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큼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곧 긴 연휴가 시작된다는 것, 북적북적 사람들과 음식 냄새 가득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어린 날의 나에게 추석이 다가온다는 것은 반갑고 설레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이 가을과 맞물리는 시기, 길가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고, 어른들은 “명절이 코 앞이라”라는 말을 대화의 말미에 덧붙였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왠지 모를 분주함으로 추석을 맞이하는 들뜬 기분을, 생생하지는 않지만 아련하게, 나는 기억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백화점에 갔다. 엄마 아빠는 두 딸들에게 깨끗하고 단정한 원피스를 주로 사 입혔다. 그 새 옷이 좋아서, 아직은 긴 팔을 입기엔 날이 더운데도 어린 나는 굳이 새 옷을 고집하며 늦여름에 가을 옷을 먼저 입곤 했다. 겨드랑이에 찬 끈적한 땀을 버텨냈던 아홉열 살 무렵의 나를 떠올리면, 한 겨울에 농구공이 그려진 민소매 티셔츠를 입겠다고 우기는 나의 아들을 이해해 줄 수 있다. 좋으니까, 참을만 하니까, 하는 이상한 고집을 나도 부려봤으니 말이다.
친가는 조금 멀고, 외가에 가까이 살던 우리 식구는 주로 외갓집에서 추석 준비를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라 늘 바쁘셨고, 우리는 틈만 나면 외갓집에 가서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밤이면 나와 언니는 대단한 명절 일손이 되는 것마냥 외갓집에 가서 이모들 틈에서 잠을 잤다.
잠깐의 틈을 타, 내 외가 식구들을 소개해보자면, 2남 4녀 중 장녀인 엄마를 제외한 나의 이모들 모두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어떤 이모의 품에 안겨도 - 약간 어지럽고 어른스러운, 나중에 알고 보니 알코올 솜에서 풍기는 - 짙은 병원 냄새가 났다. 그녀들의 품 속에서 자는 것이 너무 좋아서, 언니와 나는 밤 근무가 아니어서 집에 남은 이모의 품 속을 독차지하기 위해 많이도 다퉜다. 이모들은 마음씨가 착하고, 포근하고, 언제나 친절했다.
그중 막내 이모는, 각종 잔심부름을 모두 맡았는데 명절 아침에는 떡방앗간에 가는 일을 담당했다. 방앗간에서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나는, 눈이 시리도록 졸린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꼭 막내 이모를 따라 방앗간에 갔다.
커다란 굉음을 내며 뱅뱅 도는 믹서에서 쌀가루가 빻아져 나오고 다시 다른 기계로 들어가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떡이 쏟아져 나오는 과정을 보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물속으로 퐁당 들어갔다가 나온 뽀얀 가래떡, 길게 뻗어 가지런히 놓인 그 가래떡이 가득 담긴 떡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제 새벽이 아침으로 변했는지 모르게 날이 훤히 밝아져 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모두 모여 앉아 송편을 빚었다. 엄청 큰 대왕 송편, 고물이 다 터져 나오는 별 모양 달 모양 송편을 만들어도 외할머니와 이모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송편이 다 터진 채로 쪄지고 나서야 혼자 울상을 지었을 뿐이다.
동그랑땡을 만들고, 깻잎전을 부치고, 남은 반죽들로는 부침개나 오징어 튀김을 만들었다. 전 부치며 나누는 이런저런 어른들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나는 별 도움이 안 돼도 이모들 옆에 딱 붙어 앉아 계란물을 입히거나 밀가루를 묻히며 명절일을 도왔다.
널따란 나무 채반에 가득 놓인 예쁜 전들, 외할머니가 정갈하게 쪄 놓은 생선들, 색색으로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담긴 나물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주로 외가에서 명절을 지냈다. 이모들이 시댁에 다녀오느라 늦을 때는 괜히 재촉 전화를 걸어 빨리빨리 좀 오라며 우스갯소리를 해 댔다. 생밤을 까는 외삼촌의 머리카락이 희끗해지고, 나이 차가 꽤 나는 친척동생들이 늘어나고, 무엇이든 척척 들어 옮기던 외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무릎이 시큰거려 한참을 머뭇거릴 때까지.
결혼을 하고 내게 시댁이 생기고, 띄엄띄엄 명절을 챙기러 외갓집에 들르지만, 여전히 농담 많은 이모들 틈에서 나는 괜한 훈수를 두고 실없는 소리를 하며 그녀들을 쫓아다닌다. 없던 주름이 자글자글 얼굴과 손에 가득 생겨도, 꼰대스러운 수다가 늘어가도, 내게 늘 친절하고 따뜻한 그녀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반갑고 설레는 일이니까.
가족이 북적거리는 명절,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이 좋다. 나의 시댁도 우리 외가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 안에서 사랑받고 컸을 남편의 어린 시절을 언뜻언뜻 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내가 외가에서 응석을 부리며 신나 할 때, 이모들과 삼촌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얼떨떨한 남편을 지켜보는 일도 꽤 흥미롭다.
명절의 즐겁고 고마운 시간을 알게 해 준 외가 덕분에 나는 여전히 가을에 다가오고 추석이 다가오는 그 무렵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추억을 떠올리면 불끈 솟아나는 자잘한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지만, 내게 고마운 가족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진하고 따뜻한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올해의 추석은 아마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색다른 풍경일 것 같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운 사람들과 추억들을 되짚으며, 한 명 한 명 안부 인사를 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