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던 거리가 줄잡아 백만 마일은 될성싶다. 이토록 많은 거리를, 많은 시간을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지내다 보니 호사를 누리는 일도 있었다. 또 내가 탄 비행기가 벼락을 맞았을 땐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삶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는 그때를 소회 하면서 감정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인 전용기를 타봤다. 회사 다닐 적 얘기다. 지구 정반대 편 브라질에 있는 거래선을 찾아가기 위해 한국을 출발하여 미국 L.A. 까지 11시간 비행, 미국 L.A. 에서 쌍파울로 까지 12시간 그러고 나서 쌍파울로에서 론드리나까지 1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니 총 24시간 동안 비행을 했다.
쌍파울로 공항에 도착하니 거래선 조앙자부르가 게이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끌던 케리어를 자기 직원에게 맡기고 비행기를 타로 가잖다. 터미널 게이트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빌딩문을 열고 나가니 소형 제트비행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태우고갈 그이의 전용기였다. 비행기 안은 의자가 아닌 카우치가 창가 양쪽으로 놓여있고 팔을 벌리면 닿을 지근거리에 각종 음요수들이 10여 종 준비되어 있어 마치 술집에 빠를 연상케 했다.
전용기를 타보기 전에는 비행기 안에 의자나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이 고급스러울 거라고 그저 상상만 했었다. 그러나 막상 타보니 의자 대신 카우치, 승무원 대신 음료수가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조앙과 나는 카우치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비행하면서 그동안의 안부도 묻고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우리가 한 시간 반 동안 비행 하면서 업무 얘기를 나누듯이 연봉이 10-20억 되는 대기업 CEO 들에겐 이 비행시간과 공간이 업무의 연속성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용기는 있는 자들만의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나 돌이켜보게 됐다.
나는 다음날 거래선 사무실에서 가격인상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오후에는 전용기로 이과수 폭포 관광길에 나섰다. 전용기로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수의 장관은 275개의 폭포가 동시에 숨을 토해내며 세상의 경계선을 허물어 뜨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지상에 내려 지근거리에서 세계 최대규모의 폭포수를 맞으니 물의 포효만이 귀와 가슴을 채웠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이곳을 찾기 전 친구에게 이과수 폭포가 얼마나 크냐고 물었더니 "미국에 있는 나이애가라 폭포는 암소가 오줌 누는 정도"라고 하더니만 내 친구의 비유는 뻥이 아니었다.
가진 자들의 호사를 상상해 보았다. 주말에 가족들끼리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전용기로 이과수 폭포를 공중과 지상에서 구경하며 하루를 보내는 그들의 생활을....
행여 비행기 시간에 늦을세라 여유 있게 집을 나서 공항 검색대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면 승객들로 북새통이다. 어떤 이는 시간을 보내느라 면세점에서 샤핑을 하는가 하면 게이트 앞에 있는 의자에 쪼그려 앉아 충전코드를 꼽아놓고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일찍 집을 나선 탓에 모닝커피도 못했던 터라 푸드코트에 가서 어렵사리 빈자리를 찾아 샌드위치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의자에 드러누워 보딩시간까지 아예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터미널 홀(terminal hall)을 걷다 보면 라운지라는 싸인이 보인다. 여기에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사람 숨소리도 들릴만큼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샤워도 할 수 있고 업무도 볼 수 있도록 컴퓨터가 비치되어 있다. 고리고 원하는 음료수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라운지 입구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에게 비행기 시간을 알려주고 잠을 청해도 된다. 보딩시간이 되면 직원이 깨워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딩을 위해 게이트로 가면 우리처럼 30-40미터 긴 줄을 설 필요도 없다. 그들의 탑승은 우선 인지라 바로 보딩이 가능하다. 역시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 대우다. 그래서 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하지만 있으면 편리하고 남다른 대우도 받을 수 있어 우리는 돈 앞에 목을 조아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생활 덕택에 한때 이용했던 공항 라운지가 이제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곳이 돼버린 지 오래다. 라운지 싸인을 지나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다.
돈 많은 이들은 기내에서 먹는 것도 우리와는 다르다. 퍼스트클래스 고객들에게는 사전에 연락하여 식사 메뉴를 선택토록 하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식사를 준비해 준다. 그러나 일반승객들은 사전에 준비해 온 두 종류의 음식 중 어느 하나가 떨어지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주는 대로 먹겠냐고 물을 때면 먹는 게 아니라 먹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국내 항공사 직원들의 식사 접대는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L.A. 에서 인천으로 오는 중에 준비해 온 비빔밥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내 차례가 되어 비빔밥을 주문했다. 기다리라면서 승무원용으로 준비해 놓은 비빔밥을 건네준다. 모양이 다른 그릇에 담겨있어 그 이유를 물으니 승무원용 이란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퍼스트클래스 고객들은 식사 외에도 탑승하면 차별화된 대우도 받는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미국 출장 중 클리블랜드에서 뉴욕으로 가는 티켓을 골롬버스(오하이오)에서 뉴욕으로 일정을 변경했더니 퍼스트클래스 자리로 업그레이드 받았다. 당시에 나는 해외출장이 처음 인지라 긴장하고 당황한 나머지 그게 퍼스트클래스 좌석인 줄도 몰랐다. 제일 먼저 탑승을 하란다. 기내에 오르니 끌고 들어간 캐리어를 승무원이 받아 주는가 하면 입고 있던 재킷도 받아서 캐빈에 걸어준다. 그뿐인가? 자리에 앉자마자 마실 음료수까지 대령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반승객들은 이제야 기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와우!, 한국 촌놈이 미국에서 이런 대우도 받아보네. 다~아 회사 덕택이구나"
다시 한번 내가 속해있는 회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돌아가거들랑 더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하고 다짐했던 적도 있었다.
