 일본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조선을 전쟁 동원 기지로 만들었다. 징용과 징병이 시작되었고, 젊은이들이 강제로 끌려갔다.

학당의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先生님, 저... 징용에 끌려갑니다."

열여덟 살 청년 용식이가 이산갑을 찾아왔다.

"일본 탄광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산갑의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는 청년의 손을 잡았다.

"용식아, 살아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가장 큰 저항이다."

"네, 先生님. 꼭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용식이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이산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원한을... 반드시 갚으리라.'

그해 가을, 어느 날 밤.

이산갑은 물뫼산 동굴에 홀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촛불을 켜고 벽에 기대앉았다.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인가?'

회의가 들었다. 일본의 힘은 너무나 강대했다. 조선의 독립은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 동굴 입구에서 소리가 들렸다.

"先生님?"

산돌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청년들이 따라 들어왔다.

"왜 왔느냐?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先生님,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 청년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것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 사람입니다. 일본인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先生님."

다른 청년도 거들었다.

"비록 지금은 억압받고 있지만, 우리는 언젠가 자유를 되찾을 것입니다."

이산갑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렇다. 씨앗은 자라고 있다.'

그는 청년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촛불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좋다. 그렇다면 우리 다시 시작하자. 더 조심스럽게, 더 은밀하게, 하지만 더 강하게."

청년들이 일어섰다.

"맹세합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우리는 민족의 혼을 지킬 것을!"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 싸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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