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통 K. Rustoms & Co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강렬했던 한낮의 기운이 꺾이는 오후 5시즈음 우리는 뭄바이 서쪽의 해안가를 따라 길게 드리워진 마린 드라이브를 걷기로 했다. 하지만 낮에 땀 빼면서 열심히 걸어 다녔더니 둘 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난 딱 이 시점에 남편에게 “여기 근처에 아이스크림 집 알아놨는데 지금 갈까?”라고 제안했고 아이스크림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그의 눈은 반짝 빛났다. 질질 끌려가던 발들이 다시 힘을 얻어 아이스크림 맛집 케이 루스텀스 앤코 (K. Rustoms & Co)로 향했다.
1953년부터 무려 71년 동안 운영해왔다는 이곳은 옛날 스타일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파는 곳으로 유명했다. 구글 리뷰만 1만 2천 개가 넘는데 리뷰를 읽어보면 호불호가 엄청 갈리는 것 같았다.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 치고는 허름한 노포 느낌 물씬 났는데 이 부조화가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직접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졌다.
구글맵을 따라가다 보니 제대로 된 간판도 없이 문에 붙인 알록달록한 포스터들이 가게의 이름과 메뉴들을 명시하고 있었다. 활짝 열린 문들 사이로 일자형 냉장고를 옆으로 엎어놓은 것 같은 사이즈의 대형 냉동고들이 두어대 보이고 유리문들 사이로 손바닥만한 네모 반듯한 아이스크림들이 책장 속 책들처럼 차곡차곡 옆으로 쌓여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하교 시간인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단지 어른들의 추억 속 맛집이 아니라 대를 이어가는 맛집이구나 싶었다. 우리도 주문하려고 메뉴를 봤는데 종류만 수십 가지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가장 안전해 보이는 망고 맛부터 하나 추가하고 그다음엔 도전 메뉴로 빤(Paan, 구장나무 잎 안에 향신료를 넣어 싸먹는 인도 전통 디저트) 그리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조합인 오렌지 초콜릿 맛이 있길래 세 개를 주문했다.
직원분이 커다란 냉동고 안에서 유산지 같은 종이로 감싼 직사각형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세게 꺼내 종이를 벗기더니 바로 양옆으로 웨하스같이 생긴 얇고 크리스피한 크래커를 착착 붙여 건네주셨다. 한 손 가득 예쁜 색색깔의 아이스크림들을 받고 보니 상상되는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참 오래 추억하고 싶은 소박하고 정감 있는 모양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나서 얼른 한입씩 베어 먹었다. 근데 예상을 빗나가는 맛이었다. 사진만 봤었을 때는 와! 엄청 맛있어 보여 이런 느낌보다는 슈퍼에서 흔히 파는 원재료 일 프로 첨가된 그런 아는 맛이지 않을까 추측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슈퍼 아이스크림 환장하고 먹는 사람임) 막상 먹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신선한 원물의 맛이 훨씬 더 잘 살아있고 진한 크림의 맛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맛이었다.
둘 다 “음~ 생각보다 맛있는데?”라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는데 받자마자 거의 (길게 잡아) 5분 컷으로 아이스크림 세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원래의 계획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코앞에 있는 마린 드라이브에 가서 유유자적 산책하며 음미하는 게 목표였는데 역시나 본능을 이기지 못한 먹보 부부는 실패했다. 하나 핑계를 대자면 인도의 대부분의 아이스크림들은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식감이라 빨리 녹는 편이다. 날까지 더우니 받은 지 얼마 안된 애들이 녹기 시작해 벌써 몇 줄기가 흐르는 걸 보니 마음이 초조해졌고 한국에서 온 아이스크림 킬러 둘은 현장에서 이 셋을 말 그대로 조졌다.
산책 전 급속 당 충전 완료한 우리는 만족스럽게 마린 드라이브로 향했다. 2,3분 정도 걸었더니 탁 트인 아라비아해가 나타났다. “우와! 바다다!” 바다는 왜 볼 때마다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 마음을 아는지 끝없이 펼쳐진 바다 전경은 뭄바이의 스카이라인들과 어우러져 근사한 여름날의 저녁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평화롭게 방파제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주전부리를 팔고 있는 상인들도 이 풍경 속 그림이 된다. ‘그래, 이거지! 내가 해안가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 역시 오길 잘했다.‘
참 달콤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