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부터 복싱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정확히 말하면 스포츠라기보단 오락거리싸움에 가까웠다). 하지만 고대 복싱은 지금의 복싱과는 많이 달랐다.맨주먹으로 한 명이 중상을 입을 때까지 계속됐었으며, 로마제국에서는 장갑에 특수 구리나 철제 받침대를 끼고 싸웠다. 한 마디로 너클 차고 복싱했다는 건데 보통 한 명의 전사가 죽으면 끝이 났다고 한다. 로마 하면 콜로세움, 콜로세움 하면 검투사가 떠오르듯이당시 로마제국의 복싱선수들은 콜로세움의 검투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이후 기독교의 확산과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오락으로서의 복싱은 사라져 수세기 동안 잊혀졌는데, 1680년경 영국에서 다시 권투가 시작됐다. 다만 이때선수들은 장갑을 사용하지 않았고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으며,복싱이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1743년, 잭 브라운튼은 주먹다짐에 가까운 당시의 복싱을 운동경기로 바꾸기 위해 첫 번째 행동강령을 작성한다. 그리고 이 행동강령은 자잘한 수정을 거치면서 1838년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선수 한 명이 쓰러질 때까지 경기를 계속 진행시키거나 링에 들어와 상대와 1야드의 범위 내에서 스탠스(복싱 자세)를 취할 수 없다면 패자로 간주하는 등의 규칙이 있었다.또한 이 기간에 잭 브라운튼은 선수들의 손과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최초의 복싱 장갑인 머플러를 발명했다.
그리고 1867년, 마침내 현대 복싱 룰의 근간이 되는 퀸즈베리 룰이 등장한다.정해진 규격의 경기장에서 경기, 걸고넘어지거나 안는 동작 금지, 1분 3라운드 1분 휴식, 쓰러진 선수에게는 10초의 여유가 주어지는 등 지금의 복싱 룰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https://www.wip-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40
인기
한국 복싱의 전성기였던 70~80년대와 달리, 현재 한국에서 복싱은 인기 없는 스포츠다. 보는 관중도 적고, 복싱을 업으로 하려는 선수도 적다.즉, 돈벌이가 안 되는 스포츠다. 빛나던 한국 복싱이 이토록 바닥을 찍게 된 것에는 가짜 선수 사건, 생계유지가 안 되는 선수생활, 복싱협회나 규정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그러다 보니 결론적으로 복싱은 보는 사람에게 재미없는 스포츠가 된 것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싱을 업이 아닌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꽤나 된다는 것이다. 종합격투기 4대 필수 종목 중 하나이며 실전성이 검증된 운동인 만큼 남자들에게 복싱에 인식이 좋은 것은 물론 그들만의 로망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해서 젊은 여성층들에게도 나름 인기 있는 운동이다. 사실상 자기 보호보다는 다이어트가 목적인 여성들이 대부분이지만,많고 많은 운동 중에 복싱을 한다는 것은 복싱 나름의 어떤 매력이 여성들을 끌어당긴다고 생각한다.
반면, 외국에서 복싱의 인기는 여전히 상당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복싱은 인기순위에 무조건 포함되는 스포츠이고 역대 스포츠 선수 수입 순위를 보더라도 복싱선수의 이름은 항상 올라가 있다.2019 포브스 선정 스포츠 선수 수입 순위 4위에 복서카넬로 알바레즈, 2020 포브스 선정 스포츠 선수 수입 순위 11위에 복서 타이슨 퓨리가 있었다(2021년에는 복서 카넬로 알바레즈가 포브스 선정 스포츠 선수 수입 순위 48위로 50위안에 드는 유일한 복싱선수로 기록됐다).최근까지는 아니지만 2015년 미국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대결의 대전료(파이트머니)는 2700억 원에 달했다. 경기가 12라운드 판정까지 갔으니 1초당 1억 2000만 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딜 가나 인기 종목인 구기 스포츠에 비해 격투기 종목이 이토록 높은 대전료를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2015년,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그해 치러진 경기로 인해 나란히 스포츠 선수 수입 톱 2를 달성했다. 보다시피 이는 세계최고의 스포츠 스타인 메시와 호날두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