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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Mar 18. 2024

금수저로 살아가고 있는 개 이야기



저의 조상님들은 설국에서 썰매 끄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운이 좋게도 미국 뉴욕 맨하탄에서 태어나 뉴요커가 되었답니다.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즈음에 어느 착한 아저씨가 저의 집에 와서 저를 콕 찍더니만 데려다 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선택받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아저씨는 저를 데리고 나오시면서 무려 $3,000이라는 거금을 지불하시기에 무슨 돈 이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은 백두대간 혈통이라고 뽐내듯이 너와 같은 사모예드(Samoyed) 혈통의 귀여우미는 사례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신다. 역시 출생성분이 좋아야  몸값도 비싸다는 것을 이때에 알게 됐다.


아저씨의 품에 안겨 찾아간 곳은 맨하탄 38번가에 위치한 2 베드룸 아파트.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을 갖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도 이곳에서는 룸메이트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인데 저는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독방을 차지했습니다.


이방 저 방을 들여다보니 아저씨는 어드벤처를 많이 좋아하신 것 같아 보였다. 탄자니아 북동부에 위치한 5,900미터 높이의 킬리만자로 화산과 페루 마추삐추도 등반하셨다. 극한 철인 대회라고도 불린 몽골 고비사막 250킬로 미터를 6박 7일 동안 달리는 국제 마라톤 대회도 참가하여 완주하셨다. 최근에는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 까지 960 킬로 미터를 자전거로 일주일 만에 달리셨다니 대단하시다.


저는 아저씨를 아빠라 부르면서 따랐고 아저씨는 저에게 메다(Metha)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아빠는 곧바로 저를 위생국(Health Dept)으로 데리고 가 아빠 호적에 올리셨다. 주민등록 등본을 떼어보니 아빠의 이름은 크리스 (Chris), 아들 이름은 메다(Metha)라고 적혀있다. 이 나라에서는 개를 데려다 기르려면 반드시 당국에 신고를 해야 하고 일종의 면허증을 받아야만 한다나요?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래요.


위생국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금 페트샵으로 데리고 가 제 이름이 새겨있는 목걸이(collar)도 사서 목에 걸어 주셨다. 오늘부터 밖에 나갈 때에는 반드시 이 목걸이를 하고 나가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 주셨다. 이나라 법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놈의 "법"이라는 말을 벌써 두 번째 듣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회사 일에 무척 바쁘신가 봐요. 아침 일찍 출근하면 저녁 늦은 시간에야 돌아 오시곤 하니까요.  아빠가 회사에 출근하시고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으면서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지?

소변이라도 마려우면 어쩌지?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11시에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따고 들어왔어요.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니 저와 함께 산책도 하고 대소변을 받아 주려고 찾아온 도그와커(dog walker)라고 하더군요. 둘이서 산책을 하면서 도그와커는 시계를 들여다보곤 하기에 무슨 약속이라도 있냐고 물으니 오늘 오전에 30분, 오후에 30분씩 저와 함께 걷기로 아빠와 약속을 했기에 시간을 체크 중 이란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저에게 묻더군요


오늘 하루 지루 하지는 않았어?

아니요, 오전 오후에 콧바람을 쏘였더니 컨디션이 좋아요

다행이다.

아빠, 오늘 우리 집에 찾아온 그 도그와커 아주머니에게 페이 하셨어요?

그럼. 시간이 돈 이잖아.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뉴욕 맨하탄인데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지

얼마요?

일주일에 $500 이란다. 한 달에 $2,000이지

오 마이 갓!  저한테 그렇게 큰 돈을 써도 되는 거예요?

우리 "메다"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주기만 한다면 아빠가 그 정도는 투자해야지


주말이 찾아왔다. 아빠께서 목걸이와 리쉬(개 줄)를 꺼내 들고서는 우리가 오늘 갈 곳이 있다면서 외출을 하잖다.  4 블락정도 걸어서 우리가 찾아간 곳은 Dog Training Academy(개 훈련소)였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교육시켜 보다 원활한 소통을 원 하셨고, 내가 우리 집에 해피메이커가 되는 방법도 가르쳐주는 곳이었다. 교육내용은;


아빠와 대화하는 방법 (아빠가 우우--하면 나도 따라서 우우-- 소리 내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기 (아빠가 설정해 놓은 선을 넘지 않기, 예컨대 부엌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기).

아빠에게 재롱부리기 (재롱을 부리면 간식을 하나씩 주신다).

아빠와 악수하기.

아빠에게 순종하는 방법 (아빠가 화났을 때는 말을 잘 듣겠다고 엎드린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교육도 돈이 꽤 들거라 걱정되어 물었다


아빠, 여기도 학원비가 비싸?

 조금

얼마인데?

한 달에 $1,000

오 마이 갓, 그러고 보니 내가 우리 집에 돈 잡아먹는 귀신이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께서는 제가 오늘 배웠던 것을 복습도 시키셨다.


