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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Apr 01. 2024

내 주위에 자가진단의 명의 들

최근 며칠간 뱃속이 매우 불편하다. 이제는 설사까지 한다.

예전에는 아침을 맛있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기도 전에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하고 물으면 곁에 있는 그녀가 웃으면서 밥알이 미처 내려가기도 전에 벌써 점심타령이냐고 핀잔을 줄 만큼 먹는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속이 불편하다고 아침을 거르고, 커피도 끊고, 하루 한 끼니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으니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식욕이 왕성의 도를 넘어 철판을 두루는 듯 야심한 밤까지 계속 먹다가 잠들곤 했던 시절에는


내가 밥맛이 떨어지면 죽는 날이요


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둘이 살고 있지만 코스코에서 사다 날린 한 달 식재료비가 $1,000 이상이다. 그런 사람이 식욕을 잃고 밥상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를 측은하게 지켜본 그녀는


배감기 인가 봐. 어서 약국에를 다녀오세요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나온 지 일 년이 됐는데 기침감기 걸릴 때마다 약국에 가서 “구룡해독탕“을 사 먹고 효과를 봤다.  이제는 구룡해독탕 홍보 전도사가 돼버린 지 오래다.  배감기라는 아내의 자가진단에 옷을 주어 입고 예전에 그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사 왔다.  한 봉지를 뜯어서 먹어 치우고


자기도 예방차원에서 하나 먹어둬


마치 보약 한통을 사서 두 부부가 나눠먹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는 2-3일 동안 먹었는데도 증세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친지들과  통화할 때면 내 배앓이를 언급하곤 한다, 그러면


언니야, 소화가 안되고 속이 매스꺼우면 위염 일지도 몰라 빨리 병원에를 가 보시라고 해


오늘도 친구와 전화 통화 하면서 말미에 남편의 배알이를 잊지 않고 꺼낸다. 그러면 친구분이


속이 매스꺼워?

배가 부글부글 하고, 소화도 안되고?

가스도 많이 나와?

그래——에, 장염 증상 비슷하다.

많이 힘드시겠다.


환자 하나를 놓고 진단을 해대는 명의들의 한마디에 감기, 위염, 장염을 넘나들고 있다. 그 가운 데서도 감기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왜냐면 그 좋다는 구룡해독탕 약효가 먹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설사를 삘삘 하면서 몸을 충내고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더니만


아무래도 병원에를 가봐야겠어

그래요. 벌써 4일째 이잖아요


동네 의원을 찾았다.  병원은 빌딩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는 규모가 꽤 크다.

십여 명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고 카운터에는 4명의 직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접수창구에 수속을 마치고 의사 선생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니


어떻게 불편하세요?

설사, 소화불량, 그리고 배가 더부룩합니다.

며칠 됐어요?

4일 됐습니다

그동안 왜 기다리셨어요?

배감기인 줄 알고 동네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었는데 차도가 없네요

배 감기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당신이 그렇게도 잘 진단하셨으면 처방까지 마무리하시지 왜 나를 찾아왔냐는 표정이다


주사를 맞혀 드리고 처방을 해드릴 터이니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나는 의사로부터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처방을 해줄 거라는 얘기 한마디 듣지 못하고 문을 닫고서 나왔다.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2번째 창구에서 부른다.  


 67,000원 입니다.


마음속으로만 우라지게 비싸네.   돈을 받고 난 여직원이


저쪽으로 가서 혈압을 체크하세요


혈압을 체크하는 기기가 보여 그 앞에서 누군가가(간호원) 와서 혈압을 체크해 주기를 기다렸다. 미국에서는 반드시 간호원이 체크해 주기 때문이다.  5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셀프체크인가 싶었다.

기계 앞에 앉아 혼자서 혈압을 체크하고 결과를 프린트하여 손에 쥐고 있었다. 누군가가 다시 불러 주기를 기다렸다. 이 또한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또 5분이 지나도 부르지를 않는다. 2번 창구로 다가가 프린트한 종이를 줬더니 밭으면서


화장실을 다녀오세요

왜요? (대답이 없다. 주사 맞는데 1시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그러시면 저기에서 기다리세요 (왜? 무엇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지 보충 설명이 없다.)


간호원이 내게 오더니만 신원확인도 않고 내가 누구인지 어찌 그리도 잘들 파악하고 있는지 따라오라면서 앞서간다. 침대가 3개 놓여있는 방이다. 이제야 내가 영양제 주사를 맞는구나 감이 잡힌다. 방에는 수액걸대가 있고 간호원은 손에 수액을 들고 있다. 주사기를 꽂고 나가면서 필요하면 이 벨을 누르세요 한다


주사 맞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한 시간 후에 간호원이 들어와 주사기를 빼고서는 주삿바늘 부위에 밴디지를 붙여 주면서 5분 정도 누르고 있으라면서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다음에 나는 어떻게 하지?

밖으로 나가서 기다려?

아니면 간호원이 돌아올 때까지 이 방에서 기다려?

왜 이 병원에는 대화가 없지?


방 안에서 몇 분 간 주춤거리다 멋쩍어 밖으로 나와 다시금 기다렸다. 행여 나를 찾으려나 하고 창구에 여직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했으나 모두들 바빠 보인다. 서서히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번엔 4번 창구로 다가가


제 이름은 문 ㄴㅇ입니다. 조금 전에 주사를 맞았던 환자인데요. 더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면 집에 가도 되나요?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요?

문 ㄴㅇ입니다

집으로 가시라고 했잖아요


도대체 이들은 어떤 환자와 대화를 했기에 생뚱맞은 대답을 할까?

아니면

내 입으로 직접 얘기 안 해도 다 끝났다는 정도는 눈치껏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


다른 분들은 이래라저래라 하고 손에 쥐어주지 않아도 질척 거리지 않고 알아서 척척 움직 인다면 정녕 나는 바보스러울지도 몰라. 아픈 것도 고통스러운데 대화도 제대로 안되니 괜스레 서럽기까지 하다


의사 선생님 뵐 때 처방전을 주시겠다고 하시던데——

드렸잖아요

못 받았는데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사 맞고 나온 방을 다녀온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처방전을 프린트해 주면서


여기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속으로) 글쎄요, 제가 안녕히 갈 수 있을는지요? 그렇지 않아도 속이 불편한데 당신네들이 속을 더 불편하게 긁어놨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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