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이기적인 미국인들

노숙자가 돼버린 나의 백인 친구

by 문 내열

우리 동네에서 15년 동안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해온 백인 남성 그이의 이름은 드웨인. 머리는 길어 말총머리를 하고 있고 키도 훤칠하고 한때는 많은 여자들을 유혹하고 다녔을 것으로 짐작돼는 미남형이다. 그러나 지금은 체중도 늘었고 똥배도 많이 나와 바지를 엉덩이에 겨우 걸치고 있는가 하면 걸음걸이도 끼우뚱 꺄우퉁 거리면서 시속 0.5마일 속도로 걷고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해주고 있다. 한때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귀여운 두 딸들이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하나는 오른팔에 매달리고 다른 하나는 왼팔에 매달린체 양 볼에다 뽀뽀를 해주고 저녁을 준비 중이던 아내도 부엌에서 나와 내 입술에 키스를 해 주면서 “여보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세 모녀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하고 살았던 드웨인. 딸들이 제법 자라서 중학교 다닐 적에는 숙녀답게 허그도 해주곤 했는데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딸들의 허그도 뜸해지기 시작하고 아내 또한 짜증을 내는 게 예전과는 달랐다. 마침내는 딸들이 퇴근한 아빠를 보면 “하이” 하고 인사도 않고 소가 닭 쳐다보듯 하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족들이 저녁 식탁에 모여 오손도손 얘기 꽃을 피웠던 시절이 그리운 드웨인은 퇴근 후 냉장고를 뒤져 요기가 될만한 것을 찾아 먹어야만 하는 이 집안에 불청객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드웨인은 가족들의 홀대도 감당키 어려운데 비즈니스 마저 죽을 쑤고 있어 통장에 잔고가 넉넉지 못해 종업원 봉급에 각종 청구서를 날짜에 맞춰 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물론 가족들을 위한 생활비를 갖다 준 기억도 가물 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비즈니스를 오픈하자마자 보안관이 찾아와 두툼한 노란 색깔의 봉투 하나를 건네주고 간다. 열어보니 아내가 법원에 이혼신청을 한 것이다. 집에서 매일 마주치니까 언질이라도 주련만.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정해진 날짜에 법원에 출두하여 판사님 앞에서 내가 들었던 그녀의 변은;


“판사님, 저 뚱땡이 좀 보세요. 내가 벌어온 돈으로 얼마나 잘 먹었으면 저렇게 돼지가 됐겠어요. 저 사람이 우리 집에 기생충으로 산지도 벌써 5년이 됐답니다. 이제는 내가 저 남자를 부양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같이서 잠자리를 했던 게 기억이 안 납니다. 남자 구실도 못하는 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겠습니다”


판사님이 드웨인을 향해 하고싶은 얘기가 있으면 기회를 주겠소 하니

“그녀를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그 길로 옷가지 몇 개를 챙겨 나왔으나 딱히 갈 곳이 없어 비즈니스 하면서 알고 지냈던 고객 중에 싱글로 원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분을 찾아가 잠자리를 부탁해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룸메이트가 방값을 반분하지 않으면 나가란다.


딱한 처지가 된 드웨인이 나를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하는데 마치 휴가를 계획하고 있던 터라 그렇다면 열흘간만 우리 비즈니스에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니 사업체를 운영했던 분이라 아주 깔끔하게 잘도 했다. 열흘간 일했던 임금을 계산해 주면서 나는 순간 씁쓸함과 공포감을 느꼈다. 돈도 벌어오지 못하고 몸도 망가지니 가족들로부터 헌신짝 취급을 받고 길거리로 내팽개쳐진 미국의 잔혹한 이기주의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사업에 실패한 남편이 풀이 죽어 있으면 와이프가 팔을 걷어붙이고 이제는 나라도 나서야 한다면서 일터로 나가 억척스럽게 살면서 자식들 교육 뒷바라지하고 남편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주련만. 그들에게는 과연

인내심 이라는 게 있는지?

이라는 게 있는지?

가족 이 무엇을 뜻 하는지?

오늘이 어제와 같이 항상 즐겁고 행복해야만 한단다. 그저 오늘 하루를 위해서만이 사는 그들. 금요일 저녁만 되면 식당과 샤핑몰이 북새통이다. 금요일 저녁에 가족끼리 집에서 식사하면 무슨 큰일 이라도 날듯 금요일부터는 부엌을 아예 닫아 버리고 외식이다. 한국 에서와 같이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꼴을 못 본다. 오죽했으면 이곳에 사는 히스패닉들을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식으로 산다고 비아냥 거릴까. 마국 국경과 인접해 있는 멕시코 “티와나”에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 대기업이 공장 노무자들의 급여 지급일을 금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꿨다고 한다. 급여를 받은 근로자들이 주말에 진창 나게 술을 마시고 파티를 열어 즐긴 나머지 월요일에 출근하는 근로자가 절반도 안돼어 궁여지책으로 급여 일자를 월요일로 바꿨다니 사람 사는 세상 참으로 요지경이다.


얼마 안 된 돈을 받아 쥔 드웨인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난 이후 나는 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노숙자가 샤핑 카트에 옷과 살림살이 몇가지를 싣고 우리 비즈니스로 걸어 들어와 “나를 알아보겠느냐”고 묻는다. 2년 전에 헤어졌던 드웨인이다. 세상이 너무 허무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사람 팔짜 시간문제라고 해야하나? 크게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니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고속도로 출구에 서 있으면 사람들로부터 하루에 $10-20 정도 도움을 받는단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고 자기를 버린 가족도 미워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자책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냐고 했더니 “정부에서 무료로 지원해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예전에 소지했던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다시 회복하여 반드시 일터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고속도로 출구나 도로변에 수많은 노숙자들을 지나 치면서 혹시나 드웨인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서 오늘 하루도 보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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