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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19. 2023

어느 기관사의 마지막 고별인사

"승객 여러분, 저는 기관사 김ㅌㅇ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지난 13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늘 승객 여러분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오늘이 ---------"

가을로 접어든 10월 어느 날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가면서 열차 안에서 들은 어느 기관사의 고별사였다. 내가 그이의 마지막 열차를 타게 됐구나. 그래요 고생하셨어요. 헤드라이트 하나만을 의지한 채 어두운 터널을 앞만 보고 달리면 수십 명, 수백 명이 역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요. 그들은 당신을 보는 순간 "왔어" 하고 반기곤 했답니다. 당신이 나타날 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으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찾곤 했답니다. 우리는 전광판을 쳐다보곤 했지요.  전광판에 "전역을 출발했습니다"라고 하면 당신이 1-2분 안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 줬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처럼 정확 했스니까요.


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얘기지요.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 밤늦게까지 동료들과 술 마시고 놀다가 헤어지는 시간이 11시를 훌쩍 넘겼어요. 전철역으로 가면서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집에 가는 토큰을 딱 한 장 살 수 있는 돈이 전부 이더군요. 취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어 마지막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육상선수 우사인볼트에 대적할 만큼 전력질주하여 달려갔더니 마지막 열차라고 방송을 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당시에는 영업용 택시가 카드를 받아주지 않던 시대라 이 열차를 놓쳤더라면 저는 여지없이 모텔 신세를 져야만 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와이프는 나를 기다리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겠지요?  당시에 나를 기다려줬던 고마우신 기관사 분이 혹시 당신은 아닐는지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당신의 기분을 조금 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을 위로코져 할 때면 당신이 지난 13년간 달렸던 터널을 빗대어 "당신에게도 터널의 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요. 당신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었는지? 아니면 어쩌다 먹고살 곳을 찾다 보니 기관사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13년간 어둠을 뚫고 달린 당신도 이젠 지상으로 나와 큰 심호흡을 하십시오


30초 분량의 짧은 인사말은 지난 십여 년의 미운 정 고운 정이 담겨있는 압축된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 수많은 해프닝 속에는

@  문을 닫고 떠나려는 열차를 잡아 타겠다고 닫히고 있는 문 사이로 우산을 집어넣은 어느 얄미운 아저씨

@  몸은 간신히 열차를 빠져나왔지만 핸드백이 문에 걸려 그만 핸드백을 잃어버리고 발만 동동 거렸던

     어느 아름다운 숙녀의 모습,   

@  정신 나간 여자가 유모차를 잊어먹고 자기 혼자만 내리고 나서는 엉엉 울고 있는 모습

@  출근시간에 늦을세라 걸음아 나를 살려다오 허겁지검 달려와 간신히 열차를 잡아 탄 수많은 직장인

     들이 "휴,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했던 일들


우리는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속에 항상 진심이 녹아있다. 때로는 아쉬움도 담겨있다. 왜?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오늘 마지막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의 메시지에서는 아쉬움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준 승객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멋져 보였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고별사라는 것을 읊어본 적이 있었던가?


K 회사 해외영업 부문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 퇴사를 했을 때였다. 영업부문 전 직원들을 모아놓고 "떠나시면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을 ------" 해 달란다. 인사말을 하고 떠난 팀장이 없었던 터라. 뜻밖이었기에 마음의 준비도 안된 상태였다. 순간 "이럴 때는 머리로(굴려가며)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얘기하는 거야" 하고 나 자신에게 주문했다.


당시 IMF로 사회는 어수선했고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감원도 하고 희망퇴직을 받던 때라 한 푼이라도 더 손에 쥐어 보겠다고 희망퇴직을 신청했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내친김에 새로운 길을 걸어 보겠다고 사표를 낸 것이다. 책상에 앉아 회사의 운명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투영 됐을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왠지 사표를 내고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용기만은 그들이 부러워했을 것 같다. 가슴이 말한다.


"죄송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버스를 탔는데 혼자 살아 보겠다고 버스에서 내리게 됐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혼자 걷는 그 길이 여러분 보다 더 험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배로서, 옛 상사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은 버스에서 내리지 말고 버스가 뒤집힐 때까지 끝까지 타고 가십시오"

 

버스에 동승했던 그들은 훗날에 상무, 전무, 부사장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당신들은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뭐랬소?  저같이 중간에 내리지 말고 버스가 뒤집힐 때까지 타고 가라 하지 않았소?" 우리는 소주잔을 기울며 그때 그 옛날을 곱씹었다.


모든 이에게 고별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은 있을 터인데 그게 우리가 생을 마감하면서 가족과 헤어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욕심이 많은 건지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건지 모르지만 헤어질 때 "잘못해 주었던 것, 아쉬웠던 것, 남아있는 이들을 걱정하는 것" 일색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 우리는 주어진 여건하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요?

@. 슬프거나 괴로움보다는 웃는 날이 더 많지 않았나요?


오늘부터라도 긍정의 에너지로 살면서 헤어질 때는


사랑하는 이에게는 "당신을 만나 이 정도면 잘 살았지 않소?"

자식들에게는 "나는 너희들이 있어서 늘 행복했다"

주위 친지들에게는 "내가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소 “라는


고별사를 기대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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