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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ug 12. 2024

인도의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 마스크

Masque

과장 조금 보태 먹는 낙이 가장 큰 푸디이다 보니 어느 나라를 가나 욕심을 부려 그 도시의 스트릿 푸드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경험해 보려 하는 편이다. 그 짧은 여행 기간 동안 거기에 있는 모든 맛난 음식들을 다 섭렵해 보고야 말겠다는 거대한 욕심이 늘 앞서서인 것 같다.


굳이 많고 많은 레스토랑들 중에 값비싼 파인다이닝을 하나 정도 끼워가는 이유는 그 도시의 미식들로 누릴 수 있는 창의적인 경험의 최고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으로 파인다이닝은 오감만족 예술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플레이팅은 미술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각 메뉴들이 나올 때마다 새롭게 느낄 수 있는 향들은 설렘을 준다. 코스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느껴지는 식감과 맛들은 긍정적인 의미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좋은 레스토랑으로 갈수록 엄청난 고민들과 스킬들이 함축되어 예측불가한 요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세 시간의 코스는 한 편의 공연을 즐기는 것 같다.


뭄바이도 미식으로 유명한 도시라 해서 이번 여행에서는 항상 먹는 인도 음식들 말고 뭔가 색다른 것들을 먹어보기로 했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싶어 파인다이닝을 검색했는데 인도에는 미슐랭이 없었다. 하지만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은 있었다. 그것도 50위 안에 들어가는! 그곳이 바로 마스크(Masque)이다. 인디안 컨템포러리를 선보이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2023-24 2년 연속으로 아시아 베스트 50 순위에 들고 있다. 델리에도 다른 한곳이 있는데 거기보다 순위가 높으니 ‘인도 최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란 건가?’ 싶었다. ‘그렇다면 또 확인을 하러 가봐야 하지 않겠어?’ 하며 들뜬 마음으로 예약을 하기로 했다.


어느 나라를 가나 유명한 레스토랑들은 예약이 일찍부터 마감돼서 실패한 적이 꽤 있는데 여기도 2주 전쯤에 디너 예약을 요청하려니 걱정이 앞섰다. 간절한 마음으로 예약 문자를 보냈는데 다행히 날짜를 하루 조정하는 조건으로 확정을 받을 수 있었다. 좀만 더 늦었으면 예약을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휴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편은 “안되면 다른데 가면 되지!” 유난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예약 당일 저녁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기 전 드레스 코드를 맞추기 위해 남편은 미리 챙겨온 셔츠와 슬렉스를, 난 뭄바이에서 새로 산 드레스로 갈아입고 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그런데 택시가 도착한 곳은 레스토랑 앞이 아니라 으슥하고 조명도 거의 없는 비포장도로의 주택가였다. 순간 무서워서 오만가지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 생기면 힐 벗고 냅다 달려야겠다’ 생각하며 창밖의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는 택시 기사에게 “여기는 레스토랑이 아니잖냐!” 했더니 여기 도로가 공사 중이라 더 이상 못 들어가게 막아놔서 내려야 한다고 했다. 예약 시간은 다 됐는데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하나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내려서 상황 파악을 하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의 밤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내려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 한 명이 다가오더니 마스크에 온 거냐고 물어봤다. 그는 예약자명을 확인하더니 바로 우리를 레스토랑 로고가 쓰여있는 카트에 태웠다. 십년감수할 뻔했다.


카트를 타고 코너를 한 번 꺾어서 가더니 금방 마스크의 로고가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직원들의 웰커밍을 받은 뒤 2층 좌석으로 안내를 받았다. 저녁 첫 타임으로 예약해서 갔더니 손님이 한두 테이블 정도만 차있었는데 곧 만석이 되었다.



담당 서버가 왔는데 드링크 메뉴만 주고 코스는 베지인지 논베지인지만 고르면 된다고 했다. 보통은 그날 코스에 무슨 메뉴들이 나오는지 리스트를 먼저 주는데, 여기는 다음 메뉴가 뭐가 나올지 기대하게 만들기 위해 식사를 다 마치면 그날의 코스 리스트를 준다고 했다. ‘신박하네.’ 하고 드링크를 주문하려고 봤는데 특이하게 이곳은 칵테일 페어링 메뉴가 있었다. 궁금하긴 했지만 칵테일보단 시원하게 칠링된 화이트와인이 더 당겨서 평소 마셔보고 싶던 인도 와이너리 프라텔리(Fratelli )의 제이눈(J’noon) 화이트를 시켰다.


오크, 바닐라, 열대과일 향이 찰랑거리는 와인을 한잔 하고 있으니 첫 번째 에피타이저 요리가 서브되었다. 딸기와 수수를 활용해 그 지역의 로컬 레시피를 살렸다는데 맛보단 크런치한 식감이 독특한 요리였다. 무난하다 싶었는데 두 번째 메뉴 코코넛 스튜와 오리 플로스(고기를 오래 볶아 수분을 제거한 뒤 실처럼 결결이 찢는 요리)가 나왔다. 스튜를 한 입 머금으니 부드러운 코코넛크림 향이 코에 맴돌고 은은한 달콤함이 밀려왔다. 동시에 향신료가 들어가 매콤 짭짤한 오리 플로스를 함께 먹었는데 이 기막히고 이국적인 조화가 요리왕 비룡의 미미(美味)를 떠올리게 했다.



이때부터 감동의 연속이었다. 타마린드 소스로 달달하게 조린 포크 바비큐, 국수처럼 채쳐 나온 산뜻한 오징어와 구스베리 요리는 입맛을 한층 끌어올렸고 와인 소스를 올린 파라(Fara 쌀가루를 반죽해 만든 인도 음식)와 머드 크랩 요리는 인도의 파스타 같다며 둘 다 엄지척했다. 식사 중간에 한번 입 클렌징을 위한 그린 망고 소르베를 맛보기 위해 잠시 직원의 안내를 받고 키친으로 내려갔다. 정갈한 키친은 10가지 코스를 제시간에 내기 위해 엄청 분주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평화롭게 눈앞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소르베를 먹었는데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시 자리로 올라와 마지막 메인으로 탈리(인도의 한 쟁반 정식) 형식으로 나온 탄두리(항아리식 화덕) 소프트쉘 게와 커리들을 흑마늘 풀라오와 함께 먹었는데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계속 먹게 되는 중독적인 맛이었다. 밥과 커리의 만남은 늘 그러한 것 같다. 이후로 세 차례에 걸쳐 디저트들 서브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정말 완벽했다.



결론적으로 마스크는 여태까지 갔었던 인도의 레스토랑들 통틀어서 제일 흥미롭고 기억에 남는 곳이다. 여긴 정말 못 갔으면 후회가 아주 막심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로컬 재료와 레시피를 잘 활용해 창의적인 요리를 내는 곳을 선호하는데 마스크는 너무 훌륭했다. 그리고 여기는 파인다이닝 치고는! 가성비가 최고다. 아시아 50 안에 들어간 우리나라 레스토랑 4곳 중 3곳의 디너 가격이 인당 30만원 대인데 여긴 무려 10코스 메뉴가 세금을 합쳐 인당 10만원 선이다. 인도라서 가능한 가격이기도 하지만 ‘여기보다 비싼 레스토랑들도 이 정도는 아닌데 이 가격에 어떻게 여길 유지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여러모로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레스토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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