L.A.에서 San Francisco 출장 중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는 한국에 시내버스나 공항버스와 같이 시간대로 운항하는 셔틀 항공편이 있다. 바로 L.A.와 San Francisco 구간이 그렇다. 게이트 앞에서 보딩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에는 다른 승객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 앞에 나와있는 직원에게 San Francisco행 비행기가 맞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예정시간에 맞춰 출발할 거란다. 기내에 들어가 앉아서 비행기가 움직일 때까지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승객은 나 혼자다.
승객이 단 한 사람인데 비행기가 뜨다니 이럴 수가?
양쪽으로는 빈 좌석뿐인데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엔진은 저리도 큰 소리를 내며 힘을 써야 하나?
창밖으로 구름이 펼쳐져 있는데 마치 세상에서 단 한 명의 여행자가 된 듯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누군가의 여정을 위해 거대한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이게 미국의 고객 서비스 진 면목 일지도 모르겠다.
승객이 단 한 명인데도 운항이 취소되지 않고 예정대로 비행기를 뛰우는 나라, 미국.
융통성이 없는 걸까? 아니면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어쨌든 브라질에 이어 미국에서 전용이 아닌 전용기를 타게 됐다.
많은 비행을 하면서 호사만은 아니었다. 한순간에 죽음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다. 터키 여행 중 에페소스 역사유적지를 찾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이즈미르(IZMIR)로 이동 중 착륙 20여분을 남겨두고 기체가 흔들리니 좌석벨트를 매라는 싸인이 있었다. 채 일분도 안되어 기체가 다시금 심하게 흔들리면서 마치 엉덩방아를 찍듯이 비행기가 툭 떨어지니 음식 받침대에 놓여있던 커피가 천장으로 튀어 오르고 짐을 넣어 두었던 캐빈이 열리는 등 순간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맨 뒷좌석에서는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게 기류로 인한 기체 흔들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얼마 후 승객들 입으로 입으로 전해온다. 우리 비행기가 벼락을 맞았단다.
세상에나 살다 보니 벼락을 맞는 일도 있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또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우리 기내에 의사가 탑승했는지 저 앞쪽에서 신사 한분이 신분증을 승무원에게 내 보이면서 뒤에서 신음하고 있는 환자에게 접근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승무원이 다치지 않았나 싶다.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한 경우가 세 번 있었다. 그때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 누구의 요청이 없어도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에게 자격증을 보여주고 환자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그들의 직업 정신이 존경스러웠고 고개가 숙연해졌다.
비행기가 착륙하여 터미널 램프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이 사고에 대한 어떤 기내방송도 들을 수 없었다. 이는 승객들을 위해 나름대로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매뉴얼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내리면서 입구에서 인사를 하는 승무원에게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비행기가 벼락을 맞은 건가?
그렇다
마약을 거래하는 혐의자로 오해를 받아 여권을 빼앗긴 체 6시간 비행을 했던 적도 있었다. 중남미 출장 중 나의 일정은 엘살바도르에서 2일 체류, 마이애미로 이동, 마이애미에서 일 박, 콜롬비아로 이동, 콜롬비아에서 2일 체류 후 다시금 마이애미를 거쳐 L.A.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이애미에서 L.A.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 후 좌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행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더니만 여권을 달란다. 내 여권을 갖고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비행기 문이 닫히고 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륙 후 30여분이 지났을까 여전히 그 누구도 내 여권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 승무원을 불렀다. 당신네들이 내 여권을 가져갔는데 돌려받지 못했다고 하니
당신 여권은 지금 L.A.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속으로 그래 바로 이게 미국이야 했다. 그들은 전후설명이 없다. 팩트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설령 묻는다 할지라도 전후사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내가 살면서 문제가 될만한 나쁜 짓이라도 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여권을 빼앗긴 나는 L.A. 에 도착해서 이민국에 붙잡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다 출장 일정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내 마약 밀수의 거점이 마이애미
내가 다녀온 곳이 마약 집산지인 엘살바도르와 콜롬비아. 마이애미에서 일 박 하면서 이 두 곳을 들락거렸으니 마약 거래상으로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문제가 없을지언정 이를 해소하기까지는 어떤 일들이 있을는지 두렵기까지 했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게이트를 빠져나올 때까지 여권은 내 손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민국을 향해 다른 승객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2층에서 1층으로 이동 중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1층 저 아래서 누군가가 나를 처다 보면서 내 이름을 부른다.
Mr. Moon? 당신 여권 여기 있어요
여권을 가져간 이유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마이애미에서 L.A. 까지 이동 중 그들은 내 여권으로 신원조회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보모님께서 일러 주셨던 얘기가 떠 오른다.
죄짓고는 못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