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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Nov 09. 2023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suspended coffee

폐지 줍는 할머니

밥보다는 빵을 더 좋아하고 차보다는 커피를 즐겨 마신 사람이 오늘따라 얼큰하고 따끈따끈한 추어탕이 생각나 동네 식당을 찾았다. 아무데나 앉아도 된다는 식당 종업원의 말에 기왕이면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할 겸 유리창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손님들은 60-70대이고 젊은 사람은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다. 서빙을 하는 젊은 친구 한 사람뿐이었다. 추어탕은 역시 꼰데들이나 좋아하지 젊은 사람들 입맛에는--------.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지난번에 처음 들렀을 때 "와우! 우리 동네에 이런 맛갈나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네?" 했는데 오늘도 지난번에 먹었던 맛 그대로였다. 음식을 반쯤 먹고 있을 때 허리가 구부러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페인 삐쩍 마른 80대 할머니께서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식당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를 안으로 모시고와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해 드려야겠다는 생각 에서다. 잠깐, 이건 아니지 내가 순수한 마음에서 아니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 생각에 음식을 대접해 드리려고 했는데 혹여 할머니께서


당신은 내가 폐지나 줍고 다닌다고 먹고살기가 막연한 불쌍한 노인으로 동정하는 거요?

아니면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이폐지를 사주는 회사가 문 닫을 시간이 다되어 서둘러야 하니 안 먹어도 먹은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면

고마워요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이렇게 힘들게 살아도 세상 살맛이 납니다. 어쩌면 젊은 양반이 착하시기도 하여라.

아니면

할머니는 쾌히 승낙하셨는데 식당 주인께서 남루한 할머니를 자기 영업장에 끌고 들어 온다고 못 마땅해하실까?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나설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을 다시금 자리에 주저 않히고서

내가 살았던 미국 에서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튀쳐나가 할머니를 식당 안으로 모시고 올 수도 없고 와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  할머니는 연로 하시지만 아직도 손수 돈을 벌어서 먹고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당당하고 주위의 도움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갖은자들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식당에서 왜 이런 충동을 느꼈을까?

할머니가 불쌍해서?

왜 불쌍하다고 생각 했을까?

폐지나 줍고 있으니까? 

폐지를 줍는 사람은 다 가난한 건가?

외모가 남루해서? 

맞아, 내가 미국 자동차 수리 업체에서 일하면서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잘못 평가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는 것을 벌써 잊고 있었군.


그 옛날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우리 샵에 이따금씩 들러 필요한 도구들을 빌려 쓰고 가는 정말로 남루한 메케닉(자동차 수리공)이 있었다. 나는 주인장에게


저 친구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보아하니 자동차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street mechanic 이란다.

그게 무슨 말 이어요?

자기 샵을 갖고 있지 않고 동네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길거리에서 차를 고쳐주고 돈을 버는 사람이란다.

거지같이 보이는데요

Mr. Moon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요. 저래뵈도 돈 많은 millionaire (백만장자) 란다.


그 후로 3년 정도 지났을까? 바로 거지같이 보였던 street mechanic 그 백인 할아버지가 고급 머세데스 벤츠를 타고 우리 집 건너편 백인 할머니를 찾아와 둘이서 담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허겁지검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와이프에게 얘기했더니 영감, 할멈이 서로 사귀는 사이라나?


오늘 식당에서 보았던 그 할머니도 미국에서 만났던 그런 street mechanic 처럼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위안을 해보려고 애쓴다. 돈보다는 운동삼아 아니 당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들, 병들어 움직이지 못한 다른 노인네들을 돕기 위해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


내가 본 할머니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다시금 외모만으로 사람을 갈라치기 하고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사 드리기 위해 꼭 그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미국에는 suspended coffee라는 게 있다. 돈이 없어 커피값을 지불할 수 없는 그 누군가를 위해 내가 커피숍에다 커피값을 지불해 놓고 가는 것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suspended coffee 있냐고 찾으면 내가 지불했던 그 커피를 주는 것이다.


그래, 나눔도 상대를 배려해야 하고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돕거나 손을 내민다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지도 몰라.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홈리스 피플이 아니지 않은가?  티 나지 않게, 겸손하게,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을 내밀수 있는 게 바로 suspended coffee 가 아닌가 싶다.


식당에서 보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suspended meal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설렁탕 한 그릇 값을 지불해 놓고 가면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먹을 수 없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그런 식사.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악수 하면서 얼굴 없는 대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마워요 당신이 사주신 설렁탕 잘 먹었습니다.

천만에요. 저는 행복해 보이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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