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복싱뻔치 채널에서 "나에게 복싱이란?"이라는 질문을 복서들에게 묻는 콘텐츠가 있었다. 그중에 나는 김현기 선수가 한 말이 상당히 와닿았다. 그는 복싱이 까도 까도 뭔가가 계속 나오는 양파 같다고 말했다.그렇다. 복싱은 파면 팔수록 뭔가가 계속 나온다.왜냐, 수련하면 할수록 세부적인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공격의 제일 첫 시작인 잽 하나만 봐도 그렇다. 어깨를 써서 쭉 뻗는다는지, 뒷발을 차며 앞발 앞손이 동시에 쫙 나간다던지, 준비동작이 보이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빡 친다던지, 어느 타이밍에 쓰는 게 효율적인지, 거리를 어떻게 재는지, 잽잽을 어떤 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등등 기본을 익혔다 하더라도 그것을 더욱 완벽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또는 시간이 갈수록 기초를 게을리하게 되기 때문에 선수가 아니고서야 일부러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단 4가지뿐인 복싱의 공격 동작이 숙련도와 콤비네이션에 따라 별처럼 수 없이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복싱의 양파 같은 면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스파링이다. 애니 [진격의 거인]에서 조사병단 구성원들은 매일같이 기술을 갈고닦으며 거인을 죽이는 효과적인 훈련을 하지만 실전 상황에서 거인을 마주하자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하고는 겁에 질려 제대로 싸우지조차 못한 채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토막 나 삼켜진다. 이처럼 아무리 기초를 갈고닦아도 링 위에 올라가면 링 밑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눈앞에서 나를 어떻게든 뚜까패려는 상대와 실제로 마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몸도 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곧바로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선수가 아니라면) 다행히 복싱은 전쟁이나 거인처럼 실전에 나간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다(복싱을 하다가 다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많고 죽는 사람도 역시 매년 존재한다). 그렇기에 경험을 통해 배우고 훈련하여 다시 싸울 수 있다. 우리가 리바이 반([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인물)처럼 타고난 인간이 아니고서야, 복싱을 계속하겠다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욱 기초를 단단히 쌓고 신체 또한 강하게 가꿀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복싱뻔치 채널
겸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복싱도 배우면 배울수록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우리가 세계 레벨의 타고난 능력자가 아닌 이상 , 세상 어디의 어느 분야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존재한다. 체육관 저녁시간 회원들 중에 내가 제일 잘한다 생각했는데 아침시간에 가보니 거기서 제일 실력이 낮은 회원이 나보다 훨씬 잘할 수도 있고, 체육관에서 내가 제일 잘한다 생각해 동네의 작은 생체 시합에 나갔는데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에게 뚜까 맞고 올 수도 있다. 복싱은 재능의 스포츠이고 또 갈고 닦음의 스포츠이기에 한 번 제대로 맞아보면 사람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나 역시 스파링을 제대로 해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겸손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복싱이란 스포츠가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지 느끼기 시작했다. 타이슨의 그 명언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자.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이처럼 타이슨에 의해 겸손해진 선수들이 많았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말을 한 타이슨 또한 누군가에게 처맞으면서 겸손해진 날도 있을 것이다. 때리는 날이 있으면 맞는 날도 있는 법이다.. 정말 복싱이란 스포츠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하기에 사람의 인생과 닮은 점이 많다.
실력을 떠나서 복싱을 제대로 배우고 스파링을 많이 경험해본 사람은 분명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인간이 평소에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스트레스 상황과 고통에 놓이고 결국 그 과정을 이겨내고 견뎌내는 (혹은 무너지더라도 그런) 결과를 수반하기 때문이다.