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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ug 16. 2024

뭄바이에 가면 번 마스카와 이라니 짜이 한잔

심플할수록 중독적이다.

인도에는 간식들의 종류가 참 많다. 그중 뭄바이에서 유래된 것들이 꽤 많은데 지난번에 소개한 바다빠브에 이어 이번에 번 마스카(Bun Maska)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번 마스카는 햄버거빵 같은 번을 반으로 갈라 그 사이에 버터를 바른 아주 심플한 빵이다. 대부분 인도의 간식하면 굉장히 달거나 튀겼거나 스파이스가 들어간 것들이 많은데 새삼 왜 이런 슴슴한 빵이 국민간식으로 자리를 잡은 건지 궁금해졌다. 유래를 찾아보니 영국 문화의 영향으로 퍼졌다는 썰이 가장 유력한 것 같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힌디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식재료에 대한 단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때 내 힌디 선생님은 빵을 더블 로티라고 부른다고 알려줬었다. 그래서 나는 “로티는 인도에서 식사 때 먹는 얇고 하얀 난 같은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봤더니 “나도 왜 빵을 더블 로티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원래 인도에는 빵이 없었는데 영국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빵과 버터 같은 외국 식문화가 들어와서 그냥 영어 그대로 브레드라고 부르거나 더블 로티라고 불러.”라고 설명해 줬다.


뭄바이의 번 마스카 맛집을 몇 군데 검색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사진이 하나 있었다. 시대와 동떨어지는 느낌의 이 하늘색 단층 건물은 마치 놀이공원 안에 일부러 만든 기념품 샵같이 귀여운 외관이었는데 요즘 시대에도 도시 한복판에 이런 건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간판엔 붉은 글씨로 야즈다니 레스토랑 & 베이커리 (Yazdani Restaurant & Bakery) 라고 쓰여 있다. 1953년에 오픈해 4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이곳은 지금은 빵 몇 가지만 파는 베이커리고 번 마스카와 마와 케잌 맛집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래 결심했어! 여기로 가자!”



우리는 계획한 대로 근처 갤러리를 가기 전 잠시 쉬어가는 타임으로 야즈다니 베이커리를 들르기로 했다. 이곳에 가기 위해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조금만 걸어가니 주변 네모난 빌딩 둘 사이 유난히 빈티지한 단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보자마자 영화 스튜어트 리틀에 나오는 집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가보니 ‘No.1 번 마스카’, ‘마와 케이크 첫 입에 반하다’ (Love at first bite)라고 쓰여있는 입간판 두 개가 손님들을 웰커밍하고 있었다.


리뷰를 통해 테이크아웃과 현금 지불만 가능하단 걸 보고 와서 현금을 준비해 바로 번 마스카와 마와케잌을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주문을 하니 이곳의 주인 같아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느린 움직임으로 빵을 갈라 버터를 바르고 종이에 싸서 마와 케잌과 함께 주시고 중년의 남성분께서 계산을 해주셨다. 투박한 종이에 싸진 빵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매일 빵을 구워 팔아온 한결같은 정성에 이런 감정이 든 것인지 이젠 그분들의 나이 또한 이곳의 세월과 함께 훌쩍 지나와버렸구나 하는 연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술 작품들을 많이 보고 돌아다녀서 그런가 마음이 센치해지는 순간이었다.



건네받은 빵을 바로 가게 앞에서 남편과 한입씩 먹어봤는데 소박함이 느껴지는 슴슴한 노포의 맛이다. 맛을 묘사하자면 빅 사이즈 모닝빵에 버터 바른 맛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심플해서 “이게 왜 유명한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근데 한입 먹고 두입 먹고 큰 한 조각을 다 먹으니 계속 입에서 당긴다. 뭔가 질리지 않는 맛이라 계속 먹게 되는 중독적인 느낌이이랄까. 뻥튀기처럼 맘 놓고 먹다가 바닥을 봐야 끝나게 될 것 같은 위험한 맛이었다. 같이 주문한 마와케잌은 아주 촉촉한 바닐라 파운드케잌 같은 맛에 가까웠고 조금 더 익숙한 맛이었다.  


