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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달빛 사이 (3)

새로운 삶

by seungbum lee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밤, 수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로운 삶(生)에 대한 기대(期待)와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 집, 이 가족을 떠난다는 것이 갑자기 실감 났다. 그녀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달빛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연은 창가에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같은 달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밝았다.
"잠이 안 오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숙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온 것이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도요?"
"그래. 네 생각하니까."
정숙이 딸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달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 무서워요."
수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새로운 가족(家族)들과 살아가는 게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정숙은 딸의 손을 잡았다.
"수연아, 두려운 게 당연(當然)해. 어머니도 처음 시집갈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愛)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아. 그리고 힘들 때는 친정(親庭)이 있잖니."
"어머니..."
"울지 마. 넌 강한 아이야. 어머니가 제일 잘 알아."
수연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달빛 속에서 모녀(母女)는 오래도록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온기(溫氣)였다.
다음날 아침, 집안 분위기(雰圍氣)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모두가 수연과의 이별(離別)을 실감하고 있었다.
민준은 학교에 가기 전 누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노크를 하려다 말고 그냥 돌아섰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와의 추억(追憶)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릴 때 같이 놀던 일, 누나가 자신을 보호(保護)해주던 일, 함께 웃고 울던 일들.
"민준아."
누나의 목소리에 민준은 걸음을 멈췄다.
"왜, 왜 그래?"
"들어와."
민준은 누나 방으로 들어갔다. 수연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추억이 가득했다. 인형들, 사진들, 상장(賞狀)들.
"오빠, 나 시집가면 자주 놀러 와."
"... 응."
"그리고 공부(工夫)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大學) 가고."
"누나도 잘 살아."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연은 동생을 안았다.
"우리 오빠 다 컸네. 누나 걱정(擔憂)해주고."
"누나..."
남매(男妹)는 오래도록 그렇게 있었다.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두 사람을 비췄다.
저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주말이었다. 정숙은 정성(精誠)껏 저녁을 준비했다. 수연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한 상이 었다.
"와, 어머니. 이렇게 많이 준비(準備)하셨어요?"
"우리 수연이 좋아하는 것들 다 만들었지."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모두 입맛이 없었다. 진수는 술잔을 들었다.
"수연아."
"네, 아버지."
"아버지는... 네가 태어난 날이 아직도 기억(記憶) 난다. 얼마나 작고 예뻤는지. 그런 네가 이제 시집을 가는구나."
진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생(平生) 감정(感情)을 드러내지 않던 아버지였다.
"아버지, 저 멀리 가는 거 아니에요. 차로 삼십 분이면 오잖아요."
"그래도... 아버지 마음은 그게 아니란다."
진수는 술잔을 비웠다. 정숙도 눈물을 닦았다. 민준은 밥을 먹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족(家族) 여러분."
수연이 입을 열었다.
"저 정말(正-) 행복(幸福)했어요. 이렇게 좋은 부모님(父母님) 밑에서, 좋은 동생과 함께 자라서. 제가 받은 사랑(愛)을 제 가정(家庭)에서도 전하며 살게요.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수연아..."
네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물과 웃음이 뒤섞였다. 이것이 가족이라는 것. 함께 울고 웃는 것.
밤이 깊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잠들지 않았다. 거실에 모여 앉아 예전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수연이 태어났을 때, 첫돌 사진, 입학식(入學式) 사진, 가족 여행(旅行) 사진들.
"이때 수연이 정말 귀여웠지."
"어머니, 이건 아버지랑 유원지(遊園地) 갔을 때죠?"
"맞아, 그때 네가 회전목마에서 내리기 싫다고 울었잖니."
추억(追憶)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交叉)했다.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사진들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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