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을 잡지 않기 위해
오늘도 왔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오는 (짧게는 내년, 길게는 5개년) 로드맵 작성 요청이다.
이번 주까지 5개년 로드맵 완성 해 주세요
일단 작년에 그린 5개년 로드맵을 꺼낸다, 맨 앞 년도를 지운다 그리고 N+1 년도로 채운다.
2024년을 2025년으로, 2025년을 2026년으로 .... 이렇게 5개년도를 일단 작성한다.
올해 실제로 달성한 것들이 거의 없다.
처음 수석엔지니어가 됐을 때, 어떻게 5개년 로드맵을 단 몇일만에 그려낼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데드라인이 길어야 1주일쯤 주어지는 이 업무는, 허공에 맴도는 계획을 쏟아내게 한다.
고민을 할 시간은 없고 되는대로 그리기 때문에, 깊은 사유를 하지 않고 빠르게 로드맵을 제출한다.
로드맵은 평소에
로드맵을 잘 그리는 방법은 없을까? 를 고민할 새도 없이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게 문제다.
로드맵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평소에 노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학회나 외부행사도 좀 돌아다니고, 특허도 좀 보고, 업체들과 이런저런 미팅도 많이 하면서 업계 돌아가는 트렌드를 좀 익혀야 한다.
개발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지금 부재인 기능이나 업무는 무엇인지도 고찰해야 한다.
당장 풀어야 하는 개발이슈들이 산재해있는데, 이런 활동들을 하는 건 시간 아까울 수 있지만
이런 시간들이 축적되어 로드맵으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인사이트를 통해 키워드 혹은 아이디어가 생겼으면 그걸 태스크보드에 마인드맵처럼 펼쳐놓는다.
로드맵을 그려야 하는 시점에는, 마인드맵을 잘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정말이다.
로드맵은 Top-down?
수석엔지니어의 가짜노동편 에서 로드맵은 팀장이나 임원이 Top-down으로 깊은 고찰 끝에 만들어내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실현 되기는 어렵다.
나부터, 내가 이끄는 조직에서만이라도 Top-down 으로 실행하자.
수석엔지니어조차도 로드맵 요청을 받고, 그 요청을 다시 포워딩하고 각 모듈별로 로드맵을 그려오라고 시키기만하면 똑같은 문화가 답습될 뿐이다. 항상 내가 먼저 계획하고, 초안이라도 그려서 논의하도록 하자.
로드맵이 뭐 별거냐고 늘 루틴처럼 엑셀을 만들고, 파워포인트를 작성한다면 허공에 그리는 꿈이 될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생산하다가는, 결국 내 PC, 아니 내 뇌는 로드맵의 무덤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그린 로드맵의 무덤을 헤매는 다음 후임자인 수석엔지니어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고민해보자.
회사에서 로드맵을 정성스레 정말 고민해서 그리는 일이 부질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미래로드맵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자. 내 성장로드맵에서는 어떤 테크를 연마해야하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보자. 조금은 부질없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가 그리 바빴는지, 올해도 작년에 그린 로드맵의 년도를 수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