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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ug 14. 2024

새로운 자극이 된 인도의 예술

뭄바이 갤러리 투어

인도에 온지 일년 정도 되었을 때 지인에게 영국인 미술 선생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집에서 소규모로 화실을 운영하는데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해서 오랜만에 다시 취미 미술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한동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살다 보니 그림을 그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기회가 생겨 작아졌던 열의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


화실에 오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인도 여성분들이었는데 다들 어찌나 창의적이고 그림에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지 감탄이 나왔다. 갈 때마다 모두가 다 다른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추상화를, 누군가는 힌두의 신을 또 다른 사람들은 인도 축제 풍경, 바위들, 동물, 초상화 등등 다양한 주제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구현해 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붓도 없이 팔레트 나이프로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 위에 북북 칠해가며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고 종이를 계속 뜯어 붙여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대부분 딥한 컬러를 잘 썼는데 그 안에 예상치 못한 화려한 컬러를 거침없이 얹어가는 과정을 볼 때면 이게 살아온 문화의 차이인가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나의 실력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했고 이곳에서 매주 그림을 그리다 보니 칭찬 폭격기인 선생님과 그림 동료들 덕에 용기를 얻었는지 그동안 해본 적 없는 스타일을 마구 표현해 보고 싶다는 갈망이 활활 피어 올랐다. 하지만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법. 인도에 와서 전시라곤 가뭄에 콩 나듯 봤는데 예술의 도시인 뭄바이에 가는 김에 현대 인도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배우면 좋겠다 싶어 갤러리 투어를 하기로 결심했다.


찾아보니 뭄바이에는 갤러리들이 꽤 많았는데 여행 동선에 맞춰 10군데 정도 계획을 했고 그중 8군데를 가보게 되었다. 그 안에서 가장 개인적인 취향에 맞고 인상에 남은 전시를 하고 있던 갤러리 두 곳을 뽑자면 제한기르 아트 갤러리(Jehangir Art Gallery)와 삭시 갤러리(Sakshi Gallery)였다.


제한기르 아트 갤러리는 1952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갤러리인데 뭄바이에서 로컬 작가들의 현대작품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고 규모도 큰 편이다. 내가 방문한 날은 마침 힌두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우가디’라고 하는 홀리데이였는데 좋은 날이어서 그런가 개인 및 단체전들이 동시에 각 관마다 오픈이 되어 작가들 손님들로 엄청 북적거렸다. 그래도 놓치는 관 없이 다 둘러보기 위해 차근차근 감상했는데 전통 인도 회화부터 모던한 추상화까지 다채로운 전시들이 이어져 발걸음이 지루해질 틈이 없었다. 그 가운데 나의 눈길을 가장 끌었던 것은 현대화된 인도 전통 회화였다.


Albert hall museum, Metropolitan


인도의 전통회화는 박물관에 한 번 가보거나 사진으로만 봐도 그 도드라지는 특징을 알 수 있다. 대게 힌두 신들에 관련된 이야기, 신성시되는 소에 대한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평면적으로 원근감 없이 금박을 붙여 그린 것들이 특징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영리한 현대 젊은 작가들은 전통회화를 재해석해서 더 창의적의고 컬러풀하게 그려내어 그 생각을 완전히 엎어버렸다.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입힌 주제들에 원색들을 과감하게 사용했고 섬세하게 금박을 입혀 그림을 더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 디테일 묘사는 또 엄청 정교했다. 이 독특한 방식은 낯설었지만 강력하게 다가왔다.

(사진을 찍지 못해 올릴 수가 없는 게 너무 아쉽다)


사실 이런 작품들이 전시의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놀라웠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민화 같은 느낌이겠다 싶었는데 얼마나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 전통을 재해석해서 이어가고 있을까 우려가 되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전통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인도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또 인도의 문화를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온 가족이 매일 집에서 신에게 기도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힌두의 신들을 위한 축제가 온 나라 안에서 이루어질 정도이니 이들에게는 옛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삶 속에 녹아있는 자연스러운 예술이구나 싶었다.


여행 셋째 날 방문한 곳은 콜라바에 위치한 삭시 갤러리라는 곳이다. 인도의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미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여 아트 바젤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유명한 갤러리들 중 하나다. 이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는 로샨 샤브리아(Roshan Chhabria) 작가의 립스틱 스토리즈(Lipstic Stories)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갤러리의 규모는 제한기르의 한 관 정도 되는 사이즈의 소규모였는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 사람들이 몇 명 없어서 편하게 감상하고 작품들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이 인도 작가는 전형적인 인도의 중산층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느낀 딜레마들을 일러스트 같은 그림들과 짤막한 단어와 문장들을 함께 넣어 풀어냈는데 작품들이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본 인상적인 전시였다.



한 작품을 예시로 들자면 모던한 옷차림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에게 어떤 립스틱 컬러가 어울릴지 최근에 받은 네일 페인팅은 어떤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반면 티비 뉴스 화면 같아 보이는 프레임 안에는 인도 전통복인 사리를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며 오피스에서 어떻게 이미지를 만드는가에 대한 코칭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와 전통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었는데 표현 방식이 참 흥미로웠다.


작가는 다다이즘(세계 1차 대전에 일어나 반정부, 반전통, 반예술을 표방한 예술 사조)과 팝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모든 작품들에서 인도 사회가 가진 전통적 고정관념, 소비주의, 과도한 교육열 등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림들만 봐도 내가 살던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통쾌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 들어서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달까.


뭄바이의 갤러리들을 돌아보고 내 마음속엔 인도의 예술이라는 새로운 챕터가 생겼다. 그리고 의구심이 들었다. 나의 미술적 미적 관점이 너무 서양의 것에 맞춰져 있진 않나 하는. 아름다움과 잘 그렸다는 너무나도 주관적인 판단인데 나의 의견보단 타인의 말에 많이 이끌렸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내 인생도 그래왔지 않을까 하는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인도에 있는 동안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게 뭘까 성찰하며 뭐든 거침없이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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