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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Jun 24. 2024

선하고 착한 그 여자

선한 것과 착한 것의 사전적 차이점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선 하다는 것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며 느끼는 그런 무엇이 아닐는지. 우리는 이런 갓난아기를 쳐다보며 착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 서 있으면 또는 부처님 앞에 좌선을 하고 있으면 선과 사랑, 선과 자비를 떠 올린다. 우리는 그들을 착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배고픈 이와 음식을 함께 나누고,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힘들게 고갯길을 오르는 할머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나약한 숙녀가 누군가의 손에 끌려가면서 도와 달라고 외칠 때 위험한 줄 알면서도 영웅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에게는 착한 사람이라고 하지 선한 사람 이라고는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선하고 착한 두 여자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한 번은 부산 깡동시장에 어묵식당을 찾다 만난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다.


40년 만에 다시 찾아간 부산 해운대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하여 일 년 사이에 4번이나 다녀왔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해운대가 아닌가 싶다. 미국의 산타모니카비치, 헌팅톤비치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세계 3대 미항(아름다운 항구) 중에 하나라는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아름 다웠다. 대한민국에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존심을, 아니 콧대를 치켜올려 세우기에 충분하다.


해운대 예찬론자가 된 후 친구와 세 번째로 해운대를 찾는 날 친구는 깡통시장에 가서 어묵맛도 봐야 한다면서 그이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한다. 북새통인 시장골목을 한참이나 헤집고 나서더니 길을 잃었단다. 우리는 옷가게로 들어갔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길을 묻기에 앞서 "아주머니가 참으로 선해 보이신다. 이리도 아름다운 분이 여기서 옷가게를 하고 계시네"했다.


여기 유명한 어묵식당을 찾고 있는대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따르라면서 앞장선다. 한참을 걷는다. 식당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주면서 "맛있게 드세요" 하고 돌아선다. 식당에서 어묵을 시켜 먹으면서 그녀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내가 그 옷 가게 주인으로 앉아있는데 길을 묻는 행인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  가게를 그토록 오랫동안 비워도 괜찮을까?

@  북적되는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다 보면 내 비즈니스와는 무관하게 이것저것 물어대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진대 어찌 이리 착하실 수 있단 말인가?

@  선해 보이시던데 마음씨도 착하시네


식사를 마치고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를 안내해 주신 그 아주머니의 가게를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그녀를 찾았다. 우리를 다시 본 그녀는 "어묵 맛있게 드셨어요?" 하고 인사하신다.

나는 가게를 둘러보면서 선하고 착한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진열대에 걸려있는 옷을 가리키면서


자기야, 여기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있네 한번 입어봐라.


옷을 갈아입고 나온 와이프를 보면서


오랜만에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옷을 찾았다.

신발도 매치시켜 하나 사자. 깡통시장 방문 기념이야


이를 지켜보던 친구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자기 와이프에게


"여보, 당신도 하나 골라보지" 한다


두툼한 샤핑백을 들고 가게를 나서면서 마음속으로


이게 세상사는 맛이야. 돈을 쓰고도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게 얼마만인가?




내가 만난 선하고 착한 또 다른 여자는 터키 여행 중 이스탄불에 투숙했던 어느 호텔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였다. 그 호텔은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하였다. 식당은 8:30분부터 10:30까지 오픈. 다음날 아침 30분 일찍 식당을 찾았더니 벌써 다른 손님 한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 앉으니 40대쯤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우리 식탁으로 다가와 상냥하게 웃으면서 눈인사를 한다. 순간 아주머니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부산 깡통시장에서 만났던 그 아주머니가 스쳐 지나간다.  


빼어난 미모도 아니다. 그쳐 쳐다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왠지 편안하고 차분해진다. 나이 40이면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이여인은 지난 40년을 훌쩍 건너뛰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침 식사는 콘티넨탈식 이었으나 스크램불을 만들어 줄 터이니 먹겠냐고 묻는다. 그녀가 손수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맛이 배가한다. 오늘 하루 관광마저 즐겁다.


5일 동안 머무르면서 매일 아침마다 그녀의 정성이 담긴 식사를 한다는 게 관광 못지않은 즐거움이었다. 오늘은 이스탄불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는 날이다.  늦어도 8시에는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기에 아침을 먹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아니 그녀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도 못하고 떠난다는 생각에 혹여나 하고 7시 30분에 식당을 찾았다. 식당 직원들은 한참 준비 중이다. 선하고 착한 그녀가 나오기에 "인사하러 들렀다"고 했더니 우리를 식탁에 앉히면서 식사를 준비해 줄 터이니 먹고 가란다.


이제 막 구워낸 빵, 과일, 스크램불에다 갓 뽑아낸 커피까지 해서 한 상을 차려준다. 식사를 하면서 여느 다른 식당이었다면


시간에 맞춰 8시 30분에 문을 열어줄 터인데 우리를 위해 특별한 한상을 만들다니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족처럼 보살피는 그 착한 마음은 어데서 우러나온 것일까?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로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다. 지갑에서 200리라(U$ 7.00)를 꺼내 건네주면서


"당신의 따뜻한 아침 한 상이 이스탄불을 많이 생각나게 할 것 같소" 인사를 하고 그 선하고 착한 여자와 헤어졌다.


선 하기에 착한 사람인지, 착한 일들을 하다보니 선한 광체가 빛나는지 모르겠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지만 잊히지 않고 생각나게 하는 선하고 착한  그 사람들, 나에게 세상 사는 법을 가르쳐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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