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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Feb 23. 2024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 (제 11화)

칠레 파타고니아를 가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는 비행기 기내식을 연상케 할 만큼 아주 적은 양으로 깔끔하게 한 상 차려준다. 셋째 날도 아침을 위해 식당을 찾았더니 모녀처럼 보이는 동양인 여성 두 분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대화를 엿들으니 한국말을 하고 있다.


"어?  한국분이시네요? 따님이 엄마 모시고 여행 오셨나 봐요?

아니요, 오늘 아침 여기서 만났어요

그래요, 저는 모녀인 줄 알았어요"


우리는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딸처럼 보였던 젊은 분은 출장차 중남미를 왔다가 파타고니아를  보고 싶어 이곳에 들렀단다. 용감하고 현명하다.  머나먼 중남미까지 출장 와서 2-3일만 시간을 더 내면 멋있는 파타고니아를 구경할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기에 왔으니 말이다.  


 마주 앉아 계신 아주머니는 미국 시애틀에 사시는데 나이가 육심은 넘어 보이신다. 역시 대단하시다.  저 나이에 혼자서 파타고니아 어드벤처를 하시다니------  어제 또레스 델 파이네 바위산까지 당일 코스로 트레킹을 하고 오셨다 한다.  젊은 사람들도 트레킹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터인데.  햇빛에 그을린 어깨살을 내 보이면서 따갑다고 하신다. 육십을 넘긴 나이에, 혼자서, 어드벤처를.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웅장한 또레스 델 파이네가 저 여인을 여기까지 불러냈구나 싶다.


두 여자분이 먼저 자리를 뜨고 나니 젊은 부부가 들어온다. 이들 또한 한국분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잠시 휴식기를 갖기 위해 일 년간 해외여행 중이라고 한다.  남편은 엔지니어 이시고 부인은 언론사에 근무하신다. 부럽다.  나는 20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행여 승진에 누락될까 봐, 자리를 빼앗길까 봐 주말도 잊은 채 머슴처럼 일에만 얽매이며 살았는데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고개가 꺄우뚱거려진다. 살면서 일 년 정도를 툭 잘라서 새로운 세상도 접해보고, 삶을 재조명해보는 것도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이미 아세아권을 섭렵하고 중남미로 건너왔다. 뜻하지 않게 아르헨티나에서 한달살이를 했다고 한다. 요즘 미국달러 대비 아르헨티나 페소 환율이 좋고 구경거리도 많아 더 머물고 싶었단다.


빙하와 마블케이브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트란쿠일로를 떠나던 날 버스 뒷좌석에 앉아 계신 분 께서 우리 일행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서는 “한국에서 오셨어요?" 하고 말을 건넸다.  두 부부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한 달 일정으로 파타고니아 여행길에 나섰는데 어제 사고로 부인이 발목을 크게 다쳐 일정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란다. 칠레로 이민 온 지는 30년 됐고, 지금은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뽀르또 몬트에 살고 있다. 독일마을을 지나 오소르노 화산 기슭에 살고 계신다.  자녀들 교육이 다 끝났기에 두 부부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파타고니아 어드벤처를 시작하신 게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부부를 만났다. 다리를 다친 부인은 비행기 편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중이고 남편은 타고 왔던 모터사이클로 가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데 일주일이 걸릴지 10일이 걸릴지 모르겠단다. 왜냐고 물으니 한국처럼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게 아니라 섬과 섬 사이를 때로는 바지선으로, 페리로 갈아타야 하기에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시계와도 같이 정확한 시간에 출. 도착을 하는 비행기와 고속전철에 익숙해 있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다. 서둘러서도 안되고 선착장에 도착하여 연결되는 배편이 없으면 숙소를 찾아서 쉬었다 가야만 한다. 그렇게 살려면 매 순간마다 자연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즐기는 것만이 생활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남편과 부인의 씩씩하고 야성미 넘치는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빨리 쾌유하시고 당신들이 그리도 기대하셨던 어드번처를 마무리하시길 기원할게요.


트란쿠일로에서 빙하를 보러 가던 날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차멀미를 하여 차가 두세 번 뭠춰서야만했다. 안내원이 잽싸게 자리를 양보하여 그녀를 조수석에 앉힌다.  몹시 시달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버지와 딸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하고 있는데 나는 그녀의 아버지의 표정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어찌 어린 딸을 데리고 이 험지를 돌아다닐까?" 의아해했다. 그런데 빙하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얘기를 해봤더니 딸과 함께 한 달 일정으로 파타고니아 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은 자기 차로 다녔기에 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빙하를 보기 위해 이 차를 탔더니 차멀미로 고생한다고 안쓰러워한다.  


아버지는 파타고니아 이곳저곳 건설현장에서 오랫동안 노동일을 하고 있는데 딸과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주고 싶어 시간을 내서 함께 여행 중 이란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이 많은 나이에 이런 어드벤처를 아버지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 소녀가 부러워진다. 꿈을 먹고사는 소녀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싶다. 나는 그 나이에 친구들과 저수지에서 목욕하며, 딱지놀이하며 세상이 그게 전부 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어린 이 소녀는 벌써 대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하나둘씩 머리와 가슴속에 담고 있다니----. 우리도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건지-----




그래도 미라도르 도로떼( Mirador Dorotea) 트레킹을 했습니다.


호텔 주인장의 추천을 받아 그리 멀지 않은 미라도르 도로떼 라는 산을 찾아 짧은 트레킹에 나섰다. 목장 소유주의 산으로 추측된다.  입장료를 지불하니 소와 말, 그리고 양들이 있는 목장을 가로질러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올라가는 길이 매우 가파르다.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는다. 두툼하게 입었던 옷을 한 겹 씩 벗어 배낭에 주어 담고 한 시간 정도 오르니 민둥산인 줄만 알았던 산에 고산지대의 고목나무들이 넘어지고 서로 기대어 기울어져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파타고니아 여행길은 어데를 가도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케 하는 예기치 못한 장면들이 나타난다. 여기에도 산 밑에는 목장, 산기슭에는 여름을 알리는 야생화, 산 중턱을 넘으면 썩어 자빠져 있는 고목 원시림의 정글이 있다.


정상에 오르니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벗어서 배낭에 주어 담았던 옷가지도 다시 꺼내 입어야만 했다.  깎아지른듯한 바위산에 모두들 놀란다.  같이 간 일행들이 밑을 내려다보기가 무서운 모양이다. 어서 내려가잔다. 걷고 땀을빼니 몸과 아음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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