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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Dec 09. 2021

시바난다 요가 2

홀로 물구나무를 서다

"선생님 염색하셨네요? 더 어려 보여요"

"레드와 오렌지 섞어서 했는데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예뻐요 선생님"


요가 수업은 10시 시작인데 시계를 보니 10시 5분이었다. 늦었다 하며 부랴부랴 요가원에 뛰어갔는데 선생님은 태연히 데스크에 앉아계셨다. 머리색이 바뀐 걸 알아채고 염색하셨냐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은 회원분들이 아직 아무도 안 오셨다며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고 있어서 다들 그러시나 하며 걱정을 하셨다. 늦은 줄 알았는데 나밖에 안 왔겠다 선생님과 나는 그날 아침부터 스몰 톡을 이어나갔다.


선생님은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엄청나게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지고 있으며 20대 후반의 여성처럼 보인다. 나는 당연히 미스인 줄 알고 선생님 아직 결혼 안 하셨지요 물었는데 아이가 둘이나 있다 했다. 거기다 선생님이 나보다 한 살 밖에 어리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아이들이 몇 살인데요? 아홉 살 여섯 살 아이 둘 있어요.    


아니 선생님! 이건 반칙 아닌가. 정말 어려 보였다. 맑은 눈동자와 풍성한 머리카락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갔다. 선생님 저도 여덟 살 여섯 살 아이 둘이 있어요. 우리는 갑자기 동지애를 느끼며 웃었고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 15분이 됐는데도 요가원에는 나랑 선생님 둘밖에 없었다. 동지애를 느꼈다가 갑자기 뻘쭘해졌다. 선생님 오늘 시바난다 요가하는 날이잖아요. 저 시바난다 요가는 아직도 무서운데 저 혼자 수업 들으면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특히 물구나무서기요.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다독였고 결국 수업은 둘만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명상을 한 후 본격적으로 몸 풀기 동작에 들어갔다. 가벼운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런지와 다운 독 자세 등을 반복했다. 등과 목 언저리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계속 나 혼자 물구나무서란 말이냐 너무 싫다'를 반복하며 괜히 앞에 있는 시계를 힐끔힐끔 보았다. 시작한 지 20분쯤 지났을까. 다른 회원 분이 들어왔다. 꺄악 이렇게 반가울 수가. 선생님이 내 자세만 집중적으로 봐주면 괜히 주눅이 든다. 왜? 난 십 년 만에 다시 요가를 시작하는 쪼랩이니까. 잘하면 자신감 뿜 뿜 하겠지만 어려운 동작은 비틀거리기도 하고 힘들어서 쇳소리가 절로 나오는 초보자니 어쩔 수 없다. 10시 35분이 됐다.


"자 여러분 매트를 들고 벽 쪽으로 가주세요. 물구나무서겠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시바난다 요가 수업을 들으며 몇 번의 물구나무를 서보았지만 죽어도 혼자는 안됐다. 아무리 발을 허공으로 뻥뻥 차도 절대 두 다리가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 올라가 주지 않았다. 힘차게 다리를 차서 위로 쭉 올라가야 하는데 배(코어) 힘과 팔뚝 힘이 부족한 나머지 내려오면서 무릎을 땅에 찧은 적도 있었다. 정말 너무 아팠다. 그날은 나와 다른 회원 둘 뿐이라 뭔가 더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오래된 회원보다 당연히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를 집중해서 봐주셨다. 선생님은 오늘은 다리 한쪽을 절대 잡아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홀로 몇 번의 연습이 계속되었고 선생님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현주님 정말 될 거 같아요. 이제 거의 다 됐어요 다시 한번 해보세요! 뻥!!"


선생님의 격한 응원을 받아서일까 순간 희한하게 다리가 가벼워졌다. 휙. 전면 거울로 내 두 다리가 스스로 올라간 게 보였다. 완벽한 물구나무 자세였다.


"현주님!! 축하해요! 와 너무 잘했어요 거 봐요 다 되잖아요!"

"으악 선생님 저 진짜 혼자 한 거 맞아요? 얻어걸린 거 같아!"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 몸뚱이를 삼각형 구도로 벌어진 두 팔과 머리로 받치는 느낌이란. 중력을 거스르는데 몸이 희한하게 가볍다. 중심이 딱 잡힌 느낌이다. 땀은 거꾸로 매트 위로 뚝뚝 떨어지는데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고등학교 때 무서워서 높은 뜀틀도 못 넘었던 내가 혼자 물구나무를 선 역사적인 날이었다. 거울로 비친 내 모습에 취했다. 거꾸로 선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갑자기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더니 본인 핸드폰을 들고 와 연신 내 옆에서 그 모습을 찰칵찰칵 찍어주셨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제자의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나보다 더 격앙된 목소리였다. 현주님 자세 너무 좋은데요?(찰칵찰칵) 벽에서 발을 떼 볼 수 있겠어요? 될 거 같아요. 나는 용기를 냈고 벽에서 발을 천천히 뗐다. 돌 무렵 아이들이 처음 발을 내딛으며 걸을 때 이런 기분일까. 잠시였지만 나는 벽에서 발까지 떼고 오롯이 물구나무를 섰다. 나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고 감격스러웠다. 1분 정도 지났을까. 숨이 안 쉬어질 거 같은 고통이 느껴져 내려왔고 그 이후에 물구나무도 혼자 휙 서게 되었다.


한번 성공하고 나니 몸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남편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애들을 다 재우고 집에서 매트를 깔고 물구나무를 섰다. 어제의 나는 없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다가도 사진을 올리니 친구들은 이효리 같다며 신기해했다. 나 또한 이효리처럼 오랫동안 요가 수련을 한 사람만 되는 동작인 줄 알았다. 달리기도 잘 못하고 뜀틀도 무서워서 못 넘는(유일하게 수영만 좋아한다) 내가 물구나무를 섰다는 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물구나무를 설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물구나무를 한번 서보고 싶다면, 중력을 거스르는 그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도전해보라 말하고 싶다. 이 세상 최고 겁쟁이인 나도 물구나무를 섰으니 그대들은 나보다 더 완벽히 설 수 있을 것이다. 곧고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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