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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의 계절 (5)

퇴근길

by seungbum lee

퇴근길 지하철 창밖으로 계절이 흘러갔다.
여름의 뜨거움이 사라지고, 가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듯, 마음도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서연은 참 많이도 시달렸다.
‘예쁘기만 한 직원이라는 편견.’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동료들의 경계와 눈치.’
‘상사들의 불편한 시선.’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무게처럼 달라붙었다.
무언가에 쫓기듯,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채찍이 등을 올려치듯.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배우고 싶은 마음.
성장하고 싶은 욕망.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
그리고 자기 기준을 지키겠다는 용기.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이끌었다.
마치 꽃이 햇빛을 향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 듯.
시달림과 이끌림의 차이.
그것은 결국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의 문제였다.
타인의 평가를 향할 땐 시달림이 되고,
자신의 성장을 향할 땐 이끌림이 된다.
외부의 기대를 따라가면 시달림이 되고,
내면의 가치를 따르며 걸으면 이끌림이 된다.
혼자 증명하려 하면 시달림이 되고,
함께 성장하려 하면 이끌림이 된다.
서연은 가방 속 다이어리를 꺼내 조용히 적었다.
“나는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끌린다.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그것이, 스물여덟 서연이 찾아낸 가장 현명한 답이었다.
에필로그
1년 후.
서연의 팀은 ‘분위기가 좋은 팀’으로 회사에서 소문났다.
이직률은 가장 낮고, 성과는 오히려 가장 높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서연 팀장 밑에서 일하면 이상하게 지치지가 않는다”라고.
어느 날,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서연은 멘토로 서게 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신입들의 눈동자가 그녀에게 향했다.
“여러분,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실력이요!”
“인맥이요!”
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도 중요하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말을 끊고, 잠시 창밖으로 흘러드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시달림과 이끌림을 구분하는 능력’이에요.”
신입들의 표정이 궁금하다는 듯 일제히 흔들렸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압박이 많을 거예요.
실적, 평가, 경쟁, 기대…
그것들에 휘둘리면 매일 힘들고, 점점 지치고, 진짜 나를 잃게 돼요.”
서연은 신입들의 눈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 배우고 싶은 것,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하면—
그건 이끌림이 돼요.
똑같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고, 의미가 생겨요.”
한 여성 신입사원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선배님… 다른 사람들 시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도… 사실, 외모 때문에 늘 불안했어요.”
그 질문에 서연은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저도 그랬어요. 아주 오래.”
서연이 부드럽게 웃었다.
“근데 이제는 알아요.
외모든 실력이든, 그건 그냥 ‘나의 한 부분’이라는 거.
부정할 필요도, 과하게 의식할 필요도 없어요.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일하느냐예요.”
신입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
“시달리지 마세요.
이끌리세요.
그리고… 자신을 믿으세요.”
저녁. 동기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민준, 수진, 그리고 어느새 가까워진 재희까지.
“팀장님, 오늘 멘토링 어땠어요?”
민준이 묻자 서연은 웃었다.
“좋았어. 오히려 내가 배웠어.
말하다 보니까…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더 잘 보이더라.”
수진이 잔을 들며 말했다.
“너 진짜 많이 변했어. 요즘은 여유가 느껴져.”
“맞아. 너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던데.”
재희도 웃으며 말했다.
“너는 사람을 시달리게 하지 않잖아. 이끌어줘.
그게 서연이의 리더십이지.”
서연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풍경들이 떠올랐다.
“고마워, 진짜. 나 혼자는 여기 못 왔을 거야.”
민준이 잔을 높이 들었다.
“건배.
우리의 성장과, 우리의 우정을 위해.”
“건배!”
잔들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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