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연이은 물음이자 질문 같다. 때로는 인과적인 설명 없이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하여 한 사람을 고통과 슬픔으로 내몰곤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마땅히 겪어야만 하는 하나의 과정일까.
한동안 길거리에 늘어나는 대자보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 아침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그들은 할 일을 하고 있어.”
불현듯 어렸을 때 삼촌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삼촌은 끔찍하게도 한국의 경찰을 싫어했다.
“한국의 경찰은 다 깡패고 건달이야.”
그 이유에 대해선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삼촌이 술에 취한 날이면 그 말을 되새김질하듯이 말씀하셨다. 다만 추측한 건대 그 당시 삼촌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것을 짐작해 보면 아마도 삼촌은 한국의 지난 정치적 사회적 역사를 통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그날에 나는 삼촌의 반복되는 말이 지겨워 애꿎은 티브이 채널만 계속해서 돌렸다. 그때는 불우한 역사적 순간이 절대적으로 오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반복되지 않을 거라 호언장담했던 불운한 역사를 다시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 나의 삶은 잠시 멈추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악몽 같았던 날들이 하루빨리 끝나길 기도했고 현재도 그러한 마음이다.
나는 이 나라의 작은 시민이자 국민이다. 나의 목소리는 도시의 소음보다 작고 미비하지만 이 울림이 어둠에 싸인 산비탈을 넘어 커다란 빛의 파동으로 전달되길 바라고 소망한다. 부디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제각기 할 일을 하며 오늘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기를.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버스 차창 밖에는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제각기 목도리를 하고 털장갑과 패딩을 입고 출근길에 오른다. 이날은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겨울의 아침이었다.
모난 돌과 바위에
부딪혀 다치는 것보다
같은 물에 생채기
나는 게 더 두려워
강물은 저토록
돌고 도는 것이다.
바다에 처음 닿는
강물의 속살처럼 긴장하며
나는 그토록
아프고 아픈 것이다.*
*이산하 시인, 창비시선 453 <악의 평범성>, ‘강’
사진, 사울 레이터 (Saul Leiter), Untitled, c.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