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끊어 버리겠다고?

by 문 내열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다. 전기회사라면서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로

"오늘 오후 3:00에 단전입니다"

무슨 얘기냐고 따져 물었더니 전기세를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 이란다.

미국에서 조그마한 자동차 타이어 판매업을 하고 있는데 걸려온 한통의 전화였다.


혹여 전화를 잘못 건 것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왜냐면 지금껏 전기세가 밀리거나 미납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사업장 주소 및 사업자인 내 이름을 읊으면서 전화를 제대로 했단다. 3:00시에 단전 이오니 그리 알고 있으라며 전화를 끊으려고 한다.


전기가 끊기면 모든 영업이 꽝이다. 전화마저도 먹통이 된다.

단전은 스위치만 내리면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회복시키는 것은 절차가 복잡하다. 어쩌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


밀린 전기세를 먼저 납부하고 뭐가 잘못됐는지를 나중에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미국에서는 어떤 분쟁이 생기면 그렇게들 한다. 상대방들도 그렇게 권장한다. 왜냐면 미납으로 인한 과태료나 신용불량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방을 붙들고서

"왜? 독촉장을 보내지 않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2-3차례 보냈단다.

나는 받은 적이 없다.

한쪽은 독촉장을 보냈다 하고 다른 한쪽은 받은 적이 없다 하니 다툰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쪽은 "갑"이고 이쪽은 "을"이니 말이다. "갑"은 상전이고 일방적이다. "갑"이 휘두른 회초리는 "을"에게는 많은 아픔을 남긴다.


혹여 이게 보이스피싱은 아닌지 하는 의심의 촉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계좌번호나 결제카드번호를 알려주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여태껏 걸려온 보이스피싱 수법이기에 역시나 했을 터인데.


이쪽은 흥분해서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저쪽은 라스베가스 카지노 딜러처럼 너무 차분하다. 마치 목욕탕에 온탕과 냉탕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 내 처지는 어린애가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 지르고 악을 쓰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무슨 묘수가 없겠나 하고 궁리하였다. 회사의 책임 있는 매니저와 얘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살면서 이런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 회사의 이 무책임한 처사에 동의할 수 없소. 당신 직속 상사를 바꾸어 주시요"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려준다.

"아니요, 지금 당장 이 전화를 당신 상사에게 연결 하시요"

지금 자리에 없으니 나중에 전화하란다.

여전히 단전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결제를 해야 한다고 재촉하지를 않는다. 보이스피싱이라는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를 어쩐담?


상대방을 흔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지금 우리의 통화 내용이 녹음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당신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FBI 정보당국에 요청을 했습니다 (비록 뻥이지만)."

전화를 끊어 버린다.

보이스피싱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

그들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내 사업장에 아킬레스건을(전기) 골랐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두 달여 지났을까? 지난번과 똑같은 전화다.

나는 아주 차분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그것도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이 빌어먹을 놈아, 남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면 쓰겠냐? 너 같은 놈을 기생충이라고 한단다. 그 좋은 머리를 잘 써야지 사기나 치며 살다니 너도 불쌍한 놈이구나.

이 새끼야, 하마터면 네놈의 꼼수에 넘어갈 뻔했잖아. 너 말대로 그래 전기 끊어봐라.

우라질 놈아, 세상에는 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있단다."

상대방은 조용히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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