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출근하면 동료들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한다. 영어로는 "굳 모닝"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도 제법 세련된 인사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살던 고향 에서의 인사말은 달랐다. 날씨를 주제로 “오늘 아침 날씨는 참으로 청명 하네요"라고도 하지만 대체로 ”아침은 드셨어요 “ 였다.
이런 인사말은 배고픈 시절에서 유래된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혹여 아침 저녁은 굶지 않고 사시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 잔재는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님을 초대하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많은 음식을 장만한다. 와이프도 예외가 아니다. 초대받은 손님들이 집에 들어와 식탁을 보는 순간 모두들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어머나! 무슨 음식을 이리도 많이 준비하셨어요?" 초장에 그들을 질리게 만들어야 융숭한 대접이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에 앞서 주인장은 "차린 것은 약소했습니다만 많이 드셨는지요?"라고 묻는다. 상대방이 많이 먹으면 접대를 잘한 건가? 대답도 가관이다. "배가 터지도록 많이 먹었습니다." 왜 그토록 먹는 양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는 파틀락(potluck)이란 게 있다. 친구 또는 이웃들이 모이면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와 같이 나눠 먹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준비해 온 음식으로 각자의 요리솜씨를 뽐낼 수 있어 좋고 파티를 주체하는 쪽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아서 좋은 문화다. 모임의 주된 목적이 먹는 것만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회사 다닐 적에 해외 거래선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관광도 시켜 드리고 식사 접대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식사 후에 그들에게 물었다.
"Did you have a lot?" (많이 드셨어요?)
그러면
"Yes, I enjoyed very much. Thanks for your hospitality" (즐거웠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 내게 꽂힌 한마디 "enjoyed - 즐거웠습니다".
식사를 한다는게 배를 채우는 것 만이 목적이 아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말 그대로 즐기는 것이다. 서양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면 별것 아니다. 그렇지만 대화들을 참으로 맛깔나게 잘한다. 처음 만난 사람도 서로 웃고 즐기는 것을 보면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처럼 보인다.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면 오늘 처음 만났단다.
그런데 우리 밥상은 다르다. 아니 유별나다. 어린 자녀들은 호기심도 많고 참견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인지라 밥상머리에서 말이 많다. 그러면 부모들은
"애야, 밥 먹을 때는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란다"
입틀막이다.
저녁 식탁은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얘기를 주고받는 시간이다.
자녀들의 친구 얘기와 학교 얘기는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고 엄마 아빠의 직장 얘기는 자녀들이 장래 직장생활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데 기껏해야 부모님의 훈육이 전부다. 거기에다 아버지와 아들들만의 밥상, 어머니와 딸들만의 밥상으로 이분되었었다(우리 집 얘기다).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거래선들과 아니면 현지인 친구들과 식사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식사를 기다리면서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최소한 1시간 이상이다.
우리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사장님, 여기 해장국 두 그릇 입니다" 하고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치 밖에서 다투다 들어온 사람처럼 말이 없다.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우는 10분 동안은 더더욱 말이 없다. 식사 후에 급히 해야 알 일이라도 있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식사는 늘 그래왔다.
어쩌다 아들 친구들(모두 다 미국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 1-2시간은 보통이다. 식사시간 내내 떠들썩한 웃음 한바탕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별것 아니다. 스포츠 게임에 관한 이야기, 친구 놀려주기, 여행 다녀온 얘기. 그런데도 맛깔나게 떠들어댄다. 영어가 서툴러 이를 지켜만 보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도 질문을 툭툭 던지면서 동참을 유도하고 지루하지 않게 배려한 그들의 식사모임은 마냥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