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예전에는 "이 시간에 무슨 전화야?" 했으나 지금은 "혹시 시골에 계신 노친네들에게 안좋은 일이라도?" 불길한 예감이 섬광처럼 스친다. 나약해져 가는 부모님을 두고 머나먼 객지에 나와서 살고 있는 자식들은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에 깜짝깜짝 놀래곤 한다. 전화를 받아보니 우리 영업장에 알람이 울렸다는 보안경비 회사의 통보다. 부모님에 대한 전화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경찰을 보내서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라고 해놓고 다시금 잠자리로 돌아왔다. 알람이 일 년에 서너 번씩 울리는데 그때마다 경찰을 보내 확인했지만 번번이 별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쥐새끼가 들어왔다던가 문 틈사이로 낙엽이 들어와 날리면 moving sensor (물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장치)가 물체의 움직임을 탐지해 알람이 작동된단다. 그들은 이를 false alarm이라 한다.
30분이 지나서 다시금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false alarm 이 아니고 진짜로 도둑이 들었으니 영업장으로 급히 나와 달란다. 집에서 영업장까지의 거리는 100 킬로미터 시속 120 킬로의 속도로 달려도 1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새벽에 텅 비어있는 프리웨이를 자동차로 전력질주하여 달리면서 "여우와 소년" 이야기와 같이 별일 없기를 바랐는데 마침내 도둑님이 찾아오셨구나----.
영업장에 도착하니 경찰관 두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영업장 철문이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이 잘려있다. 도둑님이 철문을 자르고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나더러 들어가서 불을 켜고 도난당한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란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고 자동차 타이어 두 짝을 훔쳐갔다. 도둑놈은 알람이 울리니 놀란 나머지 손에 잡힌대로 타이어 두 짝을 들고 달아난 것이 아닌가 싶다. 경찰관은 사고현장을 주인장(나)에게 인계했다는 서류에 사인을 받고나서 돌아갔다.
도둑맞은 집에 쪼그리고 앉아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면서
@ 문은 언제쯤 고쳐야 하는지? 경찰 조사가 끝나기 전 까지는 일체 손대면 안 될 터인데
@ 경찰 조사는 오전 중으로 서둘러 줄 수 있는지?
내가 힐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가를 정리하느라 머리만 복잡해진다.
아침 10시쯤 정복을 차려입은 다른 경찰관이 찾아와 간밤에 사건을 조사하면서
* 보험은 가입했는지?
* 손실액이 얼마나 되는지?
* CCTV는 설치되어 있는지? 를
묻더니 CCTV에 녹화되어 있는 내용을 USB 에다 복사해 달란다. 그 경찰관은 무엇을, 어떻게 수사하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영업장을 떠났다. 처음 당한 일이라 그저 경찰이 묻는 말에 답할 뿐
@ 범인을 잡을 수 있는지?
@ 앞으로의 수사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를 묻지도 못하고 “미국에 와서 살다보니 별꼴을 당하는구먼” 하고 자탄만 할 뿐이었다.
이웃집 백인 할아버지께서 구멍이 뚫린 영업장 문을 보았는지, 경찰관이 다녀간 것이 궁금했는지 찾아와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고 묻는다. 도둑을 맞았다고 했더니 갈수록 세상이 험악해져 간다고 매우 안타까워한다. 말미에 너의 영업장에 총을 비치해 놓고 있느냐고 묻는다. 없다고 했더니. 총을 갖고 있으라고 권한다. 조금은 걱정이 된다. 오늘은 도둑님이 다녀가셨는데 앞으로 강도라도 당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3일이 지나니까 사복을 입은 경찰이 찾아왔다. 명함을 확인해보니 이번에는 형사다(prosecutor). 손에 쥐고 있는 포울더(folder)를 내 보이는데 그 안에는 10명 정도의 사진이 나열돼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네가 건네준 CCTV에 그 사람과 동일한 인물 같아 보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맞아요. 바로 그 사람입니다”
형사는 그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한다. 우리 영업장에서 2 블락 정도 떨어진 모빌 하우스 (저소득 주민이 모여 사는 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이제 미국 경찰의 업무 프로세스가 그려진다.
# 주민의 신고가 있으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는 부서
# 사건사고의 진상을 현장에 나가 파악하고서 후속조치를 취할 경찰을 배정하는 부서
# 범인을 색출, 사법조치를 취하는 부서
놀랍다. 그들은(경찰) 요 주위 인물을 다 파악하고 있으며 주민의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체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데에. 그들의 동향을 예의주시 하고 위험이 노출되어 있는 곳을 주기적으로 순찰활동을 하고 있어 보인다.
이후 10년이 다 되어도 좀도둑은 더 이상 내 주위에 얼씬 거리지는 않으나 이번에는 바로 이웃집 건물벽에다 갱들이 (gangster) 낙서를 해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옆집 백인 할아버지께서 “갈수록 세상이 험악해져 간다” 는 말이 실감난다.
나는 궁금했다.
@ 이 동내에도 갱단이 있는지 아니면 남의 동네에서 원정 나왔는지?
@ 저 건물벽에 낙서는 누가 지워야 하는지? 아마도 집주인이 아니잖나 싶다.
낙서는 한 달이 가도 지우지 않고 방치해 둬 흉물스럽다. 매일 십여 명이 우리 영업장을 들락 거리는데 손님들에게 공포감을 주지는 않을는지 괜스레 걱정이 앞서고 방치해 두는 집주인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너 명이 와서 낙서를 지우고 페인트를 덧 칠하고 있어 그들에게 다가가 당신들은 집주인이 보내서 온 사람들 이냐고 물었다. 뜻밖이었다. 그들은 시청에서 나온 사람들 이란다. 그래 범인들은 잡았냐고 물었더니 “잡았단다”.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네에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어김없이 잡아내는 우리 동네 경찰의 실력.
그리고 낙서를 방치 하는게 아니라 법인을 잡을 때까지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 그들의 증거원칙.
도시 미관을 관리하는 시(city)에서 낙서를 지우고 복원해주는 커뮤니티 책임감.
평소에 도로나 집 근처 그 어디에서 경찰을 마주치면 항상 실탄을 장전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접근해 오기 때문에 공포감과 경계심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로 하면 즉시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우리 동네를 지켜주는 그들이기에 살면서 그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매년 늦가을쯤 그들이 하고 있는 "불우 이웃돕기 캠페인" 에 빠지지 않고 오백 불씩 기부를 한다. 그러면 감사장을 만들어 액자 속에 담아 가지고 와서 손님들에게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우리 영업장에는 그들이 준 감사패와 감사장 그리고 스티커가 즐비하게 줄 서 있어 "시민의 일원으로 커뮤니티에 동참하고 동화되어 가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