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
주말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수연아, 오늘 장 보러 갈까?"
정숙이 딸의 방문을 두드렸다. 수연은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네, 어머니. 금방 준비(準備)할게요."
모녀는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오월의 햇살은 따스하면서도 뜨겁지 않았다. 골목길을 걸으며 정숙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혼수(婚需) 준비는 잘 되어가니?"
"네, 거의 다 됐어요. 다음 주면 이불도 맞춰질 거예요."
"시어머니는 좋으신 분이시더구나. 염려(念慮) 말고 잘 모시렴."
"네, 어머니."
시장(市場)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채소 가게, 생선 가게, 떡집을 돌아다니며 장을 봤다. 정숙은 딸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골라 담았다. 딸과 함께 장을 보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하나하나가 애틋했다.
"어머니, 이 딸기 진짜 싱싱해 보여요!"
"그래, 사자. 네 동생도 좋아하잖니."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공원(公園)을 지나갔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가 평화(平和)로웠다.
"수연아."
"네, 어머니?"
"시집가서도 행복(幸福)하게 살아야 한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고."
"어머니..."
수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정숙은 딸의 손을 잡았다.
"우는 거 아니야. 기쁜 일인데. 좋은 사람 만나서 새 가정(家庭)을 꾸리는 거잖니."
"네, 어머니. 어머니처럼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요."
정숙은 딸을 꼭 안았다.
햇살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시간(時間)이 멈춘 듯한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거실에 모였다. 수연의 결혼식(結婚式) 준비를 함께 점검(點檢)하기 위해서였다. 진수는 수첩을 펼치고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식장은 예약했고, 답례품도 주문했고..."
"아버지, 저 긴장(緊張)돼요."
수연이 말했다. 진수는 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렇게 컸나. 엊그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학교(學校)에 데려다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괜찮다, 우리 딸. 아버지가 다 있잖니."
"아버지..."
민준이 옆에서 누나를 놀렸다.
"누나, 시집가면 오빠한테 용돈 줘야 돼!"
"이 녀석, 누나 시집가는데 그게 중요(重要)하니?"
수연이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모두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밤이 되었다. 민준은 자기 방에서 공부(工夫)를 하고, 수연은 혼수 물품을 정리하고, 진수와 정숙은 안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여보, 우리 딸 시집보내는 거 실감(實感)이 나요?"
정숙이 물었다.
"솔직히 안 나. 아직도 어린애 같은데."
진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났잖아요. 우리가 믿고 보내야죠."
"그렇지. 우리 딸 잘 키웠으니까."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결혼(結婚)한 지 삼십 년. 그 세월(歲月) 동안 함께 웃고 울며 살아왔다. 이제 딸을 보내는 것도 부모(父母)의 숙명(宿命)이었다.
창밖으로 달빛이 비쳤다. 정숙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늘의 달은 여전히 밝았다.
"달이 참 밝네요."
"그러네. 우리 수연이도 저 달처럼 밝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럴 거예요. 우리 딸인데."
다음날 아침, 수연은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어머니가 아침을 차리는 것을 도우며 배운 솜씨였다. 계란말이를 부치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지었다.
"수연아, 네가 다 했구나!"
정숙이 부엌에 들어서며 놀랐다.
"어머니, 연습(練習)해야죠. 시집가면 제가 다 해야 하잖아요."
"우리 딸 다 컸네."
정숙은 뿌듯하면서도 서글펐다. 딸의 뒷모습이 어느새 자신을 닮아 있었다.
아침상에 가족들이 모였다. 민준이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누나, 맛있는데? 시집가서도 이렇게 해줘."
"너는 나한테 얻어먹기만 하면서 무슨 소리야."
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진수는 묵묵히 밥을 먹으면서도 딸의 요리(料理) 솜씨에 감탄(感歎)했다.
"아빠 생각엔 네가 제일 훌륭한 신부(新婦)가 될 것 같다."
"아버지, 고마워요."
햇살이 식탁을 비췄다.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황금빛(黃金빛)으로 반짝였다. 가족의 식사(食事)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따뜻하고 평온(平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