"메다" 하고 부르시면서 부엌으로 가기에 뒤를 따라갔더니 문지방을 넘어오지 말란다. 학원에서 배운 대로 멈추었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굿 보이 (good boy)하고 칭찬도 해 주신다. 나는 다짐했다. 고생해서 번 돈으로 나를 위해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하시니 착하고 말도 잘 듣는 아들이 되겠다고.


아빠는 매년 위생국에 가서 내 주민등록증을 갱신해야만 했다. 이것 또한 미국 법이 그렇단다. 예방주사도 맞아야 하고 그 기록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혹여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법을 잘 지키고 따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했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빠와 함께 하와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엘에이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텍사스에 살고 있는 작은 아빠도 함께 오신다고 한다. 나는 그루밍센터에 가서 이발도 하고 몸에 향수도 뿌리고 예쁘게 단장을 했다. 오랜만에 머리에 예쁜 꽃모양의 리본도 달고 나왔다. 아빠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웃집 아주머니가 저를 보더니만 “세상에나! 너와같이 아름다운 녀석은 지금껏 본 적이 없어” 하고 칭찬도 해주셨다. "그럼요 제가 누군대요? 이래 봬도 제가 동물왕국에서는 외모가 출중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사모예드 혈통이라는 것을 잘 아시잖아요."


하와이로 떠나는 날 아침부터 아빠는 날씨에 민감해하시면서 조금은 초조해하신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으니 날씨가 너무 추우면 비행기 회사에서 나를 태워주지 않는다 한다. 아직 까지는 괜찮은데 일기예보에 의하면 점심시간대에는 온도가 더 내려가 어쩌면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워도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귀하신 몸이다.


아빠는 나의 여행을 위해 준비물이 많으시다.  캐리어 (개 집), 두 끼니 식사 (개 밥), 물, 목걸이와 리쉬 그 외에 항공사에서 요구하는 서류작성. 이토록 복잡하면 나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으니 혼자 집에 남겨둘 수 없다 한다. 또다시 법이 그렇단다. 최악의 경우에는 도그호텔에 머물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빠는 내가 호텔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지난번 아빠 출장 때 호텔에 머물렀는데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이틀간이나 식사를 걸렀더니 미안하다면서 다음부터는 함께 여행하자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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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길에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안된단다. 아빠 비행기는 내가 탈 수 있는 수하물 시설이 없어 나를 먼저 보내고 아빠는 다음 비행기를 탈 거라 한다. 그러다 아빠 비행기가 스케줄대로 도착하지 못하면 나는 어찌 되느냐고 물으니 걱정 말란다. 나를 보호해 주는 시설이 있고 아빠가 같은 날 당도하지 않으면 나는 호텔(개 호텔)에 머무면서 아빠를 기다리도록 서류에 싸인 하셨다 한다.


하와이 가는 비행기 티켓 값도 궁금했다. 나는 수하물 칸을 이용하기 깨문에 아빠 호주머니를 가볍게 해 줄 거라 믿었는데 아빠 비행기 값의 배 이상이다. 아빠는 늘 나를 놀라케 하신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한 달에 삼천불씩이나 나를 위해 쓰시고 여행비는 일반승객들의 비즈니스급에 상당하는 돈을 쓰시니 나는 금수저가 아닌가 싶다.


아빠와 함께 살아온 세월도 벌써 십 년이 됐다. 병들고 늙어지니 이 귀염둥이도 아빠에게 귀찮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아빠와 병원에 가는 횟수도 잦아진다. 지난달에는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응대를 않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귀에 문제가 있는듯 하다면서 병원에를 데리고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진찰을 하시고 나서는 제가 청력을 잃었다나? 늙어지면 빨리 죽어야 하는데 훌륭한 아빠 밑에서 호사하다 보니 별꼴을 다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부터는 별식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소화기능이 떨어져 정상적인 소화능력을 상실했으니 어제까지 먹었던 음식은 버리고 소화가 잘되고 영양가가 높은 식사로 개선하라는 말씀 이시다.


전설적인 이탈리아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Andrea Bochelli)가 부른 "Time to say Goodbye"는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슬픈 노래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라고 했다. 나는 아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용기 내어 "time to say goodbye"라고 말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빠! 회사일에 바쁘신데 이렇게 자꾸 아빠를 옆에 붙들고 있어 미안해.  이제 저를 양로원 (dog shelter)으로 보내 주세요. 응? 아빠-----아.  please please please (부탁하고 또 부탁드려요). 저도 이제 그 정도 눈치는 있거든요.


 무슨 소리야, 아빠는 너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데. 기다려라 너의 새엄마가 생길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 셋이서 가족사진도 찍어야 해


하기야 저도 한때는 한 인물 했었지요.  길거리에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함께 인증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늙어 빵꾸 똥꾸 털 색깔도 누렇게 돼버려 새엄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게 좀 창피해요


무슨 가당치도 않는 소리야 너는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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