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합이 선사하는 경험과 가치
시합장의 분위기
생활체육복싱대회(*이하 생체)에 참가가 아닌 보조 및 응원을 목적으로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 상대가 누구인지 찾고, 긴장된 마음으로 차례를 한없이 기다리고, 맞고 또 맞아야 한다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 비로소 이 축제(?)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 쿵쿵되는 긴박감은 여전했다. 각 체육관의 응원소리가 귀청을 때리며 울려댔고, 정타가 들어갈 때마다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구나 그 조그마한 체육관에 수십 명의 남정네들이 모여 온갖 땀과 테스토스테론 냄새를 풀풀 풍기다 보니 자연스레 불쾌지수가 높아지기까지 했다. 생체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생체는 말 그대로 생활체육인들의 시합이기 때문에 프로나 아마 복서처럼 멋지고 깔끔한 동작 따위는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붕붕주먹과 중심을 잃고 체중이 앞으로 급격히 쏠리는 원투, 체력이 고갈되어 이리밀고 저리 밀리는 레슬링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거기에 사람들의 함성이 더해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가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건 정말 투견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매번 든다.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주먹을 뻗는 일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투쟁에 가깝다. 시합에서 상대의 주먹은 가드 위로 맞아도 머리가 울릴 정도로 대미지가 너무 커서, 한 대만 맞아도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서로 몇 대 맞다 보면 흥분해서 자세와 중심이 다 무너질 정도로 큰 주먹을 휘두르는데, 흥분한 상태다 보니 동작은 클지언정 매우 빠르고 강력한 주먹들이 날아온다. 그런 주먹을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맞거나 피하고 때리는 일은 익숙해질 정도의 많은 경험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시합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
그렇기에 링 위에 오른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는 영광스러운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본인의 추하고 헐떡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2라운드만 되면 대다수가 헉헉대며 주먹을 제대로 치기 힘든 정도가 되고, 몇 대 맞다 보면 코와 입에는 자연스레 피가 흐른다. 중량급이상의 경기에서는 맞고 링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기절에 가까운 KO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낭심을 맞고 고통에 허덕이며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낭심보호대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생각이상의 터프함,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 정신을 차리기 힘든 난잡한 환경, 이것이 링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승자든 패자든 모두가 시합이라는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체중을 조절했던 시간들, 시합을 생각하며 집중해 훈련한 순간들, 서서히 다가오는 차례의 두려움 등이 한순간에 싹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시합의 결과 역시 참가자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승자에게는 기쁨과 벅참이, 패자에게는 우울과 아쉬움이라는 또 하나의 고비가 생긴다. 승자는 승리의 경험을 발판 삼아 정진해 연승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하고, 패자는 패배의 원인을 깨닫고 보완하여 다음 시합에서는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살벌하고 무서운 복싱시합이 전혀 재밌게 느껴지지 않는다(필자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공포를 알고도 도전하는 용기, 난리법석 전쟁터가 따로 없는 링 위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인내, 이기든 지든 그 경험을 해냈다는 것. 이렇게 시합이라는 무대가 선사하는 가치는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