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북한산에 눈이 소복이 쌓여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쓴 아낙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더니만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꽃잎을 우이천으로 띄어 내려 보낸다. 북한산을 금방이라도 허물어 버릴 것만 같던 여름 장맛비가 물러나니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강물마저 단풍색으로 채색할 것 같은 어느 가을날 나는 우이천변을 걷고 있다.
천변을 따라 우이천 끝자락 북한산 계곡까지 걷기도 하고 우이천을 기다리고 있는 중랑천을 만날 때까지 걷기도 한다. 걷다 보면 팔뚝만 한 크기의 잉어들이 때를 지어 놀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해상에서 잠수함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잠수함 함대 숫자를 세기도 하면서 한참을 머물다 간다.
잉어는 적당히 혼탁한 물이 최적의 환경 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놀고 있는 곳에는 풀숲도 있고 이끼도 있어 강물이 투명하지 않아 강밑바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산 계곡아래 맑은 물에는 잉어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버들치만이 서식하고 있다. 나는 버들치처럼 맑은 곳만 찾아다니며 살고 있는 사람들 금수저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잉어들이 살기 좋은 적당히 혼탁한 환경을 싫어한다. 아니 그런 곳은 그들과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무를 마치고 친구들과 저녁약속을 한 (금수저) 동료가 약속시간에 늦었다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당황해하기에 지하철을 타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라고 거들었다, 그랬더니 "어떻게 지하철을?" 탈 수 있냐고 하기에 내심 놀랐다. 그이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본 적도 없고 사람들과 비비면서 이동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됐던 모양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 금수저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도 우리와 한 무리인 줄 알고 아무런 생각 없이 어울린다. 그러다 회사라는 조직을 벗어나면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곳에서 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서야 "아! 저들이 금수저라는 것을 내가 잠깐 잊고 있었네" 한다
어느 날은 금수저 3명이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면서 나를 초대했다. 회사빌딩을 벗어나 골목길을 두세 번 꺾더니 간판도 없는 한옥집으로 들어간다. 주인장이 대문 앞에서 우리 일행을 반기면서 방으로 안내한다.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온다. 낙지탕이다.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던 별식이다. 그들만이 알고 찾는 아니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식사 장소다.
식사만이 별난 게 아니다. 식사 후에 여흥을 즐기는 곳 또한 다르다. 내가 따라간 곳은 그들이 놀고 있는 노래방이었다. 장소는 조그마하고 아늑한 홀 스타일이었다. 손님도 기껏해야 세 그룹이 전부였다. 피아니스트가 직접 반주를 해주고 있었다. 동네 여느 노래방과 같은 줄 알고 손님 노래가 끝나기에 내가 노래를 한곡 하겠다고 자리에 일어났더니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면서 품위를 지켜달라고 한다. 흥이 나면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 잉어들이 노는 그런 노래방이 나에게는 더 체질에 맞았다.
버들치들은 잉어들이 노는 물에 갖다 놓으면 강줄기를 차고 올라 그들의 서식지인 강 상류 맑은 물을 찾아간다. 나는 버들치들을 빗대어 비아냥 거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은 맑은 물에서만 살았던 터라 그게 익숙하고 생리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잉어를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잉어들이 살고 있는 세상도 제법 맛깔나고 잔잔한 정감을 나누면서 살고 있어 버들치들이 겪어 보지 못한 나름 재미나는 세상도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면 경로석과 임산부석이 있다. 승객들이 빼곡해도 임산부석은 비워 놓는다. 일에 지치고 학교에서 공부에 시달렸을지라도 미래의 엄마들을 위해 배려하면서 사는 착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백팩을 등에 맨 사람들이 지하철에 오르면 백팩을 앞으로 돌려 매 행여 주위를 불편하게 할까 봐 조심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남을 배려하면서 사는 게 몸에 배어있다. 몸이 불편하거나 노약자가 승차하면 젊은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겸양의 미덕이 아직은 살아있는 사회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시는 모두들 오른쪽으로 서서 바쁜 사람들이 왼쪽으로 비켜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아름답다.
가끔은 사람들끼리 부대끼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남을 위해서 배려하고 주위를 보살피고 양보하는 이런 잉어들의 잔잔한 정을 그들 버들치들은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