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진 May 14. 2024

바람에 날리는 먼지조차 애틋한 게


손안에 있는 모래가 빠져나가듯 아무것도 없이 절에 갔었다. 가을이었고 나뭇가지에 단풍잎이 울긋불긋 피었던 계절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화살이 날라 오면 피하기가 힘들다. 다 괴로워서 떠났던 여행이었다. 혼자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예약했었다. 여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고즈넉한 게 혼자 있기 좋았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났다. 늦은 오후쯤이었을까. 절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서 책 한 권을 들고 정처 없이 돌아다녔을 때, 연세가 지긋하신 스님 한분께서 내게 인사를 건네며 무슨 연유로 여기까지 왔냐고 그러셨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처음이라 괴로워서 왔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허허허 웃으시면서 ”마음속에 착(着)이 있으면 괴로운 법이지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스님의 그 말씀이 아득한 미래처럼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도 줄 곧 그 말을 생각했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강한 소유를 느낀다거나 끊임없이 갈구하는 내적 감정이 생길 때마다 그 말은 진정 무슨 뜻일까 기억을 곱씹곤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분명 바람에도 향기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바람결이 야릇한 젊음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마치 세월이 꽤 지났다는 말인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확실한 한 가지는 나의 가슴을 움켜쥔 돌도 사라진 시점이고 한 줌의 먼지조차 애틋한 걸 보면 시간이 참 빠르단 것이다.


신륵사의 아침



이전 29화 정오, 교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