슴슴한 빵을 먹으니 달달한 이라니 짜이(인도의 밀크티) 한 잔이 확 당겼다. 한국인이라면 빵 하면 척하고 아메리카노가 생각 나야 하는데 나도 인도화 되어가나 보다 싶었다. 베이커리에서는 짜이를 팔지 않아 가게 주인에게 짜이 왈라(상점)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는데 카운터 바로 앞에서 번 마스카를 먹고 있던 다른 현지인 손님이 이 길의 끝까지 가면 파는 곳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가 알려준 방향대로 걸어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 같은 골목 끝에 있는 짜이 가게를 발견했다. 가서 목 한번 가다듬고 나의 어쭙잖은 힌디를 또한 번 시전해 보았다. “도 짜이 짜히예 (짜이 두 잔 주세요.), 키트나 후아? (다 얼마예요?)” 했더니 상점 주인이 놀라면서 활짝 웃는다. 이 리액션 때문에 더 힌디를 쓰게 되었다. 그는 “40”이라고 힌디로 말했다. 숫자는 1부터 10까지 밖에 셀 줄 모르는데 순간 ‘헛!’ 하고 당황했다. 난 다시 영어로 “미안해요 난 1부터 10까지 밖에 몰라요”라며 말하고 배시시 웃었다. 그랬더니 그는 영어로 “포티!”라고 말하며 같이 웃었다. 유쾌하게 대화를 나눈 뒤 40루피를 건네고 따끈따근한 짜이 두 잔을 받았다.


바로 전에 샀던 빵들과 짜이를 같이 먹는데 이 은은한 조합에 미소가 지어진다. “역시 이 맛이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먹었던 이라니 짜이


이라니 짜이는 우리가 흔히 먹는 밀크티를 향신료와 함께 팔팔 끓여 더 조려서 진하게 만든 것인데 특유의 카다멈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그리고 어딜 가나 짜이는 윗면에 계속 우유막이 생길 정도로 뜨거운 온도로 작은 잔에 서브되는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처음엔 멋모르고 그냥 홀짝 한 모금 마셨다가 뜨거운 짜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걸 온전히 느끼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안타까운 추억이 있는데 그 이후론 아주 조금씩 후후 불어서 먹는다.


인도 사람들은 이 달달한 짜이를 먹을 때 부드러운 쿠키나 베이커리류를 함께 곁들여 먹는다. 짜이에 이미 단맛이 있어서 심플한 스낵 류들이 아주 잘 어울린다. 그리고 짜이를 마실 때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이 쿠키나 빵을 짜이에 푹 찍어 먹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맛도 매력적이어서 우리도 빵의 일부는 이렇게 먹었다.


나중에 알고 난 사실인데 야즈다니는 이라니 베이커리라고 했다. 뭄바이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 식당이나 카페 이름에 이라니(Irani) 혹은 파르시(Parsi)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란에서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혹은 더 나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인도로 이민을 온 이란인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이 이란의 음식 문화를 가져와 팔기 시작한 게 유래가 된 것이다. 이라니 짜이도 이 문화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조금 알고 나니 내가 사는 지역에도 이라니 문화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뭄바이에 갔다 온 이후로도 카페나 식당에 갈 때 번 마스카를 몇 번 시켜보았다. 대게 따뜻한 상태로 서브되어 빵이 더 부드럽게 느껴졌고 버터에도 약간의 설탕을 넣었는지 은은한 단 맛이 올라와 커피나 차와 함께 디저트로 먹기 좋았다. 이렇게 먹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영국에서 먹었던 핫 크로스 번이 생각이 났는데 아마 이 번이 유래가 되어 변형되지 않았을까 하며 추측을 해보았다.


뭐가 됐든 빵과 버터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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