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파타고니아를 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여느 도시와는 다르게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많이 하고 있는데 환전 하라는 "깜비에" 그리고 "탱고" 쇼 프로그램이다. 상가 유리창에도 쇼 티켓 판매 광고가 눈에 많이 뜨인다. 이곳이 "예술의 도시 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Teatro Colon이라는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를 찾았다. 건물 규모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고대 건축양식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116년 전에 (1908년에 open) 이런 어마무시한 건물을 지어 오페라, 발레, 뮤직 콘서트를 했으니 세계 10대 명문 오페라하우스답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로 북적 거린다. 티켓값이 일인당 20만 원 수준이라 볼 수는 있었지만 프로그램이 낯설어 실속이 없겠다 싶어 입맛만 다시고 나왔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프에르토 마데로 (Puerto Madero)에 있는 여인의 다리(Bridge of the Lady). 다리의 규모나 구조물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인증샷을 찍는 곳이다. 여인의 다리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이곳의 길 이름들이 여인의 이름이 많다고 하여 붙여준 것이다. 다리가 조그만 해협에 세워져 있는데 길거리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해협을 따라 에두아르도 마데로 (Eduardo Madero)를 걷다 보면 기중기가 서너 개 서 있는데 공사 중 이거나 배를 끌어올리기 위해 있으려니 했는데 이들은 조형물 대용이다.
낙농의 본고장 아르헨티나에 왔으니 소고기 맛은 보고 가야 했기에 맛집을 찾으니 바로 이 에두아르도 마데로 에 있었다. 얼마 전 그 식당을 지나치면서 무슨 손님이 저리도 많지? 했는데 내가 찾은 식당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식당 "Cabana Las Lias"를 찾아갔다. 식당 안에는 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커다란 고기 굽는 불판도 보인다. 아직 스테이크 맛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찾는 스테이크 하우스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 자리에 앉으니 고급레스토랑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모든 종업원들이 수트 정장 차림으로 서비스를 할 뿐만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는 매너 또한 프로페셔널 다웠다. 스테이크 맛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훌륭하다. 값도 4인분에 200달러 수준이니 미국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값이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고 나서 길을 건너니 광장 같은 넓은 공원으로 들어선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이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전화기 내비게이션을 켜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와 손에 쥐고 있는 전화기를 훔치고, 나를 밀치고서는 달아나 버린다. 일어나 그를 쫒았으나 그놈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놈을 쫓는 동안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예약, L.A. 에 돌아가면 묵을 호텔예약, 자동차 렌트 등 모든 정보가 전화기에 들어 있는데 이를 어찌할고? 걱정이 앞선다. 호텔 카운터에서 전화기와 핸드백 소매치기에 조심하라고 하던데 끝내 사달이 나곤 말았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 카드 사기를 당하였는데 여행 마지막인 아르헨티나에서 전화기 소매치기를 당했다. 남들이 여행 중에 당했던 사건사고가 그럴 수도 있구나 했는데 나에게 그것도 여행 중에 두 번이나. 여행의 지혜를 쌓는 계기가 됐다. "이번 여행을 마치면 전화기를 교체하려고 했었는데" 하면서 허망한 기분을 달래려고 애를 섰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여행을 마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난 날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하얀 눈에 산타 할아버지와 레인디어(reindeer)로 장식해야 하는데 여기는 여름 인지라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가게와 식당들은 크리스마스라고 모두 문을 닫았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첫날 들렀던 그 황당한 식당으로 다시 왔다. 주인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식사 후 종업원이 빌(bill)을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주문하지 않았던 항목에 800페소를 청구했다. 이게 무엇 이냐고 따져 물었더니 테이블에 식탁보를 깔아주고 쌔팅한 비용이란다. 배가 고픈 주인장 이던지 아니면 내가 당신들을 언제 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느냐? 둘 중에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야박하다.
식사 중에 아침 10시 출발 예정인 비행기 편을 확인했더니 오후 8시로 지연되었다. 1-2 시간도 아니고 10시간 지연. 황당할 뿐이다. 중남미 항공 편들은 늘 이렇다. 구매했던 티켓(U$800)을 포기하고 다른 항공편을 찾았더니 한 사람당 삼천불.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어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호텔에 맡겨 놓은 채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다시금 시내관광에 나섰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길거리에 이불을 덮고 쪼그려 앉아있는 홈리스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Don't cry Argentina"를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외쳐본다.
한 달간의 긴 여행이었으나 피곤하지가 않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경을 눈에 넣고 가슴에 담아서일까?.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는, 말로만 듣던 파타고니아는 "태어나 생애에 한 번쯤은 다녀와야 한다"고 권장하고 싶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계획하고, 준비하여 다녀왔던 터라 가보고 싶은 곳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귀족관광이 아니고 차로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씩 달려야 하고 때로는 배낭을 메고 산을 올라야 하는 어드벤처다. 젊음이 저 뒤편으로 훌쩍 가버리기 전에 이곳을 찾는다면 사막, 간헐천(geyser), 화산, 빙하, 설경, 폭포, 마블케이브, 스위스 풍의 목장, 원시림, 트레킹 그리고 유럽풍의 고대 건축양식을 모두 다 경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자연의 보고다.
시간이 허락지 않아 2주간 일정이라면 아타카마 사막, 프에르토 리오 트란쿠일로, 프에르토 나탈레스 3곳을 추천하고 싶다. 연인과 함께 어드벤처를 한다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해외여행하면 언어문제로 움츠리곤 하는데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는 스페니쉬를 전혀 못하지만 한 달 동안 가이드 없이 중남미 여행을 하는데에 큰 불편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전화기 번역기가 이제는 언어문제를 거뜬히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비용은 부담스러울 만큼 많이 들지는 않았다. 본인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 한다면 어느 여행이든 여행사에서 팔고있는 패키지의 절반 수준이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저는 여행 중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에도 관심이 많은지라 비용이 조금 더 지출됐다. 다녀오고 나서 노우하우를 터득하였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naeyulmoon@gmail.com으로 연락 주시면